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 특별한 차림새 간단히 해결, 코디는 기본·배달 서비스도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명품 의류 대여점 ‘에이스 메이커’ 매장. 단정하게 머리를 뒤로 감아올린 30대 여성이 들어왔다. 전시된 제품을 살펴보다가 “요즘은 이렇게 섹시한 것도 입나요?”하며 숍 매니저를 바라본다.

“언제 입을 건데요?” “아이 돌잔치 때 손님맞이를 위해 입으려구요.”

잠시 뒤 스타일리스트가 단정한 원피스 한 벌을 골라 고객에게 건넸다. 스커트 부분에 커다란 꽃 문양이 덧대인 블랙의 알마니 꼴레지오니 원피스. 같은 색상의 망사 볼레로와 프라다 검정 구두와 깜찍한 페라가모 토트백으로 마무리했다.

30대 여성 고객은 “일부 부유층이 입는 수백만원짜리 명품 옷이 사치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중요한 날을 앞두니 격이 높은 ‘명품’을 입고 싶었다”며 “행사용 옷을 사지 않고 빌려 입기 때문에 더 저렴한 편”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그녀가 선택한 원피스, 구두, 핸드백은 모두 합하면 400만원에 상당한다. 그러나 실제 지불한 비용은 1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100만~400만원 대 초고가 원피스는 3만5,000원, 상하의는 각각 2만원에 빌릴 수 있다. 핸드백은 3만원, 구두는 5,000원에 대여한다. 월정액 55만원을 내면, 매일매일 명품 옷으로 바꿔 치장할 수도 있다.

이 매장은 샤넬, 프라다, 안나수이에서 요즘 미국에서 인기 있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베카 테일러, 골드라벨 등 인지도 높은 명품 의류 800여 벌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선호되는 브랜드에 관해 물었다.

그러나 숍 매니저는 “브랜드보단 색상이나 유행디자인이 고객의 주 선택 기준”이라며 브랜드 서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유행이나 의상 착용 목적에 따라 변하지만, 최근에는 핑크나 문양 프린팅이 과감하게 들어간 화사한 의상이 잘 나간다”는 설명으로 말을 돌렸다.

20~30대가 주고객, 10대 고객도 증가 추세

▲ 어울리는 의상을 고르는 고객. 월 55만원을 내면 회원이 될 수 있다. / 임재범 기자

이러한 명품 매장은 서비스도 ‘특급’이다. 배송 전담 직원을 두어 집까지 배달하고 수거한다. 연예인 코디네이터 출신 스타일리스트가 얼굴과 체형에 맞는 옷을 추천해주는 것은 기본이고, 명품 화장품으로 메이크업 서비스도 해준다. 명품 의상에 걸맞는 ‘품위’를 살려주는 것. 전략은 주효했다.

유명 연예인도 미인대회 출신들도 대여해 입었다는 이 명품 의류 대여매장이 문을 연 것은 2003년. 이후 3년새 회원은 5,000여 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최근 자기 과시와 허영심이 가득찬 ‘된장녀’ 논란이 뜨겁지만 명품 대여 매장은 이 같은 시선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명품이라면 남들이 입던 옷이라도 맹목적으로 선호하는 왜곡된 소비행태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사는 것이 아니고, 빌리는 것인만큼 더 알뜰한 소비가 아니겠느냐”는 것.

이 명품 의류 대여점 이명직(32) 사장은 “재래시장에서 옷을 사도 한 벌에 5만원은 넘게 줘야 한다”며 “좋은 옷을 싸게 입는다는 면에서 합리적 소비”라고 힘주어 말했다.

옆의 숍 매니저도 거든다. “연년생 자매를 둔 어머니가 찾아온 적이 있는데 딸들 중 언니 졸업식 때 옷을 사주었더니 단 한 번밖에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고객들은 이런 명품 대여점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러한 명품 대여점을 찾는 주 고객은 20, 30대 여대생과 직장 여성이지만, 요즘은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명품 옷을 빌리기 위해 올 정도로 명품 소비가 연령을 넘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장은 “졸업 시즌이나 호텔 파티가 열릴 때는 하루 100여 벌 이상이 나간다”며 “올해 매출은 지난해 대비 두 배가 넘게 껑충 뛰었다”고 살짝 귀띔했다.

명품을 입어보니…
내 몸에 어울리는 옷이 진짜 '명품'

안나수이, 루이비통···. 세상에 명품은 많지만 정작 내가 접해본 명품은 거의 없다.

가까이 하기엔 내 주머니가 너무 가벼운 탓이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지금까지 명품과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과연 명품이 어울릴까' 하는 두려움과 , '좋은 옷 입으면 나도 좀 달라 보이려나' 하는 기대감. 명품 옷을 싼 값에 대여해 준다는 명품 대여점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내 머리 속에는 두 생각들이 갈마들었다.

'명품'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법한 으리으리한 인테리어를 상상했던 나의 기대와 다르게 대여점은 의외로 소박했다. 고백하자면, 명품을 잘 모르는 나는 옷 고르는데도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레이스가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하늘하늘하거나, 무늬가 화려하거나' 라는 것이 솔직한 첫 느낌 이었다.

파티복으로나 어울릴 것 같은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들이 나에게 어울리기나 할지 걱정이 앞섰다. 한참을 우왕좌왕한 뒤에야 옷 한 벌 한 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주로 여성스러운 라인이 강조되거나 속이 살짝 비치는 옷들이 많았다. 은근슬쩍 여성미를 강조하는 옷을 좋아하지만 평소에는 차마 입어보지도 못했던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딨으랴.

우아한 커튼이 드리워진 탈의실 안은 마치 혼자만의 공간처럼 편안했다. 그러나 고가의 명품이라는 생각이 앞서니 옷을 입는 데는 전혀 편안하지 못했다. 행여나 옷이 찢어질까, 상처가 날까 조심조심 하느라 옷이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어찌나 어색하던지. 화장기 없는 얼굴과 하늘거리는 옷은 정말이지 안 어울렸다. 그런데 보기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아 걱정했던 옷들도 오히려 직접 입어 보니 깔끔한 선이 살아나 몸 맵시를 더욱 살려주었다. 원피스를 입었을 때는 화려한 무늬 덕에 뱃살(?)을 가릴 수 있어 만족스럽기도 했다.

명품 옷을 만지고 입으면서야 알았다. 나는 지금껏 '명품은 주머니 무거운 그네들만 입는 화려한 옷'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안나수이 원피스를 입었을 때 내 표정과 행동에 어색함이 묻어 나온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명품 옷도 그냥 옷일 뿐이었다. 입을 때 부스럭거리고 움직이다 보면 구겨지기도 했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있는가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도 있었다. 마찬가지다. 명품 옷이 아니어도 나와 어울리게 예쁘게 잘 입을 수 있다면 굳이 명품 옷만 찾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명품 옷을 터부시할 생각도 없다. 다만 명품족들에게 진짜로 내게 맞는 명품 옷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어졌다.

이정흔 객원기자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