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장안의 화제 모으며 1회 대회 개최… 당시 대회장은 인산인해2000년 이후 지성 겸비 미인 배출… 3일 제50호 대회 열려

▲ 1회 대회 포스터.
‘大韓女性(대한여성)의 진선미(眞善美)를 세계(世界)에 자랑할 미스코리아 選拔(선발)’

국위 선양을 위한 미의 사절을 뽑기 위해 1957년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가 어느덧 올해로 반세기를 맞았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중간에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제 1회 대회 때부터 전 국민의 큰 관심 속에 명실상부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인을 배출하는 빛나는 전통만은 흐트러짐 없이 한결같이 이어왔다.

초창기 미스코리아는 설립 목적에 따라 ‘관직(官職) 없는 대사(大使)’로 통했다. 국제 교류가 미미했던 당시에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는 가난과 전쟁의 비참함만이 간간이 알려졌던 우리나라를 해외에 새롭게 알릴 수 있는 절호의 민간 외교 무대였다.

또한 한국전쟁 후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볼거리마저 변변이 없던 시대에, 미스코리아 대회는 국민들에게는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즐거운 구경거리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금년 23세의 박현옥양이 4290년 미스코리아로 선발되었다. 오는 7월 11일 미국 롱비치에서 거행될 미스 유니버스에 참가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좌석은 물론 복도에까지 넘쳐 흐르는 수많은 관중과 못 들어가서 앞을 다투는 문밖의 군중들로 인해 일대 혼잡을 이룬 서울 명동 시립극장에서…”(1957년 5월 20일자 한국일보 기사 중에서)

제 1회 미스코리아 대회를 보도한 기사가 보여주듯, 대회장에 못 들어가 앞을 다투는 문밖의 군중들이 글 머리에서부터 다뤄질 만큼 당시의 대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유교적인 사회분위기 탓에 젊은 여성들이 미인대회에 출전하여 무대를 활보한다는 것은 당시엔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미스코리아 대회는 우리나라 문화 자체에 큰 충격을 던진 행사였다.

대회는 그야말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한판 ‘축제마당’이었다. 지금은 빛바랜 기록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성대한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도심에서 벌어지곤 했다.

개최 목적이 미스 유니버스 파견에 있었기 때문에 대회는 출발부터 미의 기준으로는 서구적 개념이 많이 도입됐다. 눈이 크고, 코도 오똑하며, 다리도 늘씬한 미인들이 선호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도한 서구적 스타일의 미인을 추구하기보단, 복스러운 동양의 고전미를 풍기는 미인들이 많이 배출됐다.

“전원이 수영복으로 등장해서 백옥같이 빛나는 흰 살결과 오동포동 탄력 있는 육체를 자랑했고, 또 다시 전원이 퇴장했다가 개개인이 나와서 풍만한 육체를 자랑했다.” (1958년 5월 26일자 한국일보)

1972년부터 미스코리아 대회는 지상파로 중계됐다. 이 같은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미스코리아 대회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본선에 진출만 해도 미인의 반열에 올랐고, 여자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미스코리아 돼라”는 것은 하나의 덕담이었다.

때마침 대중문화도 싹을 틔워나가면서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빼어난 미모를 앞세워 연예계에 속속 입성했다.

77년 미스코리아 진 김성희가 가수로 데뷔한 것을 시작으로 80년대 중ㆍ후반과 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숱한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과 방송인이 탄생했다. 87년 진 장윤정, 88년 진 김성령 선 김혜리, 89년 진 오현경 선 고현정, 91년 진 이영현 선 염정아, 92년 진 유하영 선 장은영 미 이승연, 93년 진 궁선영, 94년 진 한성주 미 성현아 등이 이때 배출된 연예계 스타들이다.

이같이 ‘미스코리아 대회 = 연예계 등용문’으로 인식될 정도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스코리아 대회는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93년 미스코리아 선발 비리와 일부 여성 단체의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 등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았고, 연예 매니저먼트 사업의 독자적 성장으로 미인대회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만 것.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스코리아 대회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예전처럼 얼굴만 예쁘다고 해서 뽑는 것이 아니라, 미와 지성을 모두 겸비한 명실상부한 팔방미인을 선발해 한국의 미를 대표하도록 했다.

그 결과 화려한 연예계 진출보다는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진출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2004년 세계 최고의 수재들이 공부하는 하버드대에 진학하는 기염을 토한 2002년 진 금나나, SBS 아나운서로 입사한 2005 진 김주희 등 사회 각계에 진출하는 신세대 미스코리아들의 활약상은 눈부실 정도다.

이처럼 지금까지 모두 346명의 미스코리아를 배출, 한국 여성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미스코리아 대회는 8월 3일(목요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다.

반세기를 관통한 미스코리아대회의 빛나는 역사가 다가올 50년을 향해 새롭게 쓰여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아름다운 순간은 케이블·위성 채널 MBC드라마넷이 생중계한다.

▲ 2006년 미스코리아 후보들이 독도와 울릉도를 방문했다. / 조영호 기자
▲ 2005년 미스코리아들이 지난 1월 경기도 광주의 한 장애인 요양시설에서 장애아들에게 간식을 먹여주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공군교육사령부를 방문한 2006 미스코리아 후보들. / 조영호 기자



▲1회 대회 수영복 심사 모습.
▲1회 대회 미스코리아 진 박현옥 양이 미국 롱비치에서 열리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 트랩을 오르고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