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위협할 죽음의 변종 바이러스, 우리나라서 창궐 땐 전국민 30% 발병

2월 11일 경기 안성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H5N1ㆍAI)이 발생했다. 즉시 가금류 이동 제한 조치가 내려졌고, 도로변 곳곳에 방역 초소가 설치됐다. 46일여 만에 음성으로 판정돼 조치가 해제됐지만, 일부 농장에 대한 검역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아 이 일대에 대한 차단 방역활동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이번이 국내에서만 6번째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독감이다. 다행히 인체 감염 사례는 보고 되지 않았지만, 이로써 한국도 조류독감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드러났다.

닭에게 감염되는 독감에 왜 이처럼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일까. 조류독감이 과연 인류를 위협할 신종 슈퍼 독감(판데믹 인플루엔자ㆍPandemic Influenza)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신종 슈퍼 독감의 대유행을 막을 방법은 있을까.

우리나라서 창궐할 경우 인구의 0.1%가 사망

3월 27일 대한인수공통전염병학회 주최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판데믹 인플루엔자 미디어 브리핑’에서 고려대 의대 박승철 석좌교수는 “조류독감의 변형이 될지, 다른 바이러스로 인한 것일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전 세계에 죽음의 공포를 드리울 신종 슈퍼 독감의 출현이 임박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예측했다.

마치 재난 영화 시나리오 같은 믿기지 않는 가정이다. 그러나 의학ㆍ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21세기, 신종 슈퍼 독감이란 대재앙으로 인한 막대한 인류의 희생이 코 앞에 닥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05년 9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될 경우 최대 1억 5,0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으며, 총 8,000억 달러(837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류는 20세기에 3차례의 커다란 독감 재앙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다. 1918년 8월에서 1919년에 걸쳐 전 세계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을 비롯,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으로 수백만 명에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러한 과거 발병 사례에 비춰 신종 슈퍼 독감이 우리나라에 창궐했을 때 예측되는 피해 시나리오를 밝혔다.

그 내용은 ▲우리나라 국민 중 5만4,600여 명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하고 ▲23만5,600여 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하루 평균 약 6,600명의 새로운 입원 환자가 발생하고 ▲중환자실 입원자가 정점을 이루는 발생 4~6주째에는 매주마다 약 9,000명의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신종 슈퍼 독감이 창궐하면 전 국민의 30%에서 발병, 0.11%가 사망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2004년 조류독감이 발생한 중국 윈낭성에서 의료진들이 살균처분한 닭을 담은 포대를 옮기고 있다.
그러나 신종 슈퍼 독감이 확산되는 데에는 다음의 3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 종간의 장벽을 뛰어 넘어 변종이 많이 생기는 ‘대변이’가 일어나야 하고 둘째, 치명적인 인체 감염이 발생해야 하고 셋째, ‘인간 대 인간’의 전염이 널리 전파돼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2007년 2월까지 세계보건기구에 보고된 조류 독감의 인간 감염 사례는 총 272건. 이 중 166명이 사망했다. 이들의 경우 대부분 독감이 조류에서 사람에 옮겨진 사례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인간 대 인간 감염 사례도 보고되고 있어 이러한 독감 바이러스의 ‘신종 슈퍼독감’ 돌변 우려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에 WHO는 신종 슈퍼 독감 위협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전략을 제기하고, 대유행에 대한 대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여섯 단계를 설정했는데 ▲1단계, 인간 감염 사례의 저위험성 ▲2단계, 인간 감염 사례의 고위험성 ▲3단계, 인간 대 인간 전염이 없거나 아주 제한적임 ▲4단계, 증가된 인간 대 인간 전염의 증거 ▲5단계, 유의한 인간 대 인간 전염의 증거 ▲6단계, 유효하고 지속적인 인간 대 인간 전염이 일어나는 단계다.

현재는 대유행 징후가 발견되는 3단계로 분류되고 있다. 인간 대 인간 전염이 확대되지 않았기에 신종 슈퍼 독감의 대유행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이러한 치명적인 확산은 단지 시간문제로 남아있다는 견해다.

시기적인 정황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른바 ‘주기론’이다. 박승철 석좌교수는 “20세기의 신종 슈퍼 독감 출현 추이를 살펴보면 최소 10년, 최대 40년에 걸쳐 항원대변이 현상이 일어났다”며 “지금은 1968년 홍콩 독감이후 40년에 이르렀기 때문에 또 다른 대변이가 출현하기 직전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차원의 재난 대비책 세워야…

그렇다면 과연 신종 슈퍼 독감의 출현을 앞두고 어떤 대비책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이나 조류독감에 맞서 보건복지부와 농림부가 잘 대처해왔다. 그러나 이미 조류독감의 인체 감염이 12개국에서 일어났고 계속 확산되는 상황이어서 국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신종 슈퍼 독감의 출현을 조속히 알아채지 못하고, 대처가 늦은 나라로부터 국내로 바이러스가 유입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은 거의 없다. 질병관리본부 전염병 대응팀 권준옥 팀장은 “질병 발생을 조기에 발견, 전염경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범국가적 감시체계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종 슈퍼 독감에 대한 방어수단의 하나인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와 백신의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타미플루는 스위스 제약사인 로슈가 독점 생산하고 있어 생산물량이 한정돼 예상 수요량을 제때 확보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00만 명분의 타미플루 확보를 위한 특별 예산을 이미 마련했고, 영국 보건 당국도 1,400만여 명분을 주문해 놓은 상태. 가까운 일본만 해도 2,500만 명분의 비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항바이러스제 비축 노력은 아직 초보적 단계. 지금까지 약 100만 명 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했을 뿐이어서, 유사시 항바이러스제 확보 전쟁이 벌어질 상황이다.

신종 슈퍼 독감에 대한 백신 개발 및 공급 체계 마련도 시급하다. 개인적 차원에선 철저와 위생관리와 기침 예절(기침이 나올 때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고, 손수건이나 휴지를 이용하는 에티켓), 휴교 등 사회적인 예방조치에 협조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권준옥 팀장은 “유사시 개인 위생 관리와 사회적 조치 이행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전염병 전파를 막고, 질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종 슈퍼 독감에 대한 경고음은 이미 울리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재난을 막을 순 없어도 피해 규모를 줄일 순 있다는 것. 이에 따른 대처를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