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용 허용 604종… 유해성 여부 아직 확인 안 돼체내 축적 땐 병 유발 가능… 가공식품 섭취 줄여야

자취생 조모(28) 씨는 집에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어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문득 호기심에 포장 겉면에 적힌 식품원료를 훑어 보면서 내심 놀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원료가 왜 그리도 많은지···. 찜찜한 기분도 들었다. 라면에는 산도조절제, 올레오레진로즈메리, 엘-글루타민산나트륨, 카라멜색소, 후추시즈닝분말, 향미증진제, 세이리버오일, 파프리카추출색소 등이, 김밥에는 파프리카 색소, 복합조미료 등이 포함돼 있었다. 조 씨는 한 끼에 10가지가 넘는 식품첨가물을 먹은 셈이다.

정부는 지난 9월 8일 식품위생법을 개정해 ‘식품완전표시제’를 전면 시행했다. 가공식품의 포장지에 주요 구성 성분 5가지만 표시하면 됐던 이전과 달리 모든 성분을 표기하도록 한 제도다.

소비자들이 제대로 알고 식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원료를 투명하게 확인하라는 취지다. 현대인의 식생활 안전을 위한 일보전진의 조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름도 생소하고 종류도 다양한 식품첨가물의 특성을 아는 소비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는 게 병이라며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까. 그 때문에 가공식품 및 외식업계 업자들은 식품첨가물 용어를 더 어렵게 해 소비자들을 질리게 하는지 모른다.

일본의 언론인 야마모토 히로토(山本弘人)가 쓴 <오염된 몸, 320킬로그램의 공포>(손성애 옮김ㆍ여성신문사)는 식품첨가물과 환경호르몬 등 각종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한 책이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식품첨가물에 대해 꼼꼼히 살펴본다.

식품첨가물은 간단히 말해 ‘식품의 제조, 가공, 보존을 목적으로 넣는 물질’을 말한다. 각국은 법으로 허용범위와 기준치를 엄격히 정해놓고 있는데,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는 아직 그 안전성이나 위험성에 있어 국제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총 604종에 이르는 식품첨가물이 밥상에 오른다. 여기엔 407종의 화학 첨가물과 190종의 천연 첨가물, 그리고 혼합제제가 포함된다. 이러한 식품첨가

물을 우리는 평생 얼마나 먹을까. 책의 저자 야마모토가 일본 내 식품첨가물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이를 산출한 결과는 놀랍다. 1년 동안 약 4㎏의 식품첨가물을 먹고 있으며, 수명을 80세로 잡았을 경우 1인당 평생에 걸쳐 약 320㎏의 식품첨가물이 체내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섭취량도 애매하지만, 정부가 허가한 품목이고 기준치도 정해져 있으니 마음놓고 섭취해도 된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는 데 더 큰 우려가 있다. 허가 품목 중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식품첨가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2년 미국에서 발암물질로 지정된 사카린나트륨은 여전히 일부 나라에서 다이어트 감미료로 판매된다. 적색40호는 초콜릿 등 유럽에서 수입되는 과자류에 흔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신장장애 및 알레르기성의 우려가 있다. 포함량이 기준치 이하일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안심할 수가 없다. 문제는 ‘생물 내에서의 농축’과 ‘복합작용’이다. 특히 복합작용이 골치인데, 하나일 때는 해롭지 않지만, 2종류 이상의 화학물질이 결합하면 복합작용에 의해 유해성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또, 정부가 완전표시제를 시행해도 맹점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원재료와 식품첨가물을 구분해 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 식품첨가물인지 확실히 파악할 수 없다. 표시 면제 품목도 많다. 제조 과정에서만 사용되고 최종 과정에서 식품에 남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표시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일괄적인 이름으로 표시돼 식품첨가물의 개별 명칭이 표시되지 않은 것이 많다. 예를 들어 라면스프 원료 중 하나로 표기된 ‘돈골농축분말’에 다른 첨가물을 넣었다 해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향료, 조미료, 유화제 등 재료가 아니라 용도명만 밝혀주면 되는 것들도 있다.

식품첨가물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몸에는 외부환경에 저항하며 체내 환경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능력이 있다. 면역과 호르몬, 그리고 자율신경이다. 이 3가지 기능은 상당히 섬세해서 극소량의 화학물질에도 영향을 받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게다가 이들은 서로 연관돼 있어 어느 하나가 틀어질 경우 다른 2가지 능력도 영향을 받게 된다. 때문에 우리 몸의 정상적 활동을 위해서는 ‘먹는 거 하나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2년 전, 편의점에서 빵을 사먹은 고등학생이 갑작스런 쇼크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 의료진은 빵에 첨가된 극소량의 첨가물이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식품첨가물의 위험성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구입 시 표시성분을 보고 위험성 논란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변이원성이 보고된 첨가물에는 유의해야 한다. 변이원성이란 미생물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독성인데, 유전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매일 먹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변이원성이 있는 식품첨가물 가운데 가장 많이 보급된 것은 카라멜 색소다. 카라멜 색소는 1~4호까지 있는데 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 독성 평가를 받은 2~4호다. 암모니아 화합물을 이용하여 제조될 경우(3, 4호)에는 당과 암모니아의 반응에 따라 ‘4-메틸이미다졸(4-mi)’이라는 부산물이 발생하는데 이 4 -mi를 섞어 쥐에게 먹이면 경련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멜 2~4호에서 변이원성을 보였다는 또 다른 보고도 있다. 그러나 식품포장에는 단순히 ‘카라멜 색소’로 일괄 표시하고 있어 4종류 중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발암성이 의심되는 식품첨가물도 상당수다. 냉동어류 식품에 사용되는 산화방지제 BHA는 쥐의 전위(前胃) 부분에 암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살균제이자 표백제인 과산화수소도 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서 십이지장에 암을 발생시킨 것으로 보고됐는데, 어묵과 삶은 면에 사용되고 있다. 곰방이방지제인 OPP는 쥐에게 방광암과 신장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됐는데, 감귤류에 묻은 상태 그대로 수입된다.

감미료인 사카린과 사카린나트륨도 발암성을 의심받는 유명한 첨가물이다. 다이어트 감미료, 치약, 껌 등에 주로 사용된다. 적색2호는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에서 허용돼 있지만, 미국에서는 금지된 식용색소다. 지난해 6월 서울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 100곳에서 사탕이나 젤리, 스택 등 어린이용 과자 35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8개 제품에서 검출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햄과 소시지의 발색제ㆍ방부제로 사용되는 아질산나트륨은 대량 섭취하면 혈관이 확장되고 혈액 속 헤모글로빈의 철이 산화돼 산소와의 결합이 어려워지면서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을 일으킨다고 한다. 특히 유아는 메트헤모글로빈을 환원시키는 효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어묵과 마요네즈에 유화제로 쓰이는 콘드로이틴유산나트륨도 유전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필렌글리콜은 합성보존료와 착색료의 용해제로 오징어 안주, 훈제 문어, 잼, 명태 알, 케이크, 찹쌀떡, 치즈, 만두피, 두부 등의 가공식품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신장장애의 위험이 있다며 금지됐고, 일본에서 실시한 발암성 스크리닝 실험에서도 염색체 이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식품첨가물끼리 결합하는 복합작용이 일어날지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아질산나트륨은 고기나 생선과 함께 먹을 때 위험하다. 고기나 생선을 구울 때 검게 타 그을린 부분에서는 ‘2급 아민’이라는 물질이 생성된다. 2급 아민은 아질산염(아질산나트륨, 아질산칼슘)이 위산에 의해 변화한 물질과 만나면 화학변화를 일으켜 니트로소아민이라는 물질을 만드는데, 이는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변이원성 물질이다.

솔빈산은 부패를 방지하고 보존성을 향상시키는 첨가물로 마가린, 간장, 청량음료, 절임류 등에 사용된다. 솔빈산이 들어간 잼과 아질산나트륨이 함유된 햄을 함께 먹으면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두 식품첨가물이 몸 속에서 만나 반응하면 강한 변이원성 물질(1.4지니트로-2-메틸피로날)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질산염은 후추와 같은 향신료에 함유된 피페린과 반응해도 새로운 변이원성 물질(6-니트로피페로날)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타민C와 비타민E에는 아질산염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어 몸 속에서 6-니트로피페로날 생성을 억제한다. 때문에 아질산나트륨이 들어 있는 식품은 생야채와 함께 먹어주는 게 조금이나마 안전한 셈이다. 맛 궁합이 좋기로 유명한 레몬과 홍차에도 문제가 있다.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되는 레몬에는 곰팡이방지제 OPP가 묻어 있는데, 홍차 속의 카페인과 만나면 세포독성이 높아져 발암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한다.

식품첨가물 천지인 현대인의 밥상을 야마모토는 ‘지뢰밭’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만큼 우리는 안전성이 확실치 않은 음식물에 포위된 채 식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음식물로 인한 우리 몸의 반응이 유전을 통해 한 세대를 지나서야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전성이 100% 입증된 인공첨가물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마다 주변에서 식품첨가물이 든 가공식품과 농약 및 항생제로 키운 농수축산물을 식재료로 구입해 하루 3끼를 먹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건강한 식사법은 뭘까. 방법은 한 가지. 되도록 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야마모토도 신선한 신토불이 계절식품으로 균형 잡힌 식단을 꾸리는 식생활 습관을 기르는 것이 최상이라고 충고한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