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드 윌리 증후군섭취 음식물 장으로 곧바로 내려가 심각한 비만합병증 유발, 학습·행동장애에 정신지체 증상 동반… 가족·환자 모두 탈진상태

‘프래드 윌리 증후군’ 환자 부모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음식과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이 병에 걸리면 돌(만 1세)을 지나면서부터 주체할 수 없는 과도한 식탐이 나타나기 때문에 부모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아이는 참을 수 없는 식욕으로 냉장고를 샅샅이 뒤지고, 심지어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 음식물을 구하기 위해 가출도 한다. 슈퍼마켓 등에서 죄의식 없이 음식물을 집어 들다 도둑으로 몰리는 경우는 다반사다.

현대인의 상당수가 ‘비만과의 전쟁’을 치른다지만 그것은 프래드 윌리 증후군 환자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그들이 싸워야 하는 비만과의 전쟁은 생존이 걸린 문제고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절박하다. 음식물이 바로 위장을 통과해 장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늘 허기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비만의 합병증이다. 심장병과 당뇨병, 고협압, 뇌혈관 질환 등의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여주 주희네 가족
질환에 대한 이해 부족, 범죄자 오해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굽이굽이 포장도 되지 않은 시골길을 한참이나 지나가야 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오랜만에 손님(기자 일행)이 오자, 초등학교 2학년인 주희(8)는 신이 났다.

“엄마는 왜 안 와?”
“엄마, 언제 와?”
“엄마, 지금 뭐해?”

손님을 위해 과일과 주스를 준비하는 엄마를 주희는 쉼없이 불러댄다. 엄마가 보고싶다기보다는 사실 먹을 것이 더 애타게 기다려지는 탓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허락 받고 먹도록 가르쳐요. 엄마가 숟가락을 들어야 주희도 숟가락을 들 수 있고, 엄마가 놓으면 반드시 같이 내려놓도록 하죠.”

엄마는 “한창 자라는 아이의 식욕을 통제한다는 것이 너무도 가슴 아프다”면서도 “기특하게 잘 따라주는 아이가 고맙다”고 말했다.

프래드 윌리 증후군’을 앓는 주희는 현재 체중이 31kg. 약간 통통한 정도로, 식사 관리를 잘해 비교적 증상이 가볍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솔직히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장차 해외 토픽에 나오는 100kg가 넘는 비만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어요. 하지만 앞 일은 모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이의 의지력이 얼마나 지속될지···”

엄마는 “병명을 알아내는데 시간을 허비하다 뒤늦게 식이조절을 시작한 것이 안타깝다”고 털어놓는다. 주희네 식구는 햄버거 가게, 분식집, 학교 앞 구멍 가게 등 집 주변에 먹을 것이 너무나 ‘풍족한’ 도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 초 서울에서 이곳으로 낙향했다.

주희는 1997년 9월 2.4kg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 젖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희는 먹을 힘이 없어 코로 우유를 투여해야 했다. 그래도 생후 일주일이 지나서 입으로 빨기 시작하자, 그저 좀 발달이 늦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원인을 못 찾는다고 절대 안심해선 안 된다”는 의료진의 충고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여느 아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먹는 양보다 배변 양이 적으면 즉시 병원으로 달려와라”는 충고대로 기저귀 무게를 저울에 달아가며 꼼꼼하게 체크하고, 맥박 수가 조금만 불규칙하다 싶으면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런 지나치다 싶은 극성스러운 대처 덕에 위험한 고비를 잘 넘겼지만,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되기까지에는 꼬박 4년이나 걸렸다. 워낙 당시로는 희귀한 질병이었기 때문에 진단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생후 4개월 경에는 척수성 근위축증(SMA)으로 진단 받았다. “기절하겠더라구요. 병명을 듣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SMA는 2년 남짓 산다고 나와 있었으니까요. 하늘이 노랬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SMA와는 증상이 달랐다. 신경 근육 질환으로 ‘몸 뒤집기’가 안 되는 SMA아이들과 달리 주희는 스스로 몸을 뒤집고, 움직였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어느날은 주희가 뒤집는 모습을 하루종일 수백 장의 사진으로 찍어 병원에 들고 갔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의료진은 “국내 최고 권위자가 SMA라고 진단했으면, 설사 걸어다녀도 SMA”라며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우연히 병을 알게 된 것은 프래드 윌리 증후군 환자가 출연한 TV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주인공은 열다섯 살짜리 소녀. 아기 때 모습이 나온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상하게 끌렸다.

방송국을 통해 그 소녀의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 쪽에서 “태어났을 때 어땠어요?”라고 물었다. 저체중에 수유 곤란. 신생아 때의 증상이 일치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두 곳의 종합병원에서 똑같이 ‘프래드 윌리 증후군’이라 진단을 내렸다.

“지금은 얼굴만 봐도 알겠어요. 길거리를 지나다 ‘저 아이, 우리과(科)인데’ 하는 아이들을 종종 만나요.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프래드 윌리 증후군’ 아이들을 그저 먹을 것만 밝히는 뚱뚱한 아이라고 치부해 치료를 방치하는 게 안타깝죠.”

그녀는 ‘프래드 윌리 증후군 부모 모임’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은 110여 명이다. 성인 여성 환자는 없다. “아이 환자들이 커서 어떻게 됐는지 몰라 더 답답하다”고 말한다.

“일반 사람들의 비만이 1톤 트럭에 10톤 분량의 짐을 싣고 달리는 것이라면, 프래드 윌리 증후군 환자들의 비만은 ‘티코’에 10톤 분량의 짐을 실은 것만큼 위험하대요.”

▲ 엄마 아빠 품에 안겨 활짝웃는 주희 / 임재범 기자

부모의 통제는 한계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가 몰래 냉장고 문을 여는 주희 때문에 엄마는 아예 거실을 침실삼아 잔다.

농삿일하랴, 딸 돌보랴 지친 엄마를 위해 아빠가 이따금 사오는 초콜릿과 도너츠 등도 나중에는 거진 주희 몫으로 돌아간다. “꼭꼭 숨겨둬도 귀신처럼 찾아낸다”고 한다.

엄마가 화장실 가는 시간도 계산해 음식 찾기 숨바꼭질을 한다. “엄마, 응가야, 쉬야?” 결국 집안의 음식을 모조리 없애버릴 때까지 지긋지긋한 음식과의 전쟁은 계속된다.

프래드 윌리 증후군 아이들에게는 학습ㆍ행동장애와 정신지체도 나타난다.

주희는 원래 3학년이 됐어야 했지만 언어 발달이 느려 1년 유예됐다. 혓바닥이 짧아 발음도 나쁘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는 발음이 안 좋아 담임 교사도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글은 일곱 살에 배워 예상보다 빨리 깨우쳤지만, 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다른 애들 한두 번 가르칠 것을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주면 잘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더라”고 엄마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지능지수(IQ)는 보통 75~90. 머리가 나쁘지만, 정신지체 장애 기준(70 이하)에 해당되지 않아 ‘장애’ 판정을 받지도 못한다. 때문에 특수교육이나 공공 재활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질환에 대한 정보와 사회의 이해가 부족해 범죄자로 몰리기도 한다.

지난해 같은 병을 앓는 중학생 남자아이는 중국집에서 음식을 먹고 도망치다 걸려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경찰서까지 가는 일도 허다하다.

“남자아이들은 보통 중학생만 되면 한 달이 멀다 하고 가출을 반복해요. 나가서 사고 치고 수습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정신지체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다니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일반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경계에 있는 ‘주변인’ 아이들이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게 모든 ‘프래드 윌리 증후군’ 부모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주희는 평생 제가 데리고 살 것이지만, 가끔 힘들어서 손을 놓는 엄마들도 있어요.” 주희 엄마는 일반 사회생활이 어려운 ‘프래드 윌리 증후군’ 아이들이 그러한 동생뻘 아동들을 돌보고, 나이 드신 어른들의 말벗도 되어주는 ‘질환자이지만, 사회의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대안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먼 미래의 목표라고 말했다.

군포 희재네 가족
입·퇴원 반복… 전재산 치료비에 다 써

“저는 그냥 보통의 ‘프래드 윌리 증후군’ 아이들처럼만 자라 줘도 좋겠어요.”

생후 18개월의 희재 엄마의 마음은 요즘 찢어질 듯 아프다. 다른 프래드 윌리 증후군 아이들은 돌 이후엔 기력이 회복된다는데 희재는 아직도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서울의 A병원. 발에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꽂은 채 2인실 병실에 누워있는 희재는 한 눈에 보기에도 창백하다. 체중 7.6kg. 생후 4~5개월 수준의 몸무게다. 혹여 부러질까 안아주기도 겁날 정도로 앙상한 모습이다.

며칠 전부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울어 입원했는데, 장이 안 좋은 데다 심근증까지 겹쳐 있는 상태다. “병원에서도 얘를 보면 한숨을 쉬어요. 희재가 또 입원하러 왔어 라고요.”

9월 입원, 10월 말 퇴원. 12월 초 입원 1월 말 퇴원, 3월 초 입원…. 한 달이 멀다 하고 입ㆍ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들어간 치료비만 2,000만원이 넘었다.

▲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는 희재 / 임재범 기자

스물네 살이던 2004년 결혼, 바로 희재를 낳았기 때문에 달리 모아둔 돈도 없다. 결혼할 때 5,800만원으로 얻었던 전셋집에서 나와 보증금 1,500만원의 월셋집으로 이사했다. 다달이 마이너스 통장도 불어간다.

“주변에선 살아봤자 사람 구실 못한다며 포기하라고도 말씀하세요. 하지만 희재 낳은 걸 후회 안 해요.”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아팠던 희재를 간호하느라 산후조리도 못했건만, 바로 둘째를 낳았다. 희재와는 딱 12개월 차이다. 생후 6개월인 은재다. “아이가 크면 음식 조절을 못해 고통 받고, 또래 아이들로부터 소외 당해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항상 곁에 있는 친구 같은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었죠.”

여러모로 ‘무리’한 일을 벌였다는 걸 알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은재를 통해 희재의 병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됐거든요.”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부모들은 아이의 병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누군가로부터 ‘아이가 하얗네’ 하는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아파요. 인정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그러다가 치료가 늦어지고 병이 악화되면 그때 가서야 후회해요.”

희재 엄마는 “부모들이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의 인식 전환도 시급하단다.

희재 아빠는 아이가 아프더라도 “(아이 돌보며) 그만 쉬라”는 말을 회사에서 들을까봐 아이가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얘기를 못 꺼낸다. 게다가 뚜렷한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비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최저생계비X300 이하여야 함)돼 이중의 고통를 겪고 있다.

엄마는 “아이가 아프면 치료비만 들어가나요”라면서 “희귀난치병 질환자들이 걱정없이 치료 받고 활기차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했다.

◆ 발병 원인

원인이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대뇌의 '시상하부'의 기능 장애와 염색체 이상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병에 걸린 아이들 중 75%가 15번 염색체의 이상으로 나타났다. 15번 염색체를 부모로부터 골고루 받지 못하고 어머니에게서만 받아 발병하거나 15번 염색체에 다른 종류의 돌연변이가 나타난 경우도 있다.

◆ 주요 증상

신생아 및 영아기에 힘이 없어 모유나 우유를 먹지 못하는 수유 곤란이 나타나고, 성장도 늦다. 이러한 근력 저하는 대부분 돌을 전후해 회복되어 미처 질환을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가기 쉽다.

프래드 윌리 증후군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과도한 식욕이 나타나는 것은 그 이후다. 만 1세 때부터 음식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해 비만해진다. 대퇴부ㆍ복부ㆍ둔부의 비만인 경우가 특히 많다.

연령이나 체중에 비해 키도 작다. 얼굴의 특징은 좁은 이마와 아몬드 모양의 눈, 아래로 처진 입술, 얇은 윗입술, 작은 턱 등이다. 손과 발도 작은 편이다.

남자 아이의 경우는 음경이나 고환이 작고, 잠복고환이 있다. 여아는 소음순, 음핵이 작다. 남녀 모두 사춘기가 늦거나 오지 않을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불임인 경우도 있다.

지능 지수(IQ)도 낮다. 보통 75~90사이. 최저 20 정도도 나타난다. 이러한 지능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질환 아동에게서 학습 장애가 나타내고, 학습 성취도도 떨어진다. 대부분 행동장애나 수면장애도 동반한다.

◆ 진단 및 치료

염색체 이상 유무를 알아보기 위한 세포유전학 검사와 분자유전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저신장과 비만, 성기능 저하에 대한 부분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는 정도다. 비만 치료를 위해서는 아이의 식사량 조절과 함께 성장 호르몬을 투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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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