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 김호식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낮은 부담 높은 급여' 현 체제론 자손들 큰 부담… 정치권서 결단을

가입자 1,700만 명, 운용 자산만 160조원.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비중과 규모를 말해 주는 수치다. 더욱이 국민연금 제도는 지금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2003년 10월 ‘적정부담, 적정급여’를 골자로 하는 개선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 중인 상태.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과 관심의 한가운데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바로 김호식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다. 지난해 5월 공단 이사장을 맡아 취임 2년째를 맞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우려를 잘 알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질문과 의구심도 결국은 그만큼 커다란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김 이사장은 “국민들이 연금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오해와 궁금증을 푸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라고 말문을 열었다.

김 이사장이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선결과제는 국민연금 제도 개선 문제다. 특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 이후에는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우리 연금 제도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체계로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행 체계로 30~40년 후에는 연금 재정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 세대에게 막대한 부담을 떠안길 가능성이 큽니다.”

2003년 국민연금발전위원회가 추계한 바로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2047년엔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보험료는 올리고 수령액 수준은 일부 하향 조정하는 개선안을 정부가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국민의 눈치를 보는 여야의 의견이 맞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개혁하자’는 입장이고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 지대’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65세 이상 전원에게 기초연금을 주도록 하자’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이 법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한 공은 아직도 국회에 넘겨져 있다. 이번 가을 정기국회에서 본격 논의될 예정이지만 쉽사리 타협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은 ‘국민들이 보험금을 추가로 내게 되면 부담이 늘어난다’고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정부여당은 ‘기초연금제를 도입하면 막대한 재원이 든다’며 한나라당 안에 난색을 표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러다 국민연금을 나중에 받을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 라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국민연금을 불신해서 나온 말인 듯 싶은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개혁을 하는 것입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 제도 개선안은 연금이라는 좋은 제도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재차 강조한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안을 불가피한 조치"

1988년 시작된 국민연금은 처음 임금의 3%를 내고 나중에 임금의 70%를 가져가도록 돼 있었다. 이후 두 차례 수정을 거쳐 지금은 보험료 9%에 60% 급여로 규정돼 있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 여당의 개선안은 15.9%를 내고 나중에 50%를 받자는 것. 이렇게 되면 2070년까지 향후 60여 년간 국민연금제도는 무난히 유지될 것으로 본다.

“처음 국민연금 제도 도입 때는 급여를 가져가는 이들이 적었습니다. 당연히 보험료를 적게 내고도 나중에 많이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안 됐지요. 하지만 급여를 받야야 할 수혜자는 해마다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한정된 기금에서 급여 수준을 낮춰야만 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조치입니다.”

김 이사장은 “그럼 왜 처음부터 급여 수준을 낮게 책정했으면 문제가 안 됐을 텐데 뒤늦게 줄이느냐”는 질문에 “아마 처음부터 급여를 낮춰 놓았으면 ‘왜 돈을 많이 걷기만 하고 쓰지는 않냐’고 비난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에 대한 일부의 불신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질타의 소리도 더해진다고 한다. “연금기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까 먹는 것 아니냐” “왜 생활이 어렵다는 사람들까지 억지로 내게 만들고 고소득 전문직이나 자영업자들에게서는 제대로 안 걷는냐” 등의 추궁들이다.

“현재 국민연금기금 160조원 중 3분의1 정도인 50조원은 운영 수익입니다. 지난해에는 약 14조원의 수익을 올려 무려 9.53%의 수익률을 달성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1988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수익률이 8.44%라며 다른 어느 기금보다 월등하게 잘 운영되고 있다”고 힘줘 말한다.

실제 연금공단은 2000년 세계은행의 세계 주요 연·기금 운용수익률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홍콩의 아시안 인베스터지로부터 최우수 기관투자가상도 받는 등 운용의 효율성을 입증받았다. 김 이사장은 그래서 “연금기금이 부실관리되고 있다는 얘기는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 이사장은 또 저소득층에 국민연금 납부를 강제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반론을 제시한다. “국민연금의 취지는 사회보장 성격의 제도입니다. 국민 모두가 가입하는 강제성이 있어야만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지요.”

김 이사장은 또 “국민연금은 자신이 낸 만큼 나중에 되돌려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내면 그만인 건강보험료나 세금과는 다르다”며 “때문에 당장은 내기에 부담이 되더라도 노후를 대비한다고 생각하고 참아주시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설명한다.

자영업자들과 봉급생활자들 간의 형평성 문제가 대두된 데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현재 연금 규정은 소득에 한도를 둬 월 360만원을 최대액으로 설정하고 있다. 한 달에 1억원을 벌건 1,000만원을 벌건 내는 돈은 같다.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자신이 낸 돈보다 더 많이 나중에 가져가는 개념이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고 많이 내도록 할 수 없는 애로점이 있다”고 말한다.

즉 세금의 경우는 번 만큼 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소득이 많은 이들이 보험료를 많이 내고 나중에 많이 되돌려 받는다면 국민 형평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우려한다. 막상 수령할 때 남은 왜 그렇게 액수가 높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

물론 고소득 자영업자나 전문직 종사자들의 소득 파악이 봉급생활자들보다는 어렵다는 것도 납부액 형평성 유지의 저해 요소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성실한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서도 이들 불성실 신고자들에 대해서는 국세청의 협조를 받아 과세소득자료를 입수, 신고 소득을 상향조정하고 체납액을 적극 받아내는 등 특별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또 국민연금이 다른 연금제도와 중첩돼 생겨난 문제들에 대해서도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 이혼 시 배우자가 연금을 못받는 등의 문제 같은 것이 한 사례인데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연금공단은 꾸준히 개선조치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이 떨어지지 않도록 더 나은 운용 방안을 계속 찾을 계획이다. 그간 채권 투자 비중이 높았는데 채권 수익률이 날로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때문에 우량 종목 위주의 주식에도 투자하고 사회간접자본(SOC)과 사모펀드, 벤처, 국내외 부동산, BTL(Build Transfer Lease, 민간자본유치사업) 등이 국민연금의 새로운 투자처들. 이를 위해 연금공단은 60여 명의 전문 인력도 확보해 놨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의 특성상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기본틀은 유지할 것”이라고 못박는다.

서울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무역학과에 학사 편입, 경제와 인연을 맺은 김 이사장은 행정고시 합격 후 줄곧 경제기획원에서만 일해온 기획통이다. “기획원은 산하 기관이 없는 조직이어서 그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을 전체적이고 장기적으로 보는 훈련이 된 것 같다”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평가다.

"내부 개혁으로 국민 불신 불식시킬 것"

해마다 달라지는 공단의 위상만큼 조직과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만 간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편견을 의식해 여러 가지 내부 개혁조치들을 마련해 두고 있다. 직원들에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흔히 공기업이 그렇듯 연금공단이 권력기관이 아니라 서비스기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지사의 각 팀 명칭도 ‘지역가입자 관리팀’에서 ‘개인고객팀’, ‘사업장가입자 관리팀’에서 ‘직장고객팀’으로 바꾼 것도 고객 중심으로 인식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서다.

그래서 공단 영문 명칭도 NPC(National Pension Corporation)에서 NPS로 바꿨다. 마지막 C를 서비스를 뜻하는 S로 바꾼 것. 실제 고객을 위해서도 인터넷을 활용해 민원을 처리하고 연말소득세 공제 업무에도 개개인이 증명서를 떼지 않고 국세청에 자동으로 자료를 보내주기로 하는 등의 업무 개선을 시행하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 개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공통의 과제입니다. 이미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등은 개혁을 이뤄냈고 독일과 일본도 부분적으로 개선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대타협을 이뤄내지 못하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바로 국민연금이다. 물론 선거 등을 의식해 유권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여야가 쉽사리 접점을 찾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언젠가 터질 것을 알면서도 문제 해결을 마냥 미루고 가는 것은 책임회피며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김 이사장은 당부한다. “어쨌든 나중에 급여를 받는 수혜자가 더 늘어나게 되면 더 고치게 힘들어진다. 문제가 자꾸 커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결책을 찾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