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수수께끼현대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 본인 의지와 상관없는 기질적 정신세계

“꿈에 무엇이 보였다고??”

“느닷없이 할아버지가 왔다 가요.”

“수염 허연 할아버지요. 자정만 되면 나타나서 뚫어져라 날 바라보다가 사라져요. 그 눈빛이 무서워요."

정황은 명백했다. 여학생은 무병을 앓고 있었다. 큰 무당에게 여학생을 데리고 갔다.

여학생은 굿이 시작되자마자 신기가 발동하여 날뛰기 시작했다. 여학생은 입에 거품을 물고 나뒹굴더니 돌연 벌떡 일어나 단숨에 날카로운 작두 위로 성큼 올라섰다.

여학생의 어머니는 작둣날을 올린 드럼통 주위에서 울고 있었고, 그 여학생을 따라온 친구 너댓은 넋이 나간 듯 자지러졌다. 외가 쪽 작은 할아버지가 박수무당이었는데, 그 조상신이 여학생 몸으로 옮겨온 것이다.

민속학자 주강현 박사가 만난 ‘신내림 받은 여학생’에 관한 일화다. 주 박사는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무당과 신내림”이란 글에서, 내림굿을 받고 ‘신의 자손’이 될 수 밖에 운명을 안타깝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문화재 김금화 만신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 로봇이 의사대신 수술을 하고 DNA유전자의 신비가 베일을 벗고 있는 2000년대에도 무당과 신내림에 얽힌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얼마 전 KBS ‘인간극장’을 통해 전파를 탔던 80년대 하이틴스타 박미령의 무당 된 비화는 다시금 우리사회를 들끓게 했다.

인터넷 검색 포털에서도 인기 키워드로 떠올랐다. “어쩌다 무당이 되었나요?” “무당은 가정을 가질 수 없나요?” “무병도 되물림되나요” 무당과 신내림에 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신의 선택을 받는 것일까. “무당이 될 사주가 따로 있다” 혹은 “조상을 통해 대물림 된다”등 무속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 고독하고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던 사람들이 신내림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무속인 ‘천신암’ 김혜숙 씨는 “가정의 따뜻함을 알지 못하고 자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모를 일찍 여의거나 부모가 있다 해도 제대로 보살핌을 못 받거나 이혼 등으로 생이별해서 어렵게 자란 이들이 많아요. 이런 사람들이 힘든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당의 길을 선택했다기보단, 어려서부터 신이 선택했기 때문에 외롭게 자란 거라고 봐요. 무당은 한이 많아야 하거든요. 남의 아픔을 잘 헤아려야 하니까요.”

그러나 비단 이들만의 ‘신의 자손’이 되는 것은 아니란다. 무속 전문가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당신도 무당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주 박사는 “무당의 신기는 기의 신명적 표출”이라고 표현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민족만큼 예로부터 신명이 유난히 많았던 이들이 또 있겠는가. 의정부 천솔사의 한 무속인은 “신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꿈이 잘 맞는 경우, 예지력이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신기가 있다고 다 무병에 걸리고 주변 사람이 다치고 고난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대영계연구소의 김세환 법사는 “무병에 걸렸다고 찾아오는 사람들 중 십중 팔구는 유사 신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 법사는 이어 진짜 신기와 유사 신기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신을 보는 영안(靈眼)을 가진 사람을 통해 그 사람에게 신이 정말 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면 된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대략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도 있다.

바로 특정한 사람에게서 완전히 다른 인격체의 특징이 일관되게 느껴지는 가 하는 것이 판단의 잣대라고 김 법사는 말했다.

“신이 내리면 상이 완전히 변해요. 장군신이 내리면 남자다워지고, 산신이 오면 근엄해지고, 조상신이 내리면 그 조상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무병을 앓고 신내림을 받아야만 무당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무당의 유형은 크게 강신무(降神巫) 와 세습무(세습무)로 나뉘는데, 무병을 앓는 경우가 전자이고, 후자의 경우는 혈통을 따라 대대로 세습된다.

주로 호남의 무당들이 그렇다. 예컨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굿판에 데리고 다니면서 굿하는 기능을 가르쳐 무당을 만드는 것이다. 즉 신이 선택한 무당이 아닌, 무당의 기능을 배워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습되는 경우라면 미리 무당이 되는 것을 준비할 수 있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다 어느 날 갑자기 ‘신의 선택’을 받은 경우라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정신이상 증세가 오고, 신체적으로도 원인 모를 고통이 뒤따른다는 무병은 평균 8년, 길게는 30년 동안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인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정이 해체되고,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럼, 이 끔찍한 무병은 정말 무당이 되지 않고서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일까. 무속인들은 대개 “진짜 신의 선택이라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무속인 김혜숙 씨는 “인간의 힘으로 감히 대항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잡신의 경우에만 쫓아내고 누르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신의 선택을 거부하게 되더라도, 일단 신내림을 받게 되면 “굿판에 서는 것을 즐기고 자연히 산을 찾아 다니는 삶에 순응하게 된다”고 했다.

무당의 조직인 경신회에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이땅의 무속인은 무려 10만 여명. 게다가 근래 들어 저학력자에서 고학력자로 옮겨가는 추세이며, 대학을 나온 무당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무당이 속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

“무속인들이 돈 때문에 약간의 신명이 있는 사람에게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굿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내림을 받아도 점사를 잘 못 보게 된다.” 무속인들은 입을 모아 지탄했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허투루 들어 넘길 수 있는 옛 속담만은 아닌 셈이다.

과학,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는 무속 세계의 근원적 실재 여부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무성하다. 일종의 밝혀지지 않은 정신질환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가시지 않고 있다.

김진세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은 “현대의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모두 미신이라 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긴 시간이 흐르면 질환에 의한 정신적인 원인 등이 밝혀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부모의 생활습관을 무의식 중에 따라하다가 나중에 부모와 똑 같은 질병을 앓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무병 역시 무의식적인 학습이나 최면의 결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하튼 신과 단절돼 있는 인간이 초자연적인 힘을 얻기 위해 갈구하는 미스터리한 세계의 실체는 앞으로도 아주 긴 시간동안 끊임없는 궁금증을 자아낼 듯 하다.

● 넘치는 氣와 끼… 연예인은 무당 팔자?

"연예인 팔자는 무당 팔자"라는 말이 있다. 무당이나 연예인이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氣)가 흘러 넘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보는 사람을 의식해야 하고, 복장이 화려하며, 노래와 춤을 잘하고, 다른 인물로 쉽게 빠져드는 것이 상통한다.

80년대 하이틴 스타 박미령은 최근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결혼으로 연예계에서 일찍 은퇴하여 기를 다 발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해 연예인과 무당의 '기'에 대한 관심이 새삼 모아지고 있다. 미처 발산하지 못한 기가 괴변을 일으킨다는 설이다.

'한국의 리즈 테일러'로 불린 왕년의 톱스타 김지미는 오래 전에 신내림을 받고 신당을 모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신 어머니'는 인간문화재인 만신 김금화다.

85년 영화 '비구니'가 불교계의 반대로 촬영이 중단되면서 원인 모를 편두통에 5년간이나 시달렸던 그녀는 90년에 만신 김금화 씨를 만나면서 씻은 듯이 치유됐다고 한다. 당시 지미필름에서 제작하고 자신이 직접 연기한 영화 '서울 만신'에 만신 김금화 씨를 출연시켰다. 자신이 무당이 되는 장면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만신을 찾았던 김지미는 이를 계기로 내림굿을 받았다. 그러나 "큰 무당이 될 것"이란 당시 예상과는 달리 이후로도 무당이 아닌 배우로의 길을 걸어왔다.

연예인으로 무병을 앓거나 빙의에 시달렸던 이들은 이외에도 몇몇 있다. 중견 탤런트 안병경도 몇 해전 내림굿을 받고 무속인의 길로 들어서 화제를 모았다. 그의 노모가 장수하고, 달마도로 공덕을 베풀 수 있다는 점에 매료돼 무속인의 길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탤런트 김수미는 2003년 방송을 통해 "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로 몇 년간 귀신이 씌인 빙의로 고통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시어머니의 사고 이후 악몽과 우울증에 시달려 다시 연기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빙의(憑依)는 무병은 아니지만, 신이나 귀신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정신을 교란시키고 지배하는 현상이라는 점에선 유사하다. 김수미의 빙의를 치유한 이가 바로 묘심화 스님. '빙의의 대가'로 유명한 이 스님을 통해 가수 고영준, 축구 선수 안정환의 어머니 또한 빙의를 극복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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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