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청소년 희망찾기 탐사대 뉴질랜드 루아페후 산 등정시각장애인 학생 등 20명의 한국·뉴질랜드 동포 청소년 거센 바람·빙벽·폭설 등 악조건 뚫고 감동의 정상 정복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중순. 지구의 반대편 뉴질랜드에서 열대야를 식혀주는 시원하고 가슴 뭉클한 소식이 전해졌다. 시각장애 학생을 포함한 한국의 청소년들이 불굴의 의지로 만년설의 고산을 정복한 것이다.

장애와 비장애 청소년, 뉴질랜드 교포 청소년 등 20명으로 짜여진 ‘2006 청소년 희망찾기 탐사대(대장 김영식·충주 칠금중 교사)’가 주인공이다. 다양한 출신의 또래 청소년들이 어울려 서로를 이해하고 힘을 합쳐 불가능에 도전한 그날의 동행기를 적는다.

5시간의 사투… 정상에 타임캡슐 묻어

8월 17일 낮 12시 30분 뉴질랜드 북섬 최고봉 루아페후 정상(해발 2,797m). 멀리서 보면 새하얀 만년설과 파란 하늘이 맞닿은 아름다운 곳.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험준하고 살을 에는 강풍마저 휘몰아쳐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고봉이다.

그 설산 꼭대기에 마침내 소년, 소녀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오르기 힘든다는 정상에 탐사대 일행 14명이 무사히 함께 오른 것.

그중 3명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털장갑을 벗어 던진 채 손을 하늘높이 치켜올렸다. 그리고 거센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역경을 넘어 드디어 희망을 ‘찾았다’는, 아니 희망을 ‘봤다’는 엄숙한 제의(祭儀)였다. 이들은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충주 성모학교에 다니는 한윤미(고1) 양과 김종석(중3) 군, 그리고 유재준(중3) 군.

한 양은 “손끝의 짜릿한 촉감과 ‘마음의 눈’으로 설산이 빚어낸 눈부신 대자연을 감상했다”며 “평생 잊지 못할 장엄한 광경이었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희망찾기 탐사대’가 루아페후 정상 도전을 위해 야영지를 나선 시간은 이날 아침 7시 30분. 해발 2,100m 전진 캠프에 도착한 대원들은 아이젠과 스패츠, 피켈, 방한모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만년설로 덮인 고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며칠째 내린 폭설 때문에 몸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졌다. 오르막 경사가 70도나 돼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구간이 수없이 이어졌다. 정상 부근에는 발을 헛디디면 수십m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빙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차가운 바람과도 싸워야 했다. 등반 경험이 전혀 없는 시각 장애 학생들에겐 불가능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장애 친구를 도우며, 힘을 합쳐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결국 5시간여의 사투 끝에 정상을 밟았다. “앞이 안 보여 너무 힘들어 도중에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는 유 군은 “하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들과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탐사대는 ‘시끄러운’ 등반대였다. 대원들이 말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들에게 앞길과 주변 상황을 말로 상세하게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30cm 앞에 큰 돌이 있으니 오른쪽으로 돌아! 이제 오르막 경사가 시작된다. 발 앞꿈치에 단단히 힘을 줘!” 대원들은 쉴새 없이 재잘댔다.

너무 시끄러운 탓에 사정을 모르는 일부 외국인들은 이맛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나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로토루아 야영장에서 만난 50대 영국인 부부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루아페후를 등정했다고 하자 연신 ‘어메이징(Amazing), 어메이징’을 말했다.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김영식 대장은 “루아페후는 지난해 뉴질랜드 군인 10명이 동사했을 정도로 히말라야 고봉 못지않게 험준하고 위험한 산”이라며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산을 정복한 어린 대원들이 너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산 정상에 각자 소원을 담은 타임캡슐을 정성껏 묻었다. 10년 뒤 다시 루아페후 정상을 밟아 자신들이 소망한 일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확인하자고 다짐하면서.

등반 성공은 이들에게 어떤 도전도 극복할 수 있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졸업 후 외국 유학을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왔다는 김 군은 “정상에 오르면서 이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중국에서 침술을 공부한 뒤 시각장애인 복지정책이 가장 잘 돼 있는 캐나다 유학 정복에도 도전해볼 작정”이라고 했다.

산악동아리 회원으로 뒤에 처진 친구들을 독려하는데 앞장섰던 우진주(칠금중 3) 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친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우정이 낳은 빛나는 희생정신

희망찾기 탐사대가 뉴질랜드에 도착한 것은 지난 8월 11일. 오클랜드 공항에는 등반에 동참할 뉴질랜드 교포 청소년 5명이 마중나와 있었다. 5개조(조당 4명)로 조 편성을 마친 탐사대는 캠퍼밴을 빌려 곧바로 루아페후산이 있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국립공원 내 와카파파 빌리지에 여장을 푼 탐사대는 다음날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시작했다.

대원들은 우선 인근 OPC모험학교에서 전문가로부터 암벽 등반술을 익혔다. 담력을 키우는 유격 훈련도 받았다. 이 모험학교는 세계 최초(1953년)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뉴질랜드 힐러리 경이 청소년들에게 도전 정신을 키워주기 위해 세운 수련시설. 모험을 즐기려는 세계 각국 청소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탐사대는 인근 1,800~2,000m급 설산에서 가상 등반 훈련도 실시했다.

사실 대원들이 고산 등정을 준비한 것은 이보다 훨씬 앞선다. 탐사대를 꾸린 5월부터 대원들은 개인 체력 훈련에 비지땀을 흘렸다.

김지은(부평서여중 1) 양은 매일 15층 아파트를 수십 번씩 오르내렸고, 이의정(중흥중 1) 양은 동네 조기축구회에 가입하여 축구로 다리 힘을 길렀다. 또한 앞이 안 보이는 한윤미 양은 러닝머신 달리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7월엔 서울 도봉산과 충주 조령산 등지서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들이 합숙하며 시각장애인 안내 보행법을 익혔다. 이런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에야 뉴질랜드로 떠났던 것이다.

당초 탐사대가 생각한 루아페후 정상 공격일은 18일. 하지만 현지 날씨 관계로 공격 날짜를 하루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상 도전을 코앞에 두고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성모학교생 송혜진(고 1) 양이 암벽등반 훈련을 하던 중 무릎을 다쳤다. 같은 반 송태리(고 1) 양도 심한 근육통을 호소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등반대에서 빠져야 했다.

문제는 캠프에 남을 이들의 안내자로 누가 잔류하느냐는 것이었다. 모든 대원이 정상 도전을 손꼽아온 터. 등반 일정을 미룰 수는 없고···. 탐사대 김 대장 등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갔다. 이때 이형탁(불곡중 2) 군 등 4명이 안내자로 남겠다고 자원했다. 1명도 아니고 4명씩이나.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한 희생정신이었다. 모두가 속으로 각오를 다시 다졌다.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반드시 등정을 성공하겠다고.

다음날 탐사대는 예정대로 정상에 도전했다. 송 양 등 6명은 전진캠프에 남아 친구들의 등반 성공을 간절하게 빌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이루어졌다.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넘어

대원들은 12일 동안의 모든 일정을 캠퍼밴에서 생활했다. 차로 이동하고, 차 안에서 잤다. 밥상 차리기, 빨래하기 등 모든 살림을 대원들 스스로 해냈다. 부모 슬하에서 벗어나 난생 처음 겪는 경험이다보니 황당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그중 압권은 이슬기(산곡여중 3) 양의 ‘생쌀 사건’이었다.

고된 등반 훈련으로 무척 허기졌던 날. 이 양이 속한 2조는 맛있는 찌개와 반찬을 해놓고 밥이 다 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밥 당번인 이 양이 그만 물을 붓는 일을 깜빡 잊고 쌀만 넣은 밥솥을 불에 올려 놓았던 것. 결국 밥솥까지 다 탔고, 2조는 다른 조 친구들에게 ‘구걸’하는 신세가 됐다. 지나고보니 잊지 못할 추억거리였다.

뉴질랜드 교포 학생들의 합류는 탐사대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가운데서도 김민상(왕가레이중 1) 군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대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김 군은 캠퍼밴 청소, 설거지 등 궂은 일을 솔선수범했다. 또 장애 친구를 안내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같은 조의 김종석군을 도와 가장 먼저 루아페후 정상을 밟았다. 김 대장은 이런 그에게 자신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상으로 주었다. 네팔 셀파족들이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진귀한 돌이라고 했다.

김 군의 형 진상(왕가레이중 3) 군도 모범을 보였다. 책임감이 강한 그는 어학 실력이 수준급이어서 통역관 노릇까지 톡톡히 해냈다. 이들 형제는 유년기에 뉴질랜드에 왔지만 한국말을 참 잘했다. 부모가 집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덕분이라고 했다.

김 대장을 비롯한 지도 교사들은 매일 밤 토의 시간을 가졌다. 주제는 거의 대부분이 대원들의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잘 어울리는지, 같은 조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지, 아픈 사람은 없는지···. 교사들은 면밀히 관찰한 내용을 대장에게 보고하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상의해서 해결책을 찾아냈다.

생활 지도를 맡은 소병조(43) 청소년지도사는 “등정 과정을 쭉 지켜보면서 시각장애 학생들이 모든 일에 진지하고 정신력도 무척 강한 사실을 알았다”면서 “정신적인 면에서 비장애 청소년이 장애 청소년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탐사를 시작할 때는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지만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없애고 서로 힘이 되어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설산에서 찾고 귀국길 비행기에 올랐다.

"교민사회 후원이 성공 밑거름"

'2006 청소년 희망찾기 탐사대'의 루아페후 도전 소식은 뉴질랜드 한인교민 사회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탐사대를 격려하려는 교민이 줄을 이었고 후원하겠다는 교민도 있었다. 식료품 회사인 한양유통 이성훈 사장은 트럭에 쌀과 김치, 고기 등을 가득 싣고 공항에 직접 나와 대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 사장이 전달한 식료품은 약 7,000달러 어치. 탐사대가 12일 동안 캠핑 생활을 하며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이 사장은 "고국서 어린 학생들이 의미있는 일을 하러 온다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9명의 직원이 꼬박 이틀을 걸려 식자재를 품목별로 챙겼다"고 말했다.

캠퍼밴 전문회사인 ㈜INL은 차량을 지원했다. 또 이 회사 김태훈 사장 등은 가이드를 자청, 탐사대와 전 일정을 함께 했다.

현지 교민 신문 '크리스천 라이프'는 탐사대의 활약을 표지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 이승현 편집인의 깜짝 방문은 대원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이 편집인은 정상 도전에 나서던 17일 새벽 6시에 탐사대가 묵고 있는 와카파파 빌리지 야영장을 방문, 대원들을 격려하고 등반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회까지 열었다.

그는 탐사대가 왔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날 밤 12시 직원 3명과 함께 자동차로 오클랜드를 출발, 6시간을 꼬박 달려 왔다고 했다. 그날 밤 등정을 축하하는 성대한 파티까지 열어준 이 편집인은 "소년들의 아름다운 도전이 매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다시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번 탐사를 기획한 도봉산숲속마을 김종민 팀장은 "물심 양면으로 도와준 교민들의 따뜻한 후원이 루아페후 등정 성공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와카파파 빌리지=글·사진 한덕동 기자 ddh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