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과정 거치면 본교 입학 대기기간 단축… 러 유학 도움 기대

국내에서 러시아인 교수들로부터 러시아어를 배우고 대학 학부 예비과정도 이수할 수 있는 어학원이 최근 문을 열었다.

지난 10월 제주 시내에 오픈한 로모노소프 모스크바국립대 부설 국제교육원 예비학부 어학원이 그곳.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며 250여 년 역사의 로모노소프 모스크바국립대는 세계 대학 랭킹 67위의 명문.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러시아를 공부하거나 유학을 준비중인 학생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 대학의 학부 과정 입학을 위해서는 보통 러시아 본교에서 10개월의 예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교를 졸업한 후 모스크바로 건너가 10개월간 현지에서 공부해야 했던 것이 그동안의 일반적인 코스.

하지만 이번에 제주에 개설된 예비학부 어학원은 10개월 중 5개월의 교육을 맡게 된다. 학생들로서는 10개월 동안 모스크바에서 어학 등 기초 공부를 하는 과정을 5개월로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모스크바국립대는 2명의 교수를 제주에 파견해 현재 강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어 회화와 문법은 물론, 문화와 역사, 풍속 등 러시아 대학 입학을 위한 기초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모스크바국립대 어학원의 국내 설립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지난해부터 국내 기업가 및 발명인들이 이 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 다니는 러시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벌여 온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서울과 러시아를 오가며 특강을 하던 몇몇 발명인들과 발명인들의 전문잡지인 ‘발명이야기’가 주체가 돼 어학원 설립이 성사됐다.

“아직 학교 분교까지의 자격은 아닙니다. 장차 학교 분교 설립을 위한 전초 과정으로서 어학원부터 세우기로 한 것이지요.” 이해남 어학원장은 “모스크바대학측에서도 한국에 예비어학원을 여는 데 무척 적극적이었다”며 “한국 유학생이 늘어나고 있고 러시아와의 교류도 계속 확대되는 추세여서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협약식을 하는 이해남 '발명이야기' 대표와 모스크바대 총장.
모스크바국립대 어학원이 서울이 아닌 제주에 들어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자유도시로 지정된 제주는 외국 대학이나 학원이 진출하기에는 최적의 조건. 교육 시장이 적잖이 개방될 곳이기 때문이다. 유학 갈 학생들이 많은 서울에 어학원을 세우면 당장 학생 유치에는 유리하겠지만 굳이 제주를 택한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다.

대학을 졸업하고 러시아 유학을 위해 이 어학원에서 수강하고 있는 박범수 군은 “러시아로 가서 예비학부 과정을 이수하는 것보다 비용과 시간 면에서 훨씬 절약이 된다”고 털어놓는다. 명지대를 졸업한 박 군은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할 계획이고 수강하는 학생들 중에는 발레 전공자, 회사원, 또 일찍부터 러시아어를 배우려는 어린이들도 있다. 제주 토박이도 있지만 대부분 부산, 서울 등 외지에서 온 학생들이 더 많다.

모스크바국립대 어학원이 국내에 생김으로써 유학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일 수 있게 된 것도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혜택이다. 그간 국내에서 고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러시아에서 예비학부 과정을 이수하려면 9월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 일반적. 하지만 여기서 고교를 졸업하기 전 5개월 과정을 미리 이수하고 떠나면 1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현지 9월 개강 전까지 예비학부 과정을 5개월만 이수하면 국내 5개월 과정을 포함, 10개월 이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어학원측은 이를 위해 겨울과 여름 방학 때 하루 4~8시간 집중적으로 강의하는 방학 캠프 교실도 마련하고 있다.

제주도청 국제자유도시추진국 투자지원과 이영철 투자유치담당은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제주 입장에서도 모스크바국립대 어학원의 역할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글ㆍ사진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