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노조 사상 첫 단체교섭 요구안에 비난 빗발임금·수당·복리후생 부문에 과도한 요구사항 많아 여론 악화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국민에 봉사하는 자세가 우선" 비판

공무원 사회가 뒤숭숭하다.

얼마 전까지는 서울시 등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무능ㆍ태만 공무원 퇴출 바람으로 한바탕 소란스럽더니 이제는 공무원 노동조합과 정부 간에 사상 처음으로 이뤄지는 단체교섭 때문에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퇴출 회오리가 공무원들을 잔뜩 주눅들게 했다면 단체교섭은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기대를 안게 한다. 때문에 공무원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두 사안의 성격은 판이한 셈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궁극적 사용자’인 국민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 공무원 사회의 변동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세금문제까지 국민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같은 세금 내고 공무원으로부터 더 나은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게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자리만 보전하고 세금을 축내는 ‘철밥통’ 공무원은 결코 원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최근 공개된 공무원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안은 많은 국민들을 더욱 실망시켰다. 가뜩이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공무원들 스스로 더 큰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다수 언론 역시 공무원들이 공복(公僕)의식은 내팽개치고 집단이기만 주장하고 있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사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을 필두로 한 공무원 노조의 이번 단체교섭 요구안에는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어이없는 내용들이 적잖이 포함돼 있다. 특히 보수나 수당 등 임금 부문과 복리후생 부문에 과도한 요구들이 많다는 평가다.

지난 5일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정부와 공무원노동조합간 단체교섭이 사상 처음으로 시작돼 양측 교섭대표들이 본회의에서 상견례를 하고있다. 이날 교섭은 운영원칙 및 정부측 대표 지각출석등을 이유로 예정시간보다 1시간반 늦은 시간에 시작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원유헌기자.

우선 임금 부문과 관련, 공무원의 보수를 공기업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현실화한다는 요구조항에 비난이 빗발쳤다. 그러잖아도 방만한 경영과 고임금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공기업에 대해 개혁 필요성이 제기되는 터에, 공무원 보수까지 공기업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각종 수당 관련 요구안도 논란거리다. 특히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6급 이하의 55세 이상 공무원에 대한 월 5만원의 ‘원로 수당’ 지급, 다른 직원의 장기교육, 출산휴가 등으로 인해 업무를 대신하는 공무원에 대한 월 10만원의 ‘업무대행 수당’ 지급 요구 등은 민간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복리후생 부문에서도 ▲퇴직예정 공무원에게 공로연수 활동비 500만원 지급 ▲여가문화 정착과 재충전 기회를 위해 콘도, 펜션 등 휴양시설 확대 ▲무주택 공무원을 위한 무이자 전세자금 지원 ▲출산휴가 180일로 확대 등의 요구조항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울러 제도개선 부문에서는 ▲공무원연금 개정작업 중단과 정부부담률 25% 이상 상향조정 ▲성과상여금 제도 폐지 및 기본급 전환 요구가 특히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 같은 요구들을 모두 합치면 단체교섭 요구안은 부칙 12개 조항을 포함해 362개 조항에 이른다. 내용뿐만 아니라 분량 역시 엄청난 수준인 셈이다. 이는 공무원들의 단체교섭이 건국 이후 처음인 까닭에 수십 년간 누적된 요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공무원 노조의 사상 첫 단체교섭은 출발부터 가시밭길에 올랐다. 무엇보다 여론전에서 제 발등을 찍은 형국이 됐다. 국민들과의 교감은커녕 오히려 등을 돌리게 했기 때문이다.

공무원 사회를 잘 아는 인사들도 이번 교섭 요구안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낸다. 이장과 군수를 역임해 일선 하위직 공무원들의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논평을 통해 공무원 노조의 교섭 요구안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논평에서 “사오정, 오륙도가 회자되는 시대에 공무원만큼 안정적인 직업도 없다”며 “권리와 의무, 이익과 기여, 부담과 혜택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공무원 노조와 직접 협상을 벌여야 하는 정부도 이번 교섭 요구안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측 교섭위원단 간사인 이개호 행자부 공무원노사협력관은 “요구안에는 교섭대상이 안 되는 게 많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며 “이런 문제들은 실제 협상 과정을 통해 풀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공무원 노조가 협상 전략상 일단 수위를 최대한 높여 요구안을 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노사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무원 노조의 요구안은 단지 ‘처음 꺼내든 카드’일 뿐이라는 분석이 많다.

어쨌든 정부측 교섭위원단은 공무원 노조의 요구안 가운데 상당수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에 의거해 원천적으로 비교섭사항에 해당된다는 판단이다. 공무원노조법은 정책결정, 임용, 예산 등 기관 고유의 사안에 대해서는 교섭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데 이어 협상 상대인 정부로부터도 기선제압을 당한 격이 된 공무원 노조는 적잖이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교섭 요구안이 초장부터 시비 대상으로 떠오르자 교섭 준비가 서툴렀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 공노총 채길성 수석부위원장은 “39개에 달하는 단위 공무원 노조가 함께 하기 때문에 각자 요구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며 “대부분을 수용하다 보니 취합 과정에서 적절하게 정리되지 못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무원 노조측은 단체교섭 요구안에 대한 시중의 반응에 다소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노동조합으로서 근무여건, 처우, 복지 등의 개선을 위해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인데 단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외부에서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 언론들이 수많은 교섭 요구안 가운데 임금 등 몇 가지만 꼬집어 비판함으로써 전체 교섭의 본질을 흐렸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채길성 수석부위원장은 “우리 공무원들도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며 “요구안의 무조건 관철보다는 법률적 검토를 거쳐 가능한 것만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무원 노조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요구안은 ▲정년차별 규정 철폐 ▲공무원연금 개정 협의 ▲근속승진 6급으로 상향 조정 ▲기능직 공무원 처우개선 등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교섭 요구안 가운데 상당수가 비교섭사항으로 분류된 터라 이번 교섭은 적잖은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글로벌인사노무컨설팅 김동진 노무사는 “공무원노조법은 해석에 따라 이론의 여지가 많은 법률”이라며 “공무원들은 근무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해 교섭을 요구하더라도 정부가 기관 고유의 사안이라고 해석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고 말했다.

실무 협상에 들어가기도 전에 요구안이 교섭대상이냐 아니냐를 놓고 한동안 줄다리기를 벌일 공산이 큰 것이다. 이래저래 공무원 노조의 사상 첫 단체교섭은 타결까지 험난한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