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에 매각과정 비자금 수백억 조성 의혹감사원 간부 자살사건도 유족측 "타살 가능성"주장

“김흥주게이트 수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김흥주(57) 삼주산업 회장의 사기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7일,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흥주게이트의 ‘폭발성’을 예고했다. 김 회장에 대한 수사결과에 따라 금융감독원, 감사원, 검찰은 물론 정ㆍ재계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김 씨 사건의 후폭풍이 예상되는 ‘뇌관’은 크게 ▲옛 그레이스백화점(현 현대백화점) 매각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 ▲감사원 출신 김모 씨 자살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김흥주게이트의 단초는 1998년 10월 김 씨가 그레이스백화점을 현대백화점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김 씨는 본인 지분 30%를 포함해 사보이산업측과 함께 60%의 지분을 확보해 그해 3월 그레이스백화점의 회장이 된 뒤 7개월 만에 이를 현대백화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수십억∼100여 억원의 차액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근 그레이스백화점 매각 의혹을 겨누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인수 과정에 수백억원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단서를 포착했다는 전언이다. 검찰이 16일 전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장 김모(57·현대백화점 계열사 사장) 씨를 참고인으로 소환, 매각 과정 등을 조사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매각대금 400억 부풀렸을 수도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장이 전 그레이스백화점 김흥주 회장 로비의혹과 관련 11일 서울 서부지검에서 10시간이 넘는 소환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흥주 씨 측근과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그레이스백화점 매각 총액과 현대백화점이 실제 김 씨에게 지급한 금액이 다르다고 한다. 현대백화점은 당시 그레이스백화점 부채 2,294억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514억원에 백화점을 인수, 총 매각대금이 2,808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2,400억원에 계약을 체결, 나머지 400여 억원이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백화점이 매각 총액이 2,000억원에 못 미치는 그레이스백화점을 2,400억원으로 부풀려 김 씨와 계약을 한 뒤 차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검찰 P수사관이 이 부분을 수사하려 하자 ‘45인 형제회’ 멤버인 K검사장이 개입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K검사장은 김 씨 변호인이었던 H부장검사와 90년대 중반 서울 동부지검에서 함께 근무한 막역한 사이로 비자금 수사를 비롯해 김씨의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 의혹에 대한 수사도 방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 문제의 비자금이 실제는 영업권(프리미엄)이며 비자금으로 오인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대검과 서울지검은 최근 비자금과 관련한 정황을 포착, 이들 첩보를 서부지검 수사팀에 넘겨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그레이스를 인수할 때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되기 전이어서 수사 결과에 따라 현대가(家)와 김대중(DJ)정부 시절의 정치권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그레이스백화점 매각 과정에서 조성된 400억원의 비자금 중 일부가 김 씨의 권력기관 로비에 활용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씨가 법원·검찰·감사원·금감원, 정치권 등의 '45인회'(혹은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들의 모임') 멤버들과 교분을 쌓기 시작한 것이 그레이스백화점 임원 시절부터로 상당한 자금을 동원했을 것이라는 배경에서다.

김흥주게이트의 또 다른 뇌관은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김 씨는 그레이스백화점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삼주산업, 스페이스테크놀로지를 설립해 레저산업, 유통업, 금융업, 해외 투자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에 나섰다.

김 씨는 DJ정부 실세인 H 씨를 통해 가까워진 이근영 전 금감원장이 소개한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 등의 도움을 받아 2001년 골드상호신용금고 지분 30%를 110억원에 인수키로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 김 씨는 형제회 45인들을 적극 활용했다. 그중에서 김 씨가 특별히 관리한 '8인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구속된 금감원 김중회 부회장을 비롯해 김 씨의 로비로 변호사에서 검사가 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H 부장검사는 금고 인수자금을 중개한 혐의를 받고 있고, K 검사장은 김 씨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 감사원 K 감사위원은 김 씨가 골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할 수 있게 경기 S금고에서 59억원을 무담보로 대출한 혐의가 있다.

그러나 김 씨의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 시도는 계약금 10억원만 지불한 뒤 나머지 100억원은 금고 예치금에서 빼내 잔금을 치르려고 하다가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다. 금감원, 감사원 '형제'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금고 인수는 물건너갔고 김 씨는 부도가 예상되는 스페이스테크놀러지 명의의 100여 억원어치의 당좌수표를 발행(사기)했다. 때마침 이용호 씨가 김 씨 및 45인회의 불법행위를 검찰에 진정, 수사망이 좁혀오자 김 씨는 2003년 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수사 미흡하면 특검으로 갈 것"

이후 3년9개월 만인 지난해 말 김 씨는 이미 팔아 치운 땅이 1,500억원대로 치솟자 소송으로 되찾기 위해 귀국했다가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수배 중인 김 씨가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데는 8인회 멤버인 검찰 간부 출신 B변호사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HㆍK검사의 계좌를 추적하고 B변호사를 조사했다. 그밖에 PㆍMㆍL검사장, L차장 , L부장검사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이달 말 인사를 앞둔 검찰을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P 검사장은 H 부장검사와 같은 지역 출신이고, M검사장은 김 씨와 동향으로 연루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고, L 부장검사는 정부기관 파견 때 김 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45인 형제회 멤버인 감사원 김모 씨의 죽음(사망 당시 46세)도 정국을 뒤흔들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김 씨는 스페이스테크놀로지의 공동대표로 영입됐다가 사정기관에 불법을 폭로하려다 2002년 2월 단골 술집 주인의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당시 사인은 당국이 자살로 발표했지만 가족들은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가족에게 유서 한 장, 전화 한 통 없이 사망한 데다 사회 엘리트에 속하는 김 씨가 억측이 불거질 수 있는 장소에서 자살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불법을 폭로하려는 김 씨의 입을 막기 위해 누군가가 살해를 했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검찰 일각에서도 “김흥주게이트에 폭력조직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며 “김 씨의 죽음과 연관됐는지 여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김흥주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제 식구 감싸기로 인해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비등하면서 검찰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김흥주 로비 수사에 대한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수사가 미흡하면 결국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검찰을 압박했다.

김흥주게이트 수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어디까지 파헤쳐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