'천년차' 100g에 1,300만원… 찻잎 따는 시기와 덖는 사람에 따라 등급 매겨

▲ 차 시배지로 알려진 화개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령 차나무. 수령 1,0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차나무 잎을 수제 전통 방식으로 덖어 만든 '천년차'가 100g 1통 1,300만원에 팔렸다.
지난달 21일 경남 하동군에서 폐막한 ‘제11회 하동 야생차문화축제’의 가장 큰 이벤트는 국내 최고(最古) 차나무 잎으로 만든, 일명 ‘천년차’의 경매였다.

수령이 1,0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의 차나무(경남도지정기념물 264호) 잎을 차나무 소유자 오시영(54·도심다원 대표) 씨가 수제(手製) 전통 방식으로 직접 덖어 만든 ‘천년차’는 경매 시작가격이 무려 1,000만원으로 책정되어 화제를 모았다.

하동 야생차 홍보를 위한 상징적 의미로 이번만 단 1통(100g)이 판매용으로 생산된 ‘천년차’는 1,300만원에 낙찰받은 명인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이 차산업의 발전을 위해 기증해 현재 하동군에서 보관 중이다.

우리나라엔 수제차의 가치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이나 일본 등 차문화가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고급 제품이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2003년 중국 ‘광저우 차박람회’에서는 출품된 푸얼차(普茶, 보이차) 100g이 16만 위안(약 2,300만원)에 팔린 데 이어 2004년엔 중국 명차 중 하나인 무이차(武夷茶) 20g이 2,500만원에 팔리는 기록을 세워 ‘금값보다 더 비싼 차’로 명성을 날렸다.

그렇다면 차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며 한국의 명차(名茶)는 무엇이 있을까.

명인 손 거친 명품차

일반적으로 차는 차나무 수령, 찻잎을 따는 시기, 차를 제조하는 방식 등에 따라 급이 결정된다. 대량으로 재배되는 차나무보다 ‘야생 차나무에서, 일찍 딴 햇잎을, 장인이 직접 덖은 차’가 명품으로 대접받는다.

야생차는 주로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자라고 있으며 그 역사는 신라 시대 흥덕왕 3년(828)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 찻잎을 증기로 찌거나(증제 차) 솥에서 살짝 볶으면(덖음 차) 녹차가 되고, 발효시키면 홍차, 중간 정도 발효시키면 우롱차가 된다. 녹차 중에서도 곡우(4월 20일경) 전에 딴 어린 잎으로 만든 녹차를 ‘우전차’라고 하는데 100g이 8만~10만원 정도에 판매되는 최상급 차이다.

이후 찻잎을 따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세작, 중작, 대작으로 불리며 급이 점점 낮아진다. 세작(100g기준)은 시중에서 대개 4만~10만원, 중작은 2만~3만원, 대작은 1만~2만원에 팔린다.

찻잎은 날이 더울수록 타닌 성분이 많아져 쓰고 떫은 맛이 나는데 일찍 찻잎을 딴 고급 차는 단 맛이 나고 향기가 깊은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연간 2,000여 억원의 차 시장에서 70%를 차지하는 티백 녹차 제품은 재배차 중에서 중작, 대작을 사용하며 가격은 싸지만 질이 낮은 중국산 찻잎을 사용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물을 부어 간편하게 마시기에는 좋지만 깊게 우러나오는 참된 차맛을 느낄 수는 없다.

차는 덖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수제차 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도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명품 녹차가 여럿 있다.

그중 전남 순천에 있는 명도다원의 신광수 명인(56)이 만든 ‘승설차(勝雪茶)’는 50g 1통이 120만원으로 천년차 이외에는 국내에서 가장 비싸다.

‘승설차’는 곡우보다 앞선 춘분(3월 21일) 무렵에 잎이 되기 전의 차움을 채취해 만든 차다. 300~700년 수령의 유기농 야생 차나무밭에서 작디 작은 움을 아무런 상처없이 따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핀셋을 들고 10명이 하루종일 일하면 3만5,000개~4만 개(약 50g)의 차움을 딸 수 있다고 한다.

그 움들을 신 명인이 직접 숯으로 달군 가마솥에 덖어 멍석에서 말듯이 비비는 과정을 많게는 15~16회까지 거쳐야 겨우 1통이 생산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승설차’에는 긴 겨울을 견디고 솟은 차움의 강한 생명력이 담겨있다는 게 신 명인의 설명이다.

올해 생산된 ‘승설차’는 단 50개. 귀한 만큼 개인이 직접 주문하거나 명절 선물용으로 백화점에서 한시 판매될 때 구할 수 있다.

야생 차나무의 본산지로 알려진 경남 하동 명인다원의 박수근 명인(62)이 만드는 ‘명품’도 수제차 시장에선 명품으로 유명하다.

3대째 차 덖는 일을 가업으로 잇고 있는 박 명인은 청명(4월 5일) 전 제일 먼저 나는 야생 찻잎으로 만든 차를 ‘명품’이란 이름으로 내놓는다. 산삼 향이 아주 진하고 달면서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는 것이 ‘명품’의 특징.

박 명인이 직접 가마솥에서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벼 말리는 전통 녹차 제조기법인 ‘구증구포’로 만든 ‘명품’은 100g 한 통이 55만원으로 매년 20~30통이 한정 생산되어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만 판매된다.

하동의 화개제다에서는 ‘홍소술가 명차’를 최고의 작품으로 친다.

자체 유기농 차나무밭에서 1촉만 딴 찻잎으로 100통이 한정 생산된다. 1촉이란 차나무에 열린 세 잎 가운데 한 잎만 따는 것으로 하루종일 11명이 따야 1kg의 찻잎을 모을 수 있다.

‘홍소술가 명차’ 역시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에서만 판매된다.

곡우 전에 딴 찻잎이 상품

▲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자락의 야생차밭. 4월이면 찻잎따는 사람들로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든다.
▲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자락의 야생차밭 4월이면 찻잎따는 사람들로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든다.

전문가들은 차는 기호식품인 만큼 가격을 떠나 자기의 취향에 맞는 제품이 최고의 차라고 말한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차라도 개인의 기호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명품 차는 차의 색과 향기, 느낌까지 음미할 수 있을 정도로 식견을 가진 애호가들에게만 제 가치를 발휘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조건 비싼 차를 찾기 전에 우선 마음가짐부터 정성스럽게 덖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방지현 객원기자 leina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