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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기행 ⑪] 潘南 朴氏
서계문화재단 설립으로 종중땅 보전 기틀 마련

姓氏의 원류를 찾아서 종가기행 ⑪ - 12대 차종존 박용우 씨, 문중 간 연대 통해 종가 어려움 해결책 찾기 부심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선생의 종가 위치를 일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의정부를 지나 포천 방면을 지나다닐 때 서계 선생 종택을 알리는 표지판을 본 적이 있었다. ‘경기도 인정 반남 박씨 서계공파 종가’라는 표지판도 함께 붙어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서도 이제는 종가를 인정하고 대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엔 왠지 생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그곳을 다시 찾으니 ‘서계문화재단’이라는 아담한 현판을 단 작은 집과 그 주변의 공원 같은 아늑한 풍광이 먼저 눈길을 끈다.

행정명으로는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197번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7호선 장암역과 인접한 곳이다. 북으로 노원, 마들, 수락, 도봉산역을 지나 7호선 종착역이 바로 장암이다.

종택을 불쑥 찾아가니 박용우(朴龍雨, 1952년 생) 씨와 선산 김씨 내외가 반갑게 맞아준다. 박용우 씨는 서계 선생의 차종손이다. 그는 종택 사랑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3호)로 안내해 부친인 박찬호(朴贊鎬, 1922년 생) 씨에게 필자를 소개했다.

부친이 11대이니 박용우 씨는 12대가 된다. 종택이 있는 이곳은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탄탄대로의 벼슬길이 보장되었던 서계가 1668년(현종9) 40세에 벼슬을 버리고 당시 경기도 양주 수락산 석천동(石泉洞)에 있는 선대 사패지(賜牌地: 임금이 내려준 땅)로 귀향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지역이다. 그는 이곳에서 칩거하며 여생을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에만 힘썼다.

종택은 터전에 비해 본래 모습 그대로 정돈되어 있지는 않다.

오지였던 이곳 또한 한국전쟁의 생채기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폭격으로 집 대부분이 소실된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그나마 종가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해둔 영정을 비롯한 수많은 책자와 고문서는 온전했으니 조상의 음덕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종손은 서울의 명륜학원(明倫學院)을 나와 서울시청과 한국전력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리고 종손의 부친인 박창서(朴昌緖) 씨는 한학에 조애가 깊었지만 신학(新學)에도 관심이 많아 경성제대를 마친 뒤 공무원과 교편을 잡았다 한다.



▲ 종손 박찬호 씨
▲ 차종손 박용우 씨


차종손은 한국전쟁 피난지인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왕십리, 돈암동, 미아리 등지로 이사를 다녀 초등학교를 네 군데나 옮겨 다닐 정도로 부평초 같은 어린 시절이었다. 그 뒤 성동중, 성동고(20회)를 나와 광운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종택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감탄하자 차종손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엄청나게 오지였어요. 비만 오면 중랑천이 넘쳐서 외부와는 완전히 고립된, 섬과 같은 마을이었죠. 전기도 아주 늦게 들어와 오랫동안 호롱불 아래서 생활했고, 교통이 불편해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라며 아름다움 경치 뒤에 숨어있는 팍팍했던 어릴 적 삶을 털어놓는다. 그러다가 이어 요즘의 형편을 말한다.

“1960, 70년대까지는 아무도 이곳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면서 동부간선도로가 개통되어 땅값이 올라가자 종중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문중 일로 오랜 송사까지 겪게 되었지요.”

개발바람에 시골 전답의 땅값이 뛰자 때아닌 효자가 넘친다는 세태인데, 하물며 문중 땅이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으니 오죽 시끌했을까.

문중 일로 종손측과 종중측으로 갈려 송사를 벌이는 일은 일제 시대부터 일어났던 일반적인 현상이며 현재도 비일비재하다. 문중 송사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상처만 남기 마련이다. 시작했다 하면 대법원까지 가게 되는데, 그것은 시간 낭비며 그에 소요되는 인적, 물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외적으로도 집안 망신이다.

다행스럽게도 서계 문중은 고심 끝에 영구 보존을 위해 '재단 설립'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그래서 2004년 1월 20일 서계문화재단(문화관광부서 설립인가)이 탄생했다. 설립자는 현 종손인 박찬호 씨며 이사장은 차종손 박용우 씨다. 이사가 5명, 감사가 2명, 종중 고문과 자문위원,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가에서는 또한 2001년 고문서와 고서 등 무려 558점의 자료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한 바 있는데, 서계 선생의 시권(時卷: 과거 때 글을 지어내던 종이)과 영정 등이 포함되어 타 문중들이 자료를 안전한 외부기관에 기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차종손은 종손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익히기 위해 여념이 없다. 그는 문중 간의 연대를 통해 종가마다 가지고 있는 고민을 공유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고택문화선양회 등의 활동도 기꺼이 나서고 있다. 특히 영남 종가를 이해하기 위해 안동 등을 수차 방문하기도 했다.

차종부 선산 김씨는 종가를 지키기 위해 두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종가를 지키자면 법이나 행정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맏이 천교(天敎, 1981년 생)에게 행정학을 전공하게 했다. 그리고 둘째 천익(天翼, 1983년 생)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했는데, 착한 며느리를 맞아 이곳에서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종택 뒷산으로 난 길을 따라 서계의 묘소를 찾아 갔다. 산세가 수려해 정말 시에서 읽었던 귀절인 ‘그림속으로 들어가는(擧鞭先入畵圖中)’ 느낌마저 든다.

묘소의 묘갈명은 이덕수(李德壽)가 지었다. 묘지(墓誌)는 스스로 지은 것을 썼다. 묘소 가는 길에 인현왕후 폐위를 반대하다 유배가던 중 경기도 과천에서 39세를 일기로 객사한 서계의 둘째아들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의 묘도 만날 수 있다.

주변에 석천동이라는 암각서(巖刻書)와 풍광이 아름다워 서계 자신이 가장 즐겨 찾았다는 취승대(聚勝臺)라는 글씨가 함께 남아 있다. 넓은 바위에 서계유거(西溪幽居), 수락동천(水落洞天)이라는 암각서도 보인다. 수락동천은 그가 처남인 약천 남구만과 담소를 나누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사후 반석 옆에 청풍정(淸風亭)이 건립되었으나 지금은 옛 터만 전해오고 있다.

반남선생포증기사비(潘南先生褒贈紀事碑) - 박상충의 포증 기념해 세운 비


서계 박세당의 10대조인 고려시대의 문신이요 학자인 반남(潘南) 박상충의 포증(褒贈)을 기념해 세운 비이다.

반남 박씨에 있어 박상충은 중흥조라 할 정도로 뚜렷한 행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포은 정몽주와 함께 주자학 보급에 큰 역할을 한 학자일 뿐만 아니라 향리에서 서울인 송도로 진출해 반남 박씨의 문한(文翰)을 연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또한 한산 이씨 목은 이색 집안과 혼인 및 수학을 통해 명문가로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서계와 치열하게 대립했던 우암 송시열에 의해 포증이 추진되어 국왕의 윤허로 영의정에 추증됨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비는 1682년(서계 53세)에 세워졌다. 모두 891자로 된 비문은 역시 10대손인 현석 박세채가 지었으며 글씨는 당대 명필로 유명한 박세당의 맏아들 박태유가 썼다. 이 비문 글씨는 그의 남은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힌다.




입력시간 : 2006/07/05 16:06




서수용 박약회 간사 saenae61@hanmail.net
· 사진=남정강 한얼보학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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