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은 장애인의 날… 당당히 벗은 당신이 아름답습니다월간지 표지 모델로 사회 편견 깨기 파격적 몸짓… 시나리오 작가로 활발한 활동

임재범 기자
S라인이 이 시대의 젊은 여성이 갈망하는 ‘꿈’이라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는 참으로 피하고 싶은 ‘악몽’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여성’이라는 호칭만 들어도 감지덕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장애를 가진 이 땅의 여성들은 때로는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 축’에도 못 끼는 무성적 존재로 취급받곤 하니까.

그래서 여성이 장애가 있는 몸을 드러낸다는 건, 편견으로 얼룩진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에 대해 몸짓으로 표현하는 ‘무언의 시위’와 같다.

그러한 관점에서 척수 장애를 지닌 시나리오 작가 김지수(35) 씨가 지난달 월간지 ‘함께걸음’(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펴냄)의 표지 사진으로 공개한 ‘등’ 사진엔 내포된 말이 무척이나 많다.

김 씨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소아마비에 감염되면서 장애가 생겼고, 자라면서 허리가 조금씩 휘기 시작했다. 의료진으로부터는 당연히 척추 수술 권유를 받았지만, “몇 년 동안 침대에 누워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몸을 돌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열여덟 살 때 늦깎이로 학교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를 거친 뒤 지금은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가 데뷔를 앞두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척추는 100도 120도로 차츰 휘어지더니 이제는 그녀의 표현처럼, 완벽한 S라인 척추로 굴곡이 졌다.

지금도 그러한 선택에 후회하진 않지만, 오랫동안 만나온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이라는 현실의 문제 앞에서 그녀를 끌어안지 못하는 게 바로 ‘몸’ 때문이라는 걸 경험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 한때는 그러한 몸을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때의 그녀는 사진 찍기를 몹시 싫어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평소엔 장애가 있는 몸이라는 걸 두루뭉술하게 느끼다가 사진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았을 땐 내심 많이 슬펐거든요.”

그런 그녀가 “척추 장애로 휘어진 등에 바디 페인팅을 하고 사진 찍을 여성을 구한다”는 잡지사 측의 연락을 받고, 흔쾌히 모델로 나선 것에는 “앙상하지만, 지금까지 지탱해준 고마운 몸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마주치자”는 생각에서였다.

"나를 지탱해주는 고마운 몸"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몸에도 개성이 있어요. 그렇기에 장애가 있는 몸이 아름답진 않아도 나름의 멋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으로서의 몸을 드러낸다는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고단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휘어지고 굽어진 척추와 팔, 다리를 드러내는 것을 선택했다.

꿋꿋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촬영 도중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열여섯 살 이후로 대중 목욕탕에 가본 적이 없다”는 김 씨는 “몸의 장애 유무를 떠나 여자로서 타인의 앞에서 몸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촬영 후에는 폭음도 했다.

예상했던 것이지만 사진이 공개된 이후에는 더욱 힘들었다. 특히 여성이라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되는 난처한 시선들. ‘누드 모델 왔어?’ 친구들의 농담에도 마냥 웃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김 씨는 “장애인들 사이에서조차 장애인의 몸과 ‘성(性)’을 드러내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장애를 왜곡되게 바라보는 편견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김 씨는 몇 년 전 장애인의 성 담론을 다뤄 화제가 됐던 다큐멘터리 ‘핑크팰리스’(서동일 감독)의 후편인 ‘핑크팰리스 2’의 시나리오 작가로 현재 작업 중이다.

5개의 이야기 중 2개 작품의 시나리오를 맡았다. 이미 촬영을 마친 ‘러브앰티’에서 휠체어를 탄 여성과 목발을 짚은 남성이 여행을 떠났다가 묵을 여관이 없어 겪는 에피소드를 다뤘는가 하면, 현재 준비 중인 ‘으라차차’를 통해서는 척수 장애를 가진 남성을 통해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장애인에 대한) 섹스 자원봉사’에 관한 화두를 던질 예정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위한 인터뷰를 하면서 장애인들의 성에 대한 의식이 무척 개방적이라는 데 놀란 적이 많아요. 이에 반해 공개적으로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말하는 사람은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성은 자연스런 삶의 일부인데 말입니다.” 장애가 있는 몸을 드러낸 사진, 장애인의 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등 사회적 반향이 큰 메시지를 통해 김지수 씨는 장애에 대한 견고한 사회의 편견을 넘어서는 소통을 오늘도 꿈꾼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