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장동호 씨 가족남편, 대뇌·척수세포 파괴로 사지 마비… 10년째 병상에12시간 간병 "여보, 그래도 함께 있어 행복해요"

▲ 13년째 남편의 루게릭병으로 간호하고 있는 한국 ALS협회 부회장 김진자 씨가 가족사진을 보이며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 임재범 기자
“오늘도 눈을 떠줘서 고마워요.”

13년째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ALSㆍ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을 앓는 남편 장동호(70) 씨를 보살펴 온 김진자(65) 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남편의 눈을 바라본다.

그가 살아있다는 마지막 삶의 증거.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는 것만이 온몸이 마비된 남편이, 이제 부인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벌써 10년째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꺼져가는 생명을 힘겹게 붙들고 있는 그다.

김 씨는 밤에도 20~30분 간격으로 가래를 빼줘야 하기 때문에 잠을 설친다. 기껏 잠들어 봐야 하루에 고작 3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욕창을 막기 위해 수시로 소독하고, 뻣뻣한 팔다리 움직여주고, 그리고 대소변 받아내고···. 잠시도 자리에 앉을 시간이 없다. 다리는 언제나 퉁퉁 부어 있다. 그녀 역시 거진 환자가 다 됐지만, 자신의 몸은 돌볼 겨를이 없다.

기자가 방문한 지 한 20분쯤 지났을까. 질문에 답하느라 남편의 곁을 잠시 비웠던 김 씨가 후다닥 방으로 서둘러 들어간다.

“아유, 미안 미안해요. 가래가 많이 있네. 목이 아파요? 팔 올릴까요?”

물론 아무런 대답도 돌아올 리 없다. 얼마 전만 해도 눈꺼풀을 감았다 뜨는 것으로 아내의 물음에 ‘그렇다’ ‘아니다’ 정도를 표현하던 그는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는 몸이 됐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데, 무심하게도 남편의 증세는 나아지기는커녕 하루하루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만 간다.

원인도 치료법도 규명이 안 된 난치 희귀질환 루게릭병. 대뇌와 척수 세포가 파괴돼 발병 후 보통 2~3년 사이에 숨이 멎는 치명적인 병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무너져 가는 육체와는 대조적으로 의식만은 또렷해 이 모든 파괴의 과정을 환자 스스로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내 가정파탄까지 부르는 잔인한 병

환자와 함께 가족들도 점점 시들어간다.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간병에, 천문학적 경제적 부담이 가족들을 짓누른다. 때문에 루게릭병에 걸리면, 십중팔구는 몇 년 내 재정적으로 가정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이 잔인한 이 병의 수순이다.

그러함에도 김 씨는 “남편이 같은 하늘 아래 같이 있음에 오로지 감사할 따름”이다.

“아침에 면도를 해주고 거울을 보여주면서 남편에게 ‘이쁘냐’고 묻곤 하면, 그냥 보일 듯 말 듯 살짝 웃는 듯 해요. 그래도 이런 게 잠깐의 즐거움 아니겠어요?”

장 씨의 침대 옆에는 바로 119로 연결되는 비상전화가 연결돼 있다. 언제 위기가 닥쳐올지 몰라서다. 그래서 함께 있는 1분, 1초의 시간도 아깝게만 느껴진다.

남편의 불행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정년 퇴직하기까지 병원이라고는 ‘문병’밖에 다니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했던 남편은 퇴직한 바로 이듬해인 1994년 가을, 처음으로 이상 증세를 보였다.

등산을 즐기던 장 씨가 평소처럼 북한산에 올라갔다가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손에 힘이 빠지는’ 불길한 예감을 받은 것이 첫 징후였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이렇게 무서운 병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건강하다”며 “멀쩡한데 왜 병원에 가냐”며 한사코 병원 진단조차 거부했던 남편이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을 허비한 뒤에야, 이름도 생소한 ‘루게릭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러고도 남편과 아내는 이후 1년 6개월이 넘게 실랑이를 벌였다. 이번에는 입원치료를 거부했다. 그러나 아내는 차마 남편에게 병명을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에게도 ‘비밀을 지켜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때만 해도 충격 받으면 어떻게 될까봐 두려웠어요.”

그러나 몸이 굳어가면서 언어 기능도 퇴행하던 장 씨는 진단 후 2년이 지나자 간신히 아내만 알아들을 정도로 얘기를 할 수 있었고, 2년 6개월 만에는 완전히 말을 잃었다. 어느날 새벽 호흡이 멈췄고, 부랴부랴 기관절제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병명을 알았던 아내에게도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요즘은 같은 병을 앓는 환자 가족들에게 처음부터 알리라고 말해줘요. (호흡이 멈추면) 하고 싶은 얘기도 못하잖아요.”

법대를 나와서 유달리 말을 잘했던 남편이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내는 잠시 먹먹해진다.

“항상 건강할 줄 알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다 뒤로 미뤘는데. 제주도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내 밝은 미소를 되찾는다. “처음 2~3년은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요. 하지만 내가 눈물 흘리면 남편도 울잖아요.”

언제까지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세상엔 남편을 위한 약이 없었다. 정부마저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 토박이로 현재 살고 있는 서울 방배동 빌라에서 20여 년이 넘게 살아왔지만, 남편이 쓰러진 뒤 10년이 지나도록 동사무소(사회복지 담당자가)에서 한 번도 나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인색한 정부 보조와 사회의 냉대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코 그대로 주저 않을 수 없는 사투가 아닌가.

발병 연령 낮아지는 추세

여자의 몸으로 김 씨는 스스로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1999년 스물아홉 명의 환자들의 뜻을 모아 한국ALS(근위축성 측삭경화증협회(www.kalsa.org)를 만들었다.

▲ 전국 곳곳의 루게릭병 환자들 주소가 적힌 노트. / 임재범 기자

그녀가 7년 째 소중히 간직해온 노트에는 이제 500명이 넘는 환자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녀의 전화기는 하루도 쉴새 없이 환자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발병 초기엔 정확한 병명을 못 찾고 헤매다가 병을 악화시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목이 아프다고, 혹은 허리가 아프다고, 디스크 수술을 받았는데 회복이 안 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루게릭병이라는 데 어떡하냐’는 사연, ‘특효약이 있다는 말에 현혹돼 몸과 마음이 더욱 피폐해지고, 가산까지 탕진했다’는 사연 등···. 가슴 아픈 일이 숱하게 많다.

젊은이들의 발병 소식은 특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 30대 환자는 부인이 집을 비운 사이 화장실에 갔다 쓰러져 혼자 일어나려고 두 시간을 넘게 발버둥쳤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엔 이혼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예전에는 보통 50세가 넘어야 발병한다고 알려졌었는데 근래 들어 30, 40대 젊은 사람들이 이 병으로 쓰러지는 일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은 고작 간병비 월 15만원. 통상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면 퇴근하는 간병인에게 하루 5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돈으로 간병인을 부른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혼자서 목욕을 시키려면, 보통 서너 시간씩 걸려요. 뻣뻣해진 다리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비누칠하고. 중노동이 아니라 상노동이죠.”

더욱이 올해 들어서는 바뀐 건강보험 혜택 때문에 걱정이 더 늘었다. 그간은 의료비 중 ‘급여’ 항목에 관해서는 후에 돌려 받았는데 장 씨는 마지막 재산인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없어져 버렸다.

“한 번 입원했다 하면 몇 백만원씩 드는데 월 15만원 간병비 주면서 어떻게 버틸 수 있나요?”

사실 남편의 퇴직 당시만 해도 2억~3억원에 달하는 퇴직금이 있어 별 노후 걱정은 없었던 부부였다. 하지만 진단 받고 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처음 38일 입원에 청구된 병원비만 4,800만원. 한 달이 멀다 하고 병원 신세를 지는 형국에 재산이 남아 날 리가 없었다.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으려 했더니 집의 소유주인 남편이 직접 와서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전신 마비된 남편을 데리고 어떻게 은행에 간단 말인가. 도리 없이 고리의 사채를 쓰고 있는 상황. 집을 팔아 빚을 갚고 싶어도 “환자를 데리고 어딜 이리저리 돌아다닐까” 또 걱정이다.

“그나마 우린 50세가 넘어서 왔지만, 젊은 사람들이 무슨 돈을 얼마나 모아놓았겠어요. 돈이 없으면 병원에 입원할 수도 없고, 또 퇴원은 어떻게 하나요?”

김 씨는 “그나마 정부에서 임대해주는 인공호흡기도 정부가 와서 직접 떼가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생색내기식 정책에서 벗어나 질환자들의 현실적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1930년대 미국 프로야구 스타 루 게릭이 이 병으로 사망하면서 그의 이름을 딴 이 병은 인구 10만 명당 0.4~2명 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협회에 따르면, 국내 환자는 1,800~2,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 발병 원인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각종 바이러스와 알루미늄 및 납 등의 중금속, 자가면역기전, 글루타메이트 같은 흥분성 신경 전달 물질, 칼슘 결합 단백 등과 관계가 있다는 가설이 알려진 정도다.

비교적 40세 이전에는 드물고, 40~70세에 발병한다. 환자 가운데 5~10%는 가족력이 있을 수 있다.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조금 더 발병 빈도가 높으며, 병이 시작된 후 대부분 2~5년 안에 호흡마비로 목숨을 잃는다.

◆ 주요 증상

대뇌와 척수의 운동 신경 세포가 파괴돼 점점 근육이 힘을 잃어가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처음에는 어깨, 팔, 다리 등 신체 일부의 근육이 마르고, 위축되기 시작해 온몸이 마비되는 치명적인 병이다. 말기에는 숨쉬는 것조차 어렵다. 그러나 의식은 명료하고, 배변 빛 배뇨 장애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진단 및 치료

근육 경련이 나타난다. 다리 혹은 팔, 손 등에서 근육 약화가 나타나고 마비성 근육이 생긴다. 근전도 검사나 근전도 검사를 겸한 근육전기검사와 신경전도 속도검사로 진단한다. 뇌나 척수에 생긴 다른 병과 감별하기 위해 핵자기공명영상과 컴퓨터 단층 촬영 등 뇌ㆍ척수 부분의 영상촬영 등도 실시된다. 혈액 검사 및 DNA 분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병의 진행을 막거나 병을 호전시키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여러 가지 보조기를 사용하여 증세가 심하지 않은 환자의 움직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삼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코를 통하거나 직접 위 속에 관을 넣어 음식물을 공급한다. 호흡에 이상이 생기면 인공 호흡기를 단다.

후원 및 상담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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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ALS협회, 조흥은행 367-04-078059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02-714-5522 www.kor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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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캠페인은 삼성 에버랜드도 함께 합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