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담배꽁초와의 전쟁' 한 달과태료 부과에 곳곳서 실랑이 불구 점자 장착… 웰빙區로 거듭나는 중

4억 6,390만원.

서울 강남구가 1월 1일부터 한 달간 구 전역에서 담배 꽁초를 버리다 적발된 사람에게 부과한 과태료 총액이다. 모두 9,278명이 적발됐다.

강남구는 지금 ‘꽁초와의 전쟁’이 치열하다.

1월 29일 오후 2시께 서울 강남역 인근 대로. 노란 어깨띠를 두른 공무원들이 거리를 지나며 담배를 피는 사람들의 손끝을 주시한다. 이미 소문난 때문인지 담배꽁초를 무심코 버리는 사람은 크게 줄어든 시점. 단속반원들은 “처음 거리에 나왔을 때는 단속하기 바쁠 정도로 담배꽁초 무단투기자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속 건수가 큰폭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방송 카메라기자는 담배 꽁초 무단 투기 장면을 찍으려고 하루종일 기다리다 헛탕치고 돌아갔다”는 풍문과는 달리, 약 3시간 동안 시티극장 앞 부근에서 걸린 꽁초 무단 투기자는 10명을 넘었다.

“경찰도 아니면서 무슨 단속이에요?”

막무가내로 큰소리를 친 20대 초반의 ‘꽁초 남성’은 과태료 부과를 위해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자 줄행랑을 쳤다. 결국 단속 공무원들은 청년을 잡지 못했다.

이어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신호등에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한 젊은이가 담배 꽁초를 맨홀 빗물받이 속으로 버리는 장면이 목격됐다.

단속반이 다가가 고지서를 발급하려 하자 “그냥 버린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곳에 버렸는데 좀 봐달라”고 선처를 호소하다가 “맨홀에 버리는 것은 그냥 길바닥에 버리는 것보다 더 나쁜 행위다. 청소하기도 쉽지 않고, 맨홀이 막히기도 한다”는 단속반원들의 설명에 마지못해 신분증을 꺼내 제시한다.

외국인도 단속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대 초반의 영국인은 “기초생활질서를 지키지 않았다. 과태료 부과 용지에 사인하라”는 설명에 부끄러운 듯 황급히 서명을 하고 종종걸음으로 인파 속에 사라졌다.

오후 4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 단속반원과 말쑥한 차림의 청년 사이에 실랑이가 한창이다.

“언제 단속한다고 알려줬나요?” “단속하려면 먼저 휴지통부터 많이 설치하고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난해 10월부터 현수막과 전광판, 매스컴 등을 통해 홍보해왔습니다.” “휴지통은 지금 계신 곳에서 앞뒤로 10m 이내에 다 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다시 단속 공무원을 똑바로 응시하며 되묻는다. “담배 피시죠? 솔직히 담배 피던 사람이 10m나 떨어진 휴지통까지 가서 버리겠어요?”

뿐만 아니다. 이어 “경찰에 걸리면 3만원인데, 강남구청 공무원에 걸리면 5만원이냐?” “강남권역만 단속하면, 건너편(서초구)에 가서 꽁초를 버리는 것은 괜찮냐”는 등 청년의 항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탓인지 단속 공무원들은 일일이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20여 분간이나 실랑이를 벌인 뒤에야 신분증을 제시했다.

이날 단속에 나선 한 공무원은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하는 사람은 설혹 쓰레기통이 코앞에 있어도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버린다. 잘못된 습관이 문제”라며 “꾸준히 단속하여 주민들의 기초질서 의식을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단속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강행되고 있는 강남구의 기초질서 지키기 사업은 비단 담배 등 쓰레기 투기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불법 광고물 자진 철거와 인도의 불법 차량 주차를 강력하게 규제해왔다.

이는 ‘잘 사는 강남’은 물질적으로만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질서 의식 등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운 ‘웰빙도시’가 돼야 한다는 맹정주 강남구청장의 소신에서 비롯됐다.

담배 꽁초를 버리는 행위 등은 극히 사소해보이지만, 이 같은 작은 공중질서 하나도 소홀함 없이 지켜나가는 곳에서는 범죄 등 주민들 삶의 질을 위협하는 요인들도 발붙일 수 없다는 것. 이른바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맞닿아 있다.

강남구청 김성회 공보실장은 “담배 꽁초 단속은 단순히 청결한 거리를 만든다는 의의를 넘어서, 궁극적으로는 성숙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3월부터는 서초구도 기초질서 지키기 사업에 동참할 계획이다. 3월 1일부터 쓰레기 배출 시간 위반과 담배 꽁초 무단 투기 행위에 대해 각각 10만원과 3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일제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

“누군가 건물 유리창 하나를 깨뜨렸는데 이를 고치지 않고 방치한다면, 이 건물이 관리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도 유리창을 깨뜨려 결국은 유리창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리은 1982년 범죄 이론인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 Theory)를 한 월간지에 발표했다.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이 이론은 1990년대 뉴욕 경찰이 치안 유지를 위해 적극 도입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줄리아니와 브랜트 뉴욕경찰청장은 절망적인 뉴욕의 치안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했다.

유리창 낙서, 무임 승차, 구걸 등의 사소한 경범죄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한 것. 경범죄에 지나치게 강경하게 대처한다는 논란도 일었으나 결과적으로 뉴욕의 삶의 질은 높아졌다. 실제로 범죄율도 감소했다.

이 이론은 인식의 절대적인 힘을 주목하는 이론으로, 범죄학에서 출발했지만 기업의 경영이론 등으로도 접목ㆍ발전되고 있다.

▦ 해외 담배꽁초 투기 과태료 부과 실태

담배 꽁초 무단 투기자는 전 세계의 ‘공공의 적?’

그간 우리나라에선 사소한 일로 방관되어온 담배 꽁초 무단 투기는 이미 여러 선진국에선 강력한 규제의 대상이 돼왔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깨끗한 도시국가로 평가 받는 싱가포르에선 담배꽁초 무단 투기는 ‘범죄’다. 담배 꽁초를 버리면 미화 500달러(약 35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심하게는 태형까지 당할 수 있다.

그간 선진국 가운데 담배에 관해선 가장 관대한 일본의 경우도 2002년 10월 도쿄 지요다(千代田)구가 ‘생활환경 조례’에 금지 조항을 넣은 이후,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채택하고 있다. 담배 꽁초 투기는 물론 길거리 흡연 자체를 강력히 금지하고 있다. 노상 흡연의 경우 최고 5만엔(약 40만원)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홍콩의 경우도 거리에 담배 꽁초나 휴지를 버리면 6개월의 금고형이나 최고 2만엔(약 16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므로, 노상 흡연 시 각별히 주의가 요구된다.

● 환경청소과 임형만 과장
"젊은 세대에 질서의식 심는 계기될 것"

“20대 젊은이들이 주로 단속되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기초질서 의식 함양이 부족했다는 결과입니다.”

강남구청 환경청소과 임형만 과장은 “1980년대생 젊은이들이 단속 대상의 80~90%를 차지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학교와 가정에서 기초질서 지키기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를 리드하는 젊은 세대가 질서 의식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한 달간의 단속 건수가 무려 9,000건을 넘어섰다는 점을 봐도 그러한 심각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만큼 질서 의식이 생활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 과장은 “적발된 사람들의 경우 단속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담배 꽁초 무단 투기에 대한 잘못은 인정한다”며 이러한 면에서 “단속된 젊은이들을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 과장에 따르면 전체 9,000 여 건 중 단속 대상이 된 젊은이들이 극렬하게 저항해 경찰이 출동한 경우는 불과 3건. 구청 홈페이지에 단속에 대한 항의성 글을 남긴 이들까지 포함에도 불과 1% 미만에 그친다고. “시행 전 우려했던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임 과장은 이어 “이 같은 강남구의 성공적인 선례가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