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주의적 선교활동에 비판 여론 비등… 교계선 자성과 함께 새 방향 모색

서울 강남의 한 대형교회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유모씨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지난 7월초 중국에 1주일 일정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하지만 그가 찾은 곳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도 아니었고 유명 관광지도 아니었다. 행선지는 중국 북부의 광활한 고원지대에 자리잡은 네이멍구(몽골족 자치구).

유 씨가 중국에서도 변방 오지로 꼽히는 네이멍구 지역을 찾은 것은 단기 선교 활동 차원에서 이뤄졌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동료 신도들도 여러 명 함께 동행했다. 네이멍구는 전통적으로 티베트 불교(라마교) 색채가 강한 곳이지만 최근 기독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단기 선교 활동에 대해 유 씨는 “네이멍구에 가는 길도 무척 험하고 불교를 믿는 현지 주민들이 적잖이 경계의 눈길을 보내기는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과 하나님의 복음을 나눈다는 보람이 있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분당 샘물교회 신도들이 지난 2일 국내에 돌아오면서 개신교계의 해외선교 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뜻밖의 싸늘한 시선에 당황한 개신교계는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에 대한 감사 기도도 올리기 전에 먼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됐다 풀려난 피랍자 19명이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비판의 초점은 국내 개신교계의 해외선교 활동이 지나칠 만큼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사실에 맞춰져 있다. 이번 피랍사태도 정부가 올 초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위험지역으로 분류해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한 뒤에 벌어진 일이어서 샘물교회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한국 개신교 교회들의 팽창주의적 해외선교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했다. 국내에서의 교세 확장이 한계상태에 이르자 교회마다 해외진출로 선교의 활로를 뚫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1990년 74개에 그쳤던 선교단체 숫자가 2006년에는 174개로 2배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선교 대상국 역시 같은 기간 동안 87개국에서 173개국으로 대폭 확대됐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선교사 규모로 봐도 한국은 이른바 ‘선교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 한국인 선교사 숫자는 1만6,000여명이다.

선교사 숫자를 처음 파악한 1979년에는 고작 90여명이었지만 30년도 채 안돼 170배 가량 폭증했다. 이는 4만여명의 선교사를 각국에 파견 중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숫자다.

하지만 이 같은 장기 선교사 외에 일반 신도들이 팀을 이뤄 짧은 일정으로 다녀오는 단기 선교까지 합친다면 국내 개신교계의 해외선교 활동 규모는 훨씬 방대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개신교 교회들의 해외선교가 교세 확장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신교계에서는 해외에 선교사를 얼마나 많이 파송하느냐에 따라 교회의 위상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어 해외선교가 일종의 교회간 경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4일 서울 장충동 기독교사회책임 세미나실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관련 기독교인들의 반성과 다짐, 서명운동 기자회견에서 기독교 NGO들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에 대해서는 개신교 내부에서도 인정하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대표적 개신교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소속 목사들은 지난 4일 장로교 목사안수 100주년 참회기도회에서 아프간 피랍사태의 근본 원인이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활동에 있다고 고백했다.

이날 주제설교를 한 김형태 전 예장통합 총회장은 “물량적 교회성장 정책이 해외선교 경쟁을 촉진시켜 봉사활동이라는 미명 하에 선교를 강행하고 있다”며 “옛날 점령군이 파견된 외국에 선교사들이 파송돼 이교도들을 개종시켰던 전투적 선교를 방불케 한다”고 술회했다.

이처럼 기존 선교활동에 대한 반성 기류가 개신교계에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해외선교 전체를 매도하는 데 대해서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 사안을 보다 엄밀하고 냉철하게 분석해 합리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양세진 사무총장은 “한국 교회의 공격적이고 물량주의적인 선교활동은 욕을 먹고 비판받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교활동 자체를 금지하거나 중지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탈레반과의 인질석방 협상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기독교 선교활동 중단을 합의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개신교에서 선교는 하나님의 지상명령(Great Command)으로서 교인들에게는 선교가 곧 존재론적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선교 방식이나 방향에 대한 비판은 수용할 수 있어도 선교를 하지 말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외교적 관점에서 볼 때도 한국 교회의 선교활동은 정부가 하지 못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에 나가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음으로 양으로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이영철 총무는 “한국인 선교사 1만6,000여명은 ‘민간 외교관’으로서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정부의 외교관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왔다”며 “이번 아프간 사태를 빌미로 그들의 피땀어린 노력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아프간 사태 이후 한국 교회뿐 아니라 순수 시민단체(NGO)의 해외 봉사활동마저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탈레반에 납치됐던 샘물교회 신도들의 아프간 방문 목적을 두고 선교냐 봉사냐 하는 논란을 빚는 모습이 해외 언론에도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다른 종교권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봉사활동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국내 개신교계는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한동안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아울러 해외선교 방식에 대한 노선 수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장 발등의 불은 등돌린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되찾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종비련)가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 응답자가 아프간 사태 발생의 원인이 개신교의 독단적이고 무리한 선교라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비련 신용국 사무처장은 “개신교계는 이번 아프간 사태에 대한 분명한 반성과 함께 책임규명을 해야 하며, 정부 역시 협상과정에 대한 대국민 설명과 아울러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국민들이 납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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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