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투어 미국 직영 지사 설립… 현지 랜드사 동포 여행수요 잠식 우려

▲ 라스베이거스 야경.
“한국의 유명 여행사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기존 여행사에서 일하는 한인 가이드 중에서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할 사람이 많이 생길지 몰라요.” 미국내 한인 동포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여행사에서 일하는 한 여행 가이드가 털어 놓은 말이다.

국내 최대 여행사중 하나로 손꼽히는 하나투어가 최근 미국 시장 본격 진출을 선언하면서 미국 한인 관광시장에 충격파가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지 동포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여행업계는 이를 ‘한국 여행사의 미국 시장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나투어는 지난 2일 100% 투자로 새로운 미국 법인(법인명 HANATOUR USA INC) 사무소를 오픈, 현재 현지 지사장이 직접 나서 조직 및 영업망을 정비하고 있다.

국내 여행사가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는 것이 새로운 뉴스는 아니지만 이번 경우가 이슈가 되는 것은 토종의 순수 자기 자본으로만 지사를 세웠다는 이유에서다. 하나투어는 2000년 LA 현지 여행사와 각각 50% 지분투자로 LA법인을 설립했지만 부실하게 운영돼 사실상 그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하나투어의 미국 직영 지사 설립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현지 랜드 여행사들.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안내하거나 현지 교민들을 대상으로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이들 랜드사는 ‘강력한 경쟁자’가 출현했다며 초긴장 상태에 돌입,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국 고객들이 현지의 기존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고 직영 랜드사를 운영하는 한국 유명 여행사 상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될까봐 걱정스럽습니다.” 현지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여행사의 미국 시장 진출이 여행 상품을 하청받아 진행하는 랜드사의 입지를 축소시키지나 않을까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하나투어의 미국 법인 설립으로 이처럼 미국 한인 관광시장이 요동을 치는 것은 미국 관광 시장 비중이 큰 데다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금 논의되고 있는 내년 한국인에 대한 미국 비자 면제도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내 미국 관광시장의 규모는 2005년 기준 전체 출국자수 81만5,841명, 관광목적 출국자수 31만242명이다. 이는 단일 여행국으로는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시장이다. 또한 매년 45만~50만 명이 미국 비이민 비자를 신청하고 있어 풍부한 잠재수요를 형성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년에 미국 비자 면제 조치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만큼 비자 면제가 실현되면 미국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좌석 공급 또한 확대되는데 대한항공은 오는 9월에 라스베가스 직항 항공편을 취항할 예정이다.

하지만 현지 랜드사들이 이보다 더 신경쓰는 부분은 현지 동포들의 여행 시장. 한국에서 날아 온(?) 신흥 여행사가 박힌 돌(랜드사)을 빼내고 동포 여행 수요까지 잠식할까봐 걱정이다. 한인 소비자로서는 이름이 익숙하고 한국에서 자리를 굳힌 대형 여행사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지에서는 “하나투어측이 동포 대상의 영업보다는 우선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관광객들 대상으로만 영업하는데 신경쓰고 있다고 밝혔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그러나 랜드사들은 이를 현지 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발언으로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결국 하나투어가 동포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나투어 측도 속내를 감추지는 않고 있다. 공식 입장은 향후 미국 비자 면제 조치에 따른 한국인 미국 여행 수요 증가와 본격적인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 기존 법인을 정리하고 100% 독자법인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하나투어 김양구 전략기획팀장은 “현지 랜드사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직영 법인을 통해 여행상품을 운용하면 더 나은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1차 목표는 서비스의 차별화”라고 설명한다.

▲ 그랜드 캐니언.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상품 외에도 LA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상품, FIT(개별여행) 고객을 위한 'FLY & DRIVE' 상품, 학생과 직장인을 위한 배낭여행, 골프상품 등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앞으로 제공한다는 것이 실천 목표.

또 한국 여행사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향후 커질 미국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의미도 크다.

한국인 수요 확대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 수요(Outbound & Local)를 겨냥한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이라는 것. 미국에 가는 해외여행자 수는 연간 6,100만 명으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하나투어 경우는 이 중 우선 문화적 접근성과 서울과의 연계가 용이한 200만 명의 재미동포와 2,000만 명의 아시아계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대해 김희선 홍보팀장은 “어느 여행사든 수요가 보이면 경쟁자는 몰려 들게 마련”이라며 “미국 시장 진출은 새로운 성장 시장을 내다본 조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여행업계에서는 헤게모니(주도권) 쟁탈전 성격도 가미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외국인 고용이나 비자 문제 등에서 까다로운 나라인 미국의 특성이 현지 랜드사들의 콧대를 높게 만들었는데 직영 지사 설립으로 까다로운 랜드사의 입김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 여행사들은 고객을 송출해 주는 입장이어서 외국에 있는 랜드사들에 대해 대부분 ‘갑’의 입장이지만 미국 내에서는 관광객을 보내주면서도 오히려 ‘을’의 위치에 가깝다는 불평이 자자했었다.

때문에 다가올 미국 여행 시장의 성장에 대비해 모두투어, 롯데관광 등 한국의 다른 메이저 여행사들도 직영 지사 설립을 검토하는 등 여행업계의 거대한 미국 시장 노크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