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부터 15일간 하루 일조량 겨우 1시간… 게릴라성 폭우에 열대야도 보름가량 늦춰져장마 전후 강수량도 크게 늘어 확실한 변화

지구온난화로 '매미' '루사' 능가… "슈퍼 태풍" 몰려올 가능성
폭염·황사현상 강해져… 봄에 눈 오는 기상 이변도 발생

‘한반도 날씨가 왜 오락가락하지?’

지난 7월 말, 마지막 주말을 계기로 기상청은 지루한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기대한 것은 여름 휴가철 기분을 만끽할 만한 뜨거운 태양!

하지만 이후 날씨는 기상청의 발표와 달리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 후 장마에 버금갈 정도로 보름여간 비와 흐린 날씨가 계속됐기 때문.

‘장마가 끝났다는데 어떻게 된 일이야?’ 사람들이 의아해 한 날씨는 기상청 통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8월1일부터 15일까지 보름간 하루 일조량이 한 시간씩에 불과한 것. 24시간 중 단 한 시간만 햇볕이 비치고 나머지 시간은 비가 오거나 구름에 가린 것이다.

사실 “어쩌다가 올 한 해 그런 날씨도 있을 수 있는 거지!”라고 그냥 넘겨 버릴만한 만도 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어진 것은 폭염. 한낮은 물론 밤에도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올 해 ‘처서 더위’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원래 절기상 삼복 더위에 더운 것이 상례인데 올 해는 삼복 기간에는 흐린 날씨가 이어졌고 그 다음에야 무더위가 찾아 온 것. 결과적으로 절기가 조금씩 미뤄진 셈이다. 이제는 ‘날씨가 왜 이렇지?’ 하며 의아해 하기에 이유가 충분해졌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불규칙적인 날씨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날씨가 들쭉날쭉한 거야? 기상 예보도 틀리기 일쑤고?” 요즘 날씨를 가리켜 ‘종잡을 수 없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과연 한반도 기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열대? 그저 아열대라고 하기에만도 그리 간단치 않다. 더워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때로는 기상이변 같이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예년에 보이던 평균치들과는 크게 다른 패턴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어서다. 한반도 날씨를 한가지 규칙이나 단순한 논리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기만 하다.

기상청 김승배 통보관은 이에 대해 “최근 날씨가 워낙 불규칙적이고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든 현상이 이어진 것만으로 벌써 한반도에서 기상 이변이나 기후 변화라고 못박기에는 설익은 감이 없지 않다”고 진단한다.

한 지역에서 기후라는 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 일정한 날씨 패턴을 보이는 현상을 가리키고, 기상이라는 것도 적어도 5~10년 정도 주기적인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인데 단기적으로 예년과 다르게 보인 날씨만을 가지고서 기상이나 기후 차원까지 비약할 단계는 아직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김승배 통보관은 “기상 이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의 한반도 날씨 현상이 단순히 한 해 예년과 다른 패턴을 보인 이례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뭔가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았다.

최근 장마 직후 이어진 강우와 흐린 날씨, 폭염의 패턴도 기존 기상청 통계와 궤를 크게 달리한다. 기상청 관측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1일~15일까지 15일간 서울 지역의 일조량은 불과 15시간에 불과했다.

이는 평년의 같은 기간 평균인 79.5시간에 턱없이 못 미친다. 비율로도 평년에 비해 일조량이 겨우 18.9% 정도에 그친 것.

강수량은 큰 차이가 나진 않았다. 예년에는 이 기간에 서울에서 181mm의 비가 내렸는데 올 해는 200.6mm가 내렸다. 불과 20mm 정도 더 내린 것 뿐인데 체감 날씨는 사람들에게 매우 크게 느껴진다. 10% 정도 비가 더 왔지만 햇볕이 워낙 없었다는 점에서 무척 이례적이다.

또 이 기간 최고 기온은 오히려 예년보다 더 높았다. 서울 지역은 31.2도까지 올라갔는데 이는 평년의 29.6도 보다 높은 온도다. 이는 대구 광주 춘천 등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 흐린 날이 많았음에도 한 때나마 최고 온도는 더 치솟은 셈이다.

이후 8월23일 처서를 거치고 구름이 걷히면서 폭염이 계속된 것도 예년에 보기 힘들었던 현상이다. 보통 7월 말까지 장마가 끝나면 8월초~중순에 걸쳐 곧바로 열대야 등 무더위가 시작되는데 올 해는 보름여간 늦춰진 것.

무척 이례적인 올 여름 날씨 패턴이 아니더라도 최근 한반도에서 이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기상의 변화를 감지케 해준다. 우선 장마 이후에 내리는 비의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두드러진 변화.

기상청 임장호 언론담당 주무관은 “장마 기간에 내리는 강우량을 100으로 잡았을 때 예년이 100대 80~90이라면 최근에는 100대 100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장마 후 내리는 비의 양이 장마와 거의 같다는 것. 이쯤 되면 ‘장마 후 또 장마’란 말이 생겨날 만도 하다.

여름철 강수량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1973~2005년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여름철 강수량은 약 14% 증가했다. 90년 이전 강수량은 672.1mm였지만 90년 이후에는 766.5mm로 증가했다.

특이할 점은 강수량은 늘어났는데 대부분은 장마철이 아닌 기간이라는 점이다. 90년 이전 장마 이후 기간에는 254.2mm의 비가 내렸지만 90년 이후에는 평균 346.5mm가 내려 36%의 증가세를 보였다.

장마 전 강우량도 28%가 늘어나 비슷한 수준. 하지만 장마 기간에는 90년 이전 350.4mm, 이후 333.6mm로 오히려 5% 가량 줄어들었다.

집중호우 현상이 더욱 강하고 잦아지고 있다는 것도 절대 사실로 지적된다. 보통 장마 기간에는 넓은 지역에 걸쳐 고루 비가 내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집중호우는 특정 지역에 일시적으로 엄청난 양의 비를 뿌려댄다는 것이 차이점.

1990년대 후반 게릴라성 집중호우란 용어가 처음 생겨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8년 지리산 유역에 폭우가 내려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는데 2000년 신림동에 내린 장대비도 기억에 남는 집중호우로 꼽힌다.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한 곳에 비를 뿌려대다 이어 곧바로 다른 지역에 폭우가 연속적으로 내려, 마치 게릴라처럼 여기저기 누비며 나타난다고 붙여진 이름. 원래 기상학적 용어도 아닌데 일본 언론에서 처음 사용한 어휘다.

슈퍼 태풍 얘기가 최근 언론에 곧잘 등장하는 것 또한 이런 논리에서 예외가 아니다. 오재호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지구 온난화가 한반도에 기록적 태풍인 매미와 루사를 능가하는 ‘슈퍼태풍’을 몰고 올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오 교수는 최근 환경부와 기상청이 운영하는 한국기후변화협의체가 마련한 기후변화 전문가 워크숍에서 발표한 ‘미래 태풍 강도 변화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슈퍼 태풍은 달리는 열차를 탈선시키고 아파트 유리창을 터뜨릴 위력을 지니며 그 영향도 지금보다 훨씬 오랫동안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같은 날씨와 기상 변화는 대기 중에 늘어난 수증기 양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기상청 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실장은 “지구 대기권의 공기가 따뜻해질수록 차가울 때에 비해 공기 중에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가 더 늘어난다”며 “지금보다 차가웠을 예전보다 더 늘어난 대기 중 수증기의 불규칙한 활동 때문으로 기습적인 폭우나 폭설, 때로는 가뭄이나 혹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최근 한반도에서 강우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늘어난 수증기 만큼 내리는 비의 양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

특히 태풍의 강도가 더욱 세지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실이다. 바로 슈퍼 태풍. 실제 기상청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세기의 태풍이 발생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2002년 8월31일 태풍 ‘루사’는 강릉에 870.5mm라는 일 최다 강수량을 기록했다.

2003년 131명의 인명과 약 4조원의 재산피해를 가져온 초강력 태풍 ‘매미’가 이어 상륙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국내에 상륙한 태풍이 ‘초강력 태풍 상위 랭킹’에 2년 연속 오른 것은 근래 보기 힘든 일이다.

루사의 강수량 또한 종전 기록인 547.4mm를 훌쩍 뛰어 넘는다. 굳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몇 년 전 미국 플로리다를 휩쓴 슈퍼 태풍 카트리나 역시 같은 사례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지구온난화라는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미 지난 봄 유엔산하 정부간 기후변화협의체(IPCC)에서 과다한 온실가스 방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이 공식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온난화로 따뜻해진 대기가 수증기를 많이 흡수하고 이로 인해 홍수나 가뭄 폭염 등 기상재해가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큰 비가 내리는 것 못지 않게 큰 눈이 내리거나, 엄청나게 더운 폭염, 점점 심해지는 중국 황사현상도 같은 원리로 작용한다. 지난 2004년 3월 대전 등 충남권에 49.5cm의 폭설이 내렸는데 이 역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이 지역 강설량이 기상청 관측 사상 최대치였다.

대전 이남에 이처럼 엄청난 양의 눈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도 특이하지만 무엇보다 겨울이 지나가는 초봄 무렵에 눈이 내렸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 역시 공기 중에 잔뜩 수증기를 품고 있다 차가운 공기층과 만나면서 눈이 내린 현상으로 분석된다.

몽골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세기 또한 해마다 강해지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해 4월8일과 9일 서울 지역에 이틀간 최악의 황사가 닥친 것도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역시 온난화로 인해 몽골 내륙 지방의 사막화가 가속화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한반도 지역의 피해를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기상 변화에 대해 권원태 기후연구실장은 “지금 한반도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 같은 기상 이변이 누적되고 장기화되면 자연 재해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대비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한반도 기상 변화 이렇게 간다

오락가락하는 한반도 기상 환경 속에서도 예측 가능한 상황들은 존재한다. 날씨와 기상, 기후가 변화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명확한 원칙과 사실들이 변수들 가운데서도 뚜렷이 구분된다는 것.

기상 관계자들은 매일매일의 날씨를 정확히 예상하기는 힘들어도 전체적인 경향과 대세는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온실가스로 인해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이다.

▦장마철보다 장마가 끝난 후 비가 더 많이 내리는 경향이 강해진다. 장마철 이전 강우량까지 합치면 장마 시즌보다 강우량이 더 많아질 확률이 높다. 장마철에만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인식을 버릴 필요가 있다. 물론 휴가계획도 다시 짜야 한다.

▦비가 내리면 국지성 집중 호우 형태로 나타날 확률이 매우 크다. 대기 중에 수증기 함량이 늘어나면서 활동이 활발해지고 이는 지역과 시기가 불분명하게 폭우 형태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강우량이 늘어나는 만큼 폭설이나 대설의 확률도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슈퍼 태풍의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한반도 근해에서 태풍이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하며 수그러들었지만 한반도 주변 온도가 올라가면서 태풍이 수그러들지 않고 더욱 강해지는 추세가 확연해져서다.

▦황사 또한 예년보다 더욱 강해지고 기승을 부릴 것으로 봐야 한다. 근래 통계만으로도 몽골에서 불어 오는 황사의 세기와 먼지 농도가 계속 치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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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