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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벽에 갇힌 '그들만의 아픔'
국내 최초 성전환자 실태 보고서
모멸감 탓 성전환 사실 쉬쉬… 제도적 정비·사회적 인식 바뀌어야



▲ 9월 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성전환자 인권 실태조사 보고대회'에서 참석 인사들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회적 편견과 차별 속에서 음지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성전환자들에 대한 공식 실태 보고서가 국내 최초로 나왔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와 성소수자 인권단체 등이 공동으로 구성한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은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성전환자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38명)과 설문조사(78명) 등을 실시, 그 결과물을 최근 내놓았다. 심층면접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Male To FemaleㆍMTF) 16명과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Female To MaleㆍFTM) 22명이 각각 응했다.

성전환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고민에 대한 국내 연구는 그동안 극히 미미했던 게 사실이다. 이들이 워낙 소수 중의 소수인 데다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바라보는 시선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수의 성전환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처한 삶의 조건들을 생생하게 담은 이번 보고서는 사회적 소수자인 성전환자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들을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은 “연예인 하리수 씨 등장 이전에 우리 사회는 성전환자에 대해 무지했고 그 이후로도 편견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이에 성전환자들의 삶을 드러내 사회로부터 배제된 그들의 시민권을 회복하고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목적을 뒀다”고 보고서를 낸 동기를 밝혔다.

기획단은 성전환자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조망했으며 현재의 생활여건도 꼼꼼하게 살펴봤다. 이를 통해 드러난 그들의 삶의 궤적은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고뇌, 차별과 냉대에 의한 아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청소년기 극심한 성정체성 혼란

“초등학교 때 포크댄스 같은 걸 남자애들이랑 할 때는 정말 악몽이었어요. 그때 짧은 치마를 입고 연습하고 사람들 보는 데서 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문ㅇ식, FTM, 25세)

“유치원 때, 제가 의식이 있었을 때부터 인형놀이, 고무줄놀이 이런 것들을 항상 했어요. 그때부터 여자로 생각하고 살았는데 (중략) 어떻게 하면 더 여성스러워질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이ㅇ정, MTF, 32세)

대부분 성전환자들에게 유년기의 경험과 감정은 그들의 성별 정체성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전환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생물학적으로 반대의 성을 지향한 것은 반대의 성이 본래 자신의 성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한 증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지나 청소년기에 이르면 성전환자들의 내적 갈등은 본격화한다. 남녀 성별을 보다 엄격하게 구분하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사회적으로 주어진 성별과 끊임없이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지, 치마로 나뉘는 교복과 남녀 학교에 고유한 규율 등이 갈등을 증폭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런 반면 청소년기는 생물학적 동성의 또래 아이들과 집단 생활을 통해 이질감과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발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 선생님들에게 ‘남자처럼 하고 다니지 마라’는 욕을 많이 들었어요. 수업 시간 내내 제 욕을 하고 나가신 분도 있었어요. 왠지 서럽더라구요. 그날 하루 종일 울었어요. 엎드려서 하루 종일.”(김ㅇ진, FTM, 36세)



이용훈(오른쪽) 대법원장이 지난 6월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 손용석 기자


성전환자들에게 ‘2차 성징’이 발현하는 청소년기는 또한 성별 정체성 혼란으로 인한 고뇌가 심해지는 격랑의 시기다. 남성 혹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뚜렷해지면서 스스로 인식하는 성과 생물학적 성의 불일치 때문에 절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리가 제게는 큰 거였어요. 그때가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성격이 쾌활했다가 그걸 계기로 바뀌었죠. 여자 애들에게 난 남자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여자로 보인다는 게 굉장히 수치스럽더라구요.”(김ㅇ진, FTM, 36세)

“발기되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발기하는 것을 감추려고 옷을 두 벌씩, 속옷을 두 벌씩 겹으로 입었어요.”(박ㅇ순, MTF, 60세)

남녀를 구분하는 일상생활 공간도 성전환자들에게는 곤혹스러움 그 자체다. 공중화장실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전환자들은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려고 할 때조차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MTF에게는 여자화장실이, FTM에게는 남자화장실이 자연스러운 선택이겠지만 혹여 멸시의 시선과 맞닥뜨릴까 두려워 공중화장실은 들어갈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길거리를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쟤 남자야, 여자야?”하며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여간 거북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주어진 병역의 의무도 성전환자들에게는 커다란 장벽과 같다.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MTF에게 곤혹스러운 것은 물론 FTM에게도 스스로를 결핍된 남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MTF의 경우 신체검사를 받기 전에 종종 호르몬 치료를 하기 때문에 ‘성 주체성 장애’로 면제 판정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MTF들은 금녀의 구역에서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성별 정체성의 혼란에서 빚어지는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성과 일치된 육체를 갖기 위해 많은 성전환자들은 호르몬 투여와 수술 등 의학적 해결책을 선택하게 된다.

성전환자들은 호르몬 투여에 따른 신체적 변화에 만족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슴 수술과 정소-난소 제거 등 1차 수술을 통해 보다 가시적인 육체의 변화를 시도한다.



▲ 2005년 6월 5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동성애자들의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트랜스젠더 댄싱팀이 화려한 복장으로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 최흥수 기자


하지만 성기 성형을 하는 2차 수술은 FTM과 MTF 사이에 차이가 있는데 FTM은 대부분 2차 수술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MTF는 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현재의 의료기술 수준으로는 FTM의 2차 수술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한 때문으로 보고서는 풀이했다.

의학적 조치를 받는다 하더라도 성전환자들의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 자신들의 성전환 사실이 행여라도 주변에 밝혀지는 것은 차라리 공포에 가깝다. 이런 두려움은 사회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업을 하다가 1억5,000만원 가량 사기를 당했어요. 그런데 다른 피해자들은 고소를 했지만 (주민등록 확인 때 성전환 사실이 드러날까봐) 제 이름으로는 고소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김ㅇ철, FTM, 34세)

성전환자들은 누구나 정체성 노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현재 살아가는 성과 신분등록상의 성이 다른 데서 오는 문제다. 그런 까닭에 성전환자들은 여권 발급, 은행 계좌 개설, 운전면허 취득 등 모든 국민이 누리는 일상적인 편익조차 마다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주는 편리함보다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면서 받게 될 모멸감이 훨씬 큰 탓이다.

성전환자들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직업 선택의 폭도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각종 제출 서류상의 성별과 외모가 일치하지 않는 성전환자들에게 취업문을 흔쾌히 열어줄 직장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전환자들은 소위 그럴 듯한 직업을 얻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그나마 가질 수 있는 직업은 FTM의 경우 배달, 서빙, 운전 등이고 MTF의 경우는 주로 ‘트랜스 클럽’ 등 성산업에 종사하는 일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트랜스 클럽은 MTF들이 여성으로서 인정받고 성전환 수술 비용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련 정보도 공유할 수 있어 MTF들이 많이 유입되는 곳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얼마나 예쁜 외모를 가졌느냐에 따라 취업의 지속성과 수입액이 결정되는 또 다른 차별이 존재했다.



▲ 트랜스젠더 문제를 양지로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하리수씨.


성전환자들에게는 가족, 친척과의 관계 설정도 풀기 힘든 숙제다. 타고난 성을 버리고 성전환 수술을 통해 새로운 성으로 거듭난 뒤에는 그 문제가 더욱 골치 아프다. 아들에서 딸로, 혹은 언니에서 오빠로 가족 관계를 재구성해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성전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져 혼자 숨어 사는 아픔을 선택하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울타리조차 잃어버린 성전환자들이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문명사회라면 그들이 인간으로서 누릴 최소한의 기본권를 보장해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성전환자 문제는 국민 기본권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이번 보고서가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등 성소수자 인권보호를 위한 법 제정 활동에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성별의 선천적 굴레와 사회의 후천적 냉대라는 이중고에 좌절해야만 했던 성전환자들. 그들이 평범한 이웃과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보고서는 제도적 정비에 앞서 우리 안의 편견이 먼저 깨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6/09/14 12:51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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