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 '꼴찌' 발표에 "타기관과 동일조건 평가는 부당" 주장

▲ 김용석 철도공사 감사가 기획예산처의 경영평가 결과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 박원식 차장
기획예산처가 지난 6월 19일 발표한 ‘2005년도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결과’ 발표에서 철도공사가 꼴찌를 기록한 데 대해 철도공사 직원들이 반발하는 등 파문이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평가 결과에 노조측이 공식 반박 광고를 내는가 하면 급기야는 철도공사의 한 임원이 ‘항거’의 표시로 사의를 표하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철도공사의 김용석 감사는 지난달 말 “기획예산처의 철도공사에 대한 조치는 부당합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감사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04년 1월 임기를 시작한 지 1년 반 만으로, 잔여 임기를 1년여 남겨놓은 상태에서의 단안이다.

김 감사가 사퇴를 결심한 이유는 기획예산처의 철도공사에 대한 경영 평가에 대해 승복할 수 없다는 것. 정부투자기관에 몸담고 있는 조직인으로서 상위 정부 기관의 처사에 공식 항의를 할 수 없어 ‘야인(野人)’의 신분으로 되돌아가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인 것이다.

지난해 철도청에서 정부투자기관으로 전환한 철도공사는 이번에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14개 공기업 평가에서 70.46점을 얻어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평가에서는 토지공사가 83.3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다음은 한국전력, 도로공사 등의 순이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철도공사 직원들은 올해 200%의 상여금만을 지급 받게 됐고 이는 1위인 토지공사의 500%와는 300%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상여금 문제를 떠나 철도공사와 임직원들은 “앞으로 최소 1년간은 최하위 경영 성적을 기록한 공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김용석 감사 '항거' 표시로 사의

이에 대해 철도공사 임직원들이나 사의를 결심한 김 감사는 “기획예산처의 평가 자체가 잘못됐다”거나 “전체 평가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철도공사는 적어도 지난해 경영평가를 다른 13개 정부투자기관과 함께 받을 대상이 아니다”라는 논리는 절대 굽히지 않고 있다.

이미 김 감사는 지난해 9월 ‘한국철도공사,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 및 이사회 대상 토론보고회에서 “철도공사는 2005경영평가 대상에서 우선 제외되도록 조치돼야 한다’는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알만한 사람들이나 기관 사이에서는 ‘2005 경영평가에서 철도공사가 꼴찌를 할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감사는 “지난해 공사로 갓 출범한 철도공사가 20년 이상 경영평가를 받아온 다른 정부투자기관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평가를 받고, 동일한 기준으로 그 결과에 따른 조치를 적용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철 사장을 비롯한 지금의 경영진은 지난해 6월에야 출범, 한 해 전체의 경영평가를 받을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 사장은 지난해 6월30일 부임했다. 그 전 6개월은 유전파동으로 대표이사 자리도 공석이었고 그야말로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 김 감사는 “이후에도 신임 사장이 업무 파악하는 데 2~3개월, 또 임직원 인사와 조직 개편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어떻게 경영성적을 논할 수 있는 입장이 되느냐고 항변한다.

“때문에 이 사장이 이번 평가와 관련,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내가 말렸다. 철도업무 정상화 등 공사의 앞날과 관련, 더 큰 일이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 그 문제부터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었다.” 김 감사는 “이런 일이 생길까봐 애초부터 이 사장이 부임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말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괜한 덤터기만 쓰는 것 아닐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또 공기업의 경영평가 방식에 대해서도 철도공사 임직원들은 이의를 제기한다. 기획예산처는 이번 평가를 상대평가로 시행 ‘전년 대비 해당 기관의 개선도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감사는 “철도공사는 상대적인 개선 노력을 평가한다는 원칙이 이미 근거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해 이전, 즉 2004년까지는 철도공사가 아닌 철도청 시절인데 그것을 기준으로 상대평가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2004년은 철도청에서 경영"

“툭 터놓고 말해 2004년 철도청 경영은 누가 했나. 정부가 한 것 아닌가. 그럼 정부 책임이지 그게 왜 철도공사 임직원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될 수 있나” 김 감사는 “철도공사를 출범시키면서, 자회사를 방만하게 설립하고 철도 부채 등을 부당하게 철도공사에 떠안겨 놓고 눈감고 지낸 기관이 누군데…”라고 반문한다.

철도공사가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항이라는 암시인 셈이다. 때문에 “철도공사 경영평가를 2년간 유예하거나 예비 평가 기간을 갖는 것이 타당했다”고 그는 항변한다.

▲ 한국철도공사가 기획예산처의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에 반발, 임원이 사퇴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 고영권 기자

철도공사 노조 또한 기획예산처의 평가에 반발, 신문에 반박 광고를 게재하는 등 항의하고 있다. 철도청 직원으로서 드러내놓고 정부의 경영평가에 불복할 수는 없지만 2만 2,000여 현 노조원 대부분이 과감하게 사표를 내던진 김 감사와 같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이번 평가를 둘러싼 철도공사 문제는 3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조직,철도공사의 정체성 확립과도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공사로 전환한 철도공사가 무려 11조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으며 이는 결국 경영정상화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는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정부에서 철도공사의 구조조정을 앞두고 사전 정지작업을 펴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는 상황.

“감사직을 사퇴하는 것은 경영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책임질 일도 없고, 부끄럽지도 않다.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했다.” 김 감사는 “지금 사퇴하는 것은 조금 더 자유로운 위치에서 국가 운영을 감시하고 문제들을 해결하고, 낡은 관행에 젖어있는 일부 관료들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라고 못박는다.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주어진 규정만 기계적으로 준수하려는 무사안일한 정부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국정운영은 향후에도 난맥상만을 노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달 말 사표가 수리되는 대로 김 감사는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철도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다음달부터 ‘국가운영전략 연구센터’를 열 계획인 김 감사는 “그동안 철도정책을 접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 등을 토대로 한국 철도의 미래와 국가 운영방식에 대한 조언들을 쏟아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