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홈피, '일촌 맺기' 등 타인과의 소통의 장애서 개인공간으로 점차 변해

“처음엔 친구들과 ‘일촌’을 맺는 재미로 미니홈피 운영에 적극적이었는데, 나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게 점점 부담이 되고 매번 글이나 사진을 업데이트 하는 것도 이젠 지겨워졌어요”

대학생 이현주(21) 씨는 최근 개인 홈페이지를 미니홈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싸이월드’에서 타 업체의 서비스로 바꿨다. 2년여 동안 운영하며 저장해 둔 수백여 장의 사진과 글 등이 담긴 미니홈피는 지금 닫아둔 상태이다.

이 씨는 “다른 ‘일촌’ 친구들의 홈피도 접속을 잘 하지 않고 모든 메뉴를 닫아버리는 등 ‘개점 휴업’ 상태이거나 심지어 탈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한동안 열성적이었던 ‘싸이폐인’들이 젊은층 사이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01년 미니홈피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현재 1,800만 명이 넘는 회원 수를 자랑하는 싸이월드(www.cyworld.com)는 기존의 블로그와는 달리 사적인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한국형 블로그’로 1인 미디어 업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아성을 구축해왔다.

하루 종일 싸이월드에만 몰두한다는 뜻의 ‘싸이폐인’, ‘싸이홀릭’ 등 신조어가 등장하고, 인터넷에서 화제의 인물이 나타나면 덩달아 ‘ㅇㅇㅇ(이름) 싸이’가 인기 검색어로 덩달아 같이 오를 정도였다. 부모들은 싸이월드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등한시할까봐 전전긍긍했고 기업에서는 업무에 지장을 준다며 사이트 접속을 아예 차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2003년 싸이월드를 인수해 ‘싸이열풍’을 일으켰던 SK커뮤니케이션즈는 최근 ‘싸이마켓’으로 온라인 상거래 시장에 진출하는 등 사업 확장에 계속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또한 국내에서 성공한 노하우를 무기로 지난해 10월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이래 대만, 중국, 일본서 독일에 이르기까지 세계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싸이월드가 한창 인기를 모으던 초창기만 해도 각 미니홈피의 주인들은 메인 화면에 남겨진 일촌평(홈피 주인과 일촌관계를 맺은 이용자들만 남길 수 있는 코멘트)과 방명록이 얼마나 많은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 끊임없는 ‘일촌 순례(일촌들의 홈피를 돌아다니며 방명록을 남기는 것)’와 매일 새로운 글과 사진을 업데이트해 방문자 수를 늘리는 데 온힘을 쏟았고 일부 ‘싸이폐인’들은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까지 자신의 홈피를 홍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싸이폐인’들의 무모한 방문자 수 늘리기는 지난해 한 간호조무사가 신생아를 희롱하는 사진을 자신의 홈피를 꾸미기 위해 올린 사건으로 표면화되면서 그 부작용이 사회문제화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2004년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네티즌들의 ‘싸이질(싸이월드를 통해 미니홈피를 관리하거나 방문하는 행위)’ 열기는 예전같지 않다. 메인 화면의 일촌평을 모두 삭제하고 글을 남기지 못하게 하거나 남겨진 방명록을 일촌조차 보지 못하도록 ‘비밀이야’ 기능으로 잠그는 것이 최근의 미니홈피 트렌드가 되고 있다.

대학생 안혜원 (22) 씨는 요즘 싸이월드 이용 정도를 ‘이메일 확인’ 수준으로 비유한다. 이메일을 확인하듯 방명록에 새 글이 있는지 없는지만 본다는 뜻이다. 안 씨 역시 예전과는 달리 미니홈피를 ‘친구들과 만나는 색다른 공간’이 아니라 ‘사진 보관함’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싸이월드 침체’의 원인으로 네이버 블로그의 빠른 성장을 들고 있다.

국내 포털사이트 업계 1위인 네이버는 메인 화면에 ‘요즘 뜨는 이야기’ 등의 코너를 설치, 각 블로그를 링크시키는 전략으로 블로그 이용률을 대폭 높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 5월의 네이버 블로그의 월간 방문자수가 싸이월드의 방문자수를 앞지르며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휴면율이 18%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SK커뮤니케이션즈 홍보팀 명성남 과장은 “휴면율이 높은 것이 아니라 유저들의 이용 패턴이 달라진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싸이월드측이 최근 3개월간 접속하지 않는 휴면율을 조사한 결과는 전체의 2~3%에 불과하다는 것.

명 과장은 또 “네이버 블로그의 월간 방문자 수가 많게 나타난 것은 네이버 검색 결과에 블로그 내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며 로그인을 해야 이용할 수 있는 싸이월드와는 다르다”며 “특성을 놓고 따지면 싸이월드의 실질적 방문자 수와 이용률이 네이버 블로그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한다. 싸이월드가 자체 파악한 순수 페이지뷰는 월 190억 건으로 이는 네이버 블로그의 8배에 달하는 수치라는 것이다.

명 과장은 싸이월드 이용이 폐인 문화 등 중독적 특징에서 ‘일상화’로 이어지는 것을 사측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올 하반기 미니홈피 2.0버전 출시 등 이용자가 지루해 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계속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초기 싸이월드가 폭발적 관심을 모았던 요인이 지금은 되레 싸이폐인들의 ‘변심’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타인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과시하는 미니홈피의 특성이 역작용하고 있다는 것. 개성없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흥미를 잃고 있다는 설명이다.

비실명제인 블로그와 달리 다른 홈피에서 가져온 게시물인 ‘스크랩’이 대다수 미니홈피의 주 콘텐츠가 되는 현상은 많은 이용자들이 미니홈피 이용에 싫증을 내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밖에 거의 모든 네티즌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미니홈피가 더 이상 사적인 공간이 될 수 없게 된 것 또한 침체의 한 요인이다. 사생활 침해 사례가 잇따르면서 강화된 사생활 보호 기능으로 ‘훔쳐보는 재미’도 사라진 때문이다.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이동연 소장은 “사적 네트워크가 사이버 상에서도 이어지는 폐쇄성이 초기에는 이용자들에게 즐거움이었지만, 이제는 사적인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등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눈에 띄게 인기가 식고 있는 싸이월드.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네티즌들이 쉽게 식상해 하는 인터넷 서비스 시장에서 고점을 찍고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주목된다.


방지현 객원기자 leina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