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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비정규직 통합 노조 생겼다
한국자산관리공사서 국내 첫 깃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델 제공



▲ 임명배 한국자산관리공사 노조위원장(오른쪽)과 오승헌 비정규직 노조위원장이 지난 5월 노조 통합추진 합의서 조인식을 마친 뒤 화합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직원들을 오히려 배척하거나 방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사용자는 더 책임을 못느끼고 노동자들 간에 서로 교감이 없으니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해소가 안 되는 것입니다.”

국내 최초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통합 노조가 탄생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ㆍKAMCO)는 6월 1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갖고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통합을 결의, 사상 첫 정규ㆍ비정규직 통합노조를 출범시켰다. 첫 통합 노조 위원장이 된 임명배 캠코 노조 위원장은 “이번 통합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기보다는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꿴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캠코 노조의 통합은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통합 말고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각각 소속돼 있던 두 노조의 통합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정규직 노조(조합원 800여 명)는 한국노총 산하 금융산업노동조합에, 비정규직 노조(200여 명)는 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에 각각 가입돼 있었다.

“보통 비정규직 문제를 사용자들이 건드리려 하지 않는데 이는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캠코의 노조 통합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임 위원장은 2002년 노조위원장 선거 때부터 정규ㆍ비정규직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이때도 비정규직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선됐으니 일단 통합의 동의는 얻어 놓았던 셈이지요.” 임 위원장은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고 조합원들 사이에 그런 동의가 형성돼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부실기업 정리 업무가 급증한 캠코는 당초 직원 400여 명에서 한 때 1,700여 명까지 불어났다. 신규 충원 인원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는데 직원들 간에 갈등이 적잖이 불거졌다.

직원들 간의 갈등 불식 계기

“정규직만 건강검진 받으러 간다는데 비정규직들은 할 말을 잃었죠.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임금을 50%밖에 못 받고 복지혜택도 없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임 위원장은 직원들 간에 불편함을 많이 느꼈다고 증언한다.

한 팀에서 서로 즐겁게 얘기하다가도 신분 문제 얘기가 나오면 대화가 끊기고 분위기가 삭막해지기 일쑤였다. 이때부터 이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임 위원장은 “노조가 이제는 비정규직을 끌어안고 문제를 풀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당연히 통합에 대한 반발도 컸다. “정규직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 아니야?”라는 지적이 내부에서 쏟아졌다.

실제 부실정리 대상 기업이 줄어들면서 소요 인원도 같이 줄어 들 수 밖에 없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냐?”, “그대로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해 두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노조 통합을 위한 공감대는 우선 캠코와 몸담고 있는 노조원들의 정체성에서부터 출발했다. 정규직이라서 고용이 보장되고 나머지 비정규직 직원들이 속속 그만두고 나가는 것이 반복되면 결국 회사는 위축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캠코는 구조조정 업무를 오랫동안 수행해 온 노하우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조직입니다. 아시아에서도 보기 드물게 구조조정 업무를 수행해온 전문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업무가 줄어들고 있지만 사람만 정리하면 그만이라는 직원들의 생각도 조금씩 변화했다.

임 위원장은 “직원들이 독자적인 새 영역을 구축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대응해야 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데 우선 직원들 간의 반목부터 없애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또 비정규직을 포함해 1,000여 명의 조직원을 확보하게 된다면 노조 역량이 그만큼 더 배가되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임 위원장은 “계속된 직원 감축으로 내적 동력이 소진돼 가는 구조로 가면 안 된다”는 점을 설득하고 나섰다. 그래서 2002년에는 보통 1년에 한 번만 가는 워크숍을 무려 8번이나 열며 의견을 결집해 나갔다.

자신들의 권익이 침해당할까 걱정하던 노조원들도 이미 갖고 있던 회사에 대한 문제 의식을 인식, 일체감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가시적인 변화는 비정규직 일부 직원들의 노조 가입 허용으로 이어졌다. 정규직 노조는 2003년 7월 노조 가입대상을 ‘5급 이하 계약직’으로 확대, 비정규직 380여 명을 노조에 가입시켰다. 그리고 노조 내규 조항을 개정, 비정규직들이 복수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조의 출범이 순풍만을 탄 것은 아니었다. 회사측은 절대 다수가 속한 정규직 노조 위주의 협상에만 치중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 이로 인해 노노(勞勞) 간의 갈등은 더 첨예화됐다.

“사측의 분열 전략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돌았습니다. 비정규직 노조 자체만의 노력으로 성취가 안 되면 정규직 노조 탓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생겨났지요.” 임 위원장은 이때 양 노조 간에 극심한 다툼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서로를 반박하는 리플이 하루에만 수십개씩 실리고 성명전은 물론, 대화로도 풀 일이 고소나 고발로까지 이어졌다.

“이때 ‘두집 살림’을 치렀던 경험이 나중에 ‘보약’이 된 것 같다”는 임 위원장은 “양 노조가 따로 지내 보니 ‘통합’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실적으로 통합해서 같이 힘을 모아 가자는 명분과 실리론이 힘을 얻었다는 것.

임 위원장은 이와 함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통합되더라도 1,700명의 직원이 다 같이 함께 갈 수는 없으며 일정한 인원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점과 임금 복지 등에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절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위해 정규직의 양보도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후 정규직은 임금 상승률을 비정규직보다 낮추고 임금을 반납, 특별 퇴직금도 마련하는 등 실천에 나섰다.

원칙과 신뢰로 통합기반 다져

임 위원장은 “정규ㆍ비정규직 통합 노조의 출범이 가능했던 것은 원칙과 전략을 갖고 문제 해결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통합이 하루 아침에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합을 위한 과정에서 불신과 반목도 있었지만 결국 신뢰가 쌓이게 됐고 그것이 통합의 기반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번 통합으로 캠코 노조는 계약직 3ㆍ4급과 채권관리역, 단기성과급 직원까지 정규직 노조에 가입하게 됐다.

특히 복수 노조로 두집 살림을 해 본 경험은 당시에는 ‘독’이었지만 지금은 ‘약’이 됐다. 만약 복수 노조를 경험해 보지 않았더라면 통합의 기운이 자라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조 통합은 어렵더라, 물건너갔더라’하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갈등은 극심했다.

통합노조가 출범하면서 노조 사무실은 축하와 문의 전화로 요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노총 등 양대 노동단체와 노동부 등에서는 축하와 격려 전화가 쏟아졌다. 또 보험회사 채권추심회사, 시설관리, 금융권 등 비정규직 직원이 많은 업종과 회사에서도 문의전화가 이어졌다. 노동부에서는 캠코의 통합 노조 출범을 홍보자료로도 만들 계획이다.

통합 노조 출범에 대해 사측에서도 환영 분위기다. 회사 부담은 약간 늘어나더라도 직원들의 회사 충성도가 커진 것은 큰 수확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직원들 간의 반목과 갈등이 사라진 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득이다.

임 위원장은 “사측과 정규직, 비정규직이 다 같이 윈·윈·윈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한다.

“캠코의 사례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범 사례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원들 간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마음을 여는 자세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김동유 노조 부위원장은 “한국의 노동계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있어서 캠코의 이번 통합이 사회적 모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6/07/03 14:14




박원식 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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