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분 한류 바람의 다음 기착지는 동구권이다.” 해외 관련 업무를 담담해 온 방송 문화 관계자들이 한결 같이 내린 결론이다.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대만과 중국, 홍콩, 일본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장악한 한류 콘텐츠의 동구권 진출이 시도되면서 유럽에서 한류의 성공 기대감도 솔솔 불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의 성공에 도취해 다른 나라, 대륙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면 그것은 시기상조이다.

우선 한류의 유럽권 진출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인종과 문화적 정서가 다르다는 점이다.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체구가 작고 외모도 다른 동양인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낯설 수 있다는 것. MBC 허정숙 과장은 “외모가 비슷하고 유교문화나 가족을 중시하는 아시아권에서 한류가 쉽게 통한 반면 유럽인들은 우리와 정서나 의식구조에서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서유럽은 과거 아시아에서 식민지배를 했던 경험이 있어 역사적으로 우월의식이 강한 점을 무시할 수 없다. EBS 정선경 팀장 은 “문화적으로도 앞서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 국가의 콘텐츠와 당장 맞대결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동양인이 나오는 드라마가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거북하게 보일 수 있어서다.

또 한류의 확산을 위해 한국 브랜드와 콘텐츠를 알리려는 노력도 아직 걸음마에 불과하다. 동구에서 한국의 유명 방송국인 KBS나 MBC 등의 이름을 대도 현지인들이 아직 낯설어 하는 등 한국이 아시아 콘텐츠 시장의 맹주’라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특히 동구권 한류는 민간 주도가 아닌 정부 차원에서 본격 시도가 이뤄진다는 점도 아시아 한류와 크게 차별된다. 대만이나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현지 방송국이 한국산 드라마를 방영하면서 자연스럽고도 우연하게 한류 바람이 일었다면 동구권 진출은 해외 네트워크망을 가진 코트라와 방송위원회가 각 방송사들과 협력해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에 반론도 만만찮다. “동유럽은 아시아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라는 지적이다. 역사적으로도 아시아와 교류가 많았고 헝가리는 우리와 비슷한 기마 민족인 데다 음식도 비슷한 점이 많다. 유럽에서 열리는 여러 전시회를 다녀 본 방송위원회 백유미 국제교류부 차장은 “서유럽이나 미국보다는 동유럽에서 정서상으로 아시아 문화에 대한 반감이 적었고 한국산 프로그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증언한다.

동유럽이 우수 콘텐츠 부족 국가라는 환경도 한류의 진출에는 매우 긍정적이다. SBS프로덕션 이한수씨는 “동유럽은 서유럽과 달리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으며 제작되는 콘텐츠의 수준도 그리 높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이 지역 방송국들은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수입산으로 편성해 송출하고 있다.

이처럼 기회와 좌절의 양면성을 지닌 한류의 동구권 진출에 대해 코트라의 박은균 과장은 “아시아와는 다른 차원의 신중하고도 지속적인 전략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