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작년 운전자 신원 파악 어려운 도급제 합법화 추진 '충격'용의자들 도급택시 이용 끔찍한 범행… 기사 자격증 발급도 허술

홍대 앞 여성 회사원 납치 살해사건 현장 검증에서 용산경찰서 소속경찰관이 피해 여성의 택시 승차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최근 홍대앞 여성회사원 납치 살인사건에 일명 ‘도급택시’가 이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부 택시정책에 대한 지탄이 쏟아지고 있다. 택시정책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홍대 사건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구조적인 문제로 도급택시제와 택시기사 자격증 제도상의 맹점이 지적되고 있다.

‘홍대 사건’에서 용의자들은 도급택시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도급택시의 경우 택시회사가 기사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도급택시는 정식 고용이 아닌 임대계약 형식으로 운행된다는 점에서 지입택시와 유사하다. 도급택시가 하루 10만원 또는 월 200만원 내외를 주고 택시를 임차하는데 반해 지입택시는 2,000만원 가량을 주고 무기한 차량을 임차하는 게 일반적이다.

도급과 지입택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차량관리와 고용자 실태 파악이 어렵다는 것. 차량관리와 유류세, 차량 유지비와 보수비 등을 모두 택시회사가 아닌 임차자(기사)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운영률을 높이기 위해 도급차량이 다른 사람에게 다시 하도급되는 경우도 많아 실제 차량을 모는 기사가 누구인지도 추적하기 어렵다.

지입택시의 경우 운수사업법상 ‘명의이용금지’규정이 있어 이를 위반할 경우 면허취소 등 강력한 단속과 조치가 취해지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편이다. 반면에 도급택시는 서류상의 임차자와 실제 기사가 달라도 벌금 120만원 등 가벼운 처벌에서 끝난다.

도급택시는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실태에 관한 공식적인 데이터조차 없다. 다만, 관련업계에서는 도급택시가 전체 법인택시 규모의 30%선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급택시 비율은 택시회사의 택시가동률(평균 70~80%)과 자연히 반비례하게 된다. 택시회사 입장에서는 노는 택시를 하루나 한달, 도급해주면서 ‘땅 짚고 헤엄치는’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급택시의 불법행위 처벌 규정은 그동안 오히려 후퇴한 양상이다. 현재 도급택시를 단속할 수 있는 법안은 97년 제정된 운수사업법상‘전액관리제’조항이 전부다. 전액관리제 위반의 경우 면허정지 60일, 벌금 120만원이다.

전액관리제가 시행되기 전만 해도 도급제는 ‘명의이용금지’규정에 따라 단속 처벌됐었다. 위반할 경우 면허취소로 이어지는 강력한 조항이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최낙봉 부국장은 “92년에서 95년까지는 지입제와 도급제 모두 ‘명의이용 금지’로 처벌됐지만, 이후 도급제는 처벌대상에서 제외됐고, 97년부터 전액관리제 조항이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자격증은 어떻게 땄나?

‘홍대 사건’에서 두 번째로 지적되는 것은 택시기사 자격증 제도 문제다.

용의자들은 올해 2월 택시기사 자격증을 발급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작년 여승무원 택시 살인사건 이후 전과자들에게 2년 간 택시기사 자격증을 주지 않는 법률이 신설돼 2006월 7월 시행됐지만, 이들은 유유히 택시기사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05년 12월 신설된 운수사업법 26조 4항에 따르면 살인, 마약, 강도, 강간, 유인과 같은 특정 범죄에 연루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2년 동안 신규 택시면허를 딸 수 없는 것은 물론, 택시면허 소지자는 면허를 취소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홍대 사건의 용의자들은 그 대상에서 벗어난다. 그들의 전과내용이 절도와 무면허 운전, 폭행 등으로 이른바 ‘특정범죄’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택시운송조합 관계자는 “운수사업법의 큰 허점이 드러났다”며 “절도 방화 등 다른 범행에 대해 추가로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쉽게 자격증을 손에 쥔 또 다른 이유는 사업자 단체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서 택시기사자격증을 발부하기 때문이다. 택시회사가 택시기사에게 운전 자격증을 주는 꼴이다.

더욱이 최근 택시기사 부족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애당초 경력조회나 시험문제가 까다롭게 출제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이양덕 차장은 “시도조합연합회(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의 각 시도 조직)의 경우 시도지사에게 권한을 위임 받았다”며 “시험은 사업자단체에서 주관하고 각 시험출제 위원들은 해당 전문가에게 위촉하고 있는 형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과자 범죄경력관리 업무는 경찰 소관이고, 전과기록을 파악해 운송사업조합에 보내주어야 하는 주체는 구청이기 때문에, 사실상 전과조회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실제로 2006년 법안 시행 후 서울시 운송사업조합에 통보된 취소 공문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택시본부 기우석 정책국장은 “도급택시 방관과 택시기사 자격증 관리 미비로 범죄자를 키운 꼴이 됐다”며 “브랜드 택시, 여성전용 택시 등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 앞서 택시에 대한 시민의 신뢰회복이 우선돼야 할 것”고 말했다.

● 정부, 도급택시 활성화 위해 외주 연구 용역 두기도

이렇게 문제가 많은 도급택시 제도를 활성화하려고 정부가 한때 팔을 거둬 붙이고 나선 적이 있다.

이번 취재 결과 2005년 정부는 택시리스제(도급제와 지입제 택시)’를 정식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수천만원 대의 외주용역 연구를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입수한 2005년 ‘육상항공 운송업 종사자 근로실태조사 및 제도개선방안(이하 운송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영국 등 외국의 리스제도를 본 따 국내에 적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서는‘요건을 갖춘 법인택시 업체에 한정 시행’‘리스허용 대수 및 요건 규제’‘임대운전자 자격요건 지정’등 포괄적인 시행방법을 명시해 놓고 있다.

이 연구서가 나오게 된 배경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0월 이호웅 당시 국회의원은 도급택시 명의이전에 대한 단속과 처벌규정을 새로 포함하는 법률개정안(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22조 2항)을 발의했고, 건교부는 2005년 2월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한 원칙적 수용의사를 공식 발표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건교부는 입장을 철회, “택시제도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국회 건교위 법안심사위에 개정안의 심사보류를 요청했다. 건교부 연구용역 결과는 그 해 12월 나왔고, 당초 예상대로 리스제 활성화로 의견이 모아졌다.

‘운송법 실태조사’자료는 이 연구용역의 결과물이다. 리스제 도입을 위한 용역연구에 민주택시노동조합과 전국택시노동조합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노사정 합의하에 이 연구결과물은 폐기됐다. 리스제 합법화도 유야무야됐다.

당시 건교부가 보류를 요청했던 도급제 단속과 처벌에 관한 개정안은 이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여전히 계류중인 상태이고, 이번 17대 국회회기를 넘기게 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건교부 대중교통팀 조병섭 주무관은 “당시 연구용역결과 리스제가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노조와 사업자단체의 의견 대립으로 내용의 외부공표는 안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연구용역 의뢰 초반에는 리스제 도입 의도가 없었다는 것.

그러나 전국운수산업노조 민주택시본부 기우석 정책국장은 “건교부가 연구용역을 이유로 도급제 개정안 수용의사를 철회했다는 사실은 리스제 도입을 애초부터 의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과 런던의 택시 리스제를 비교 분석하도록 용역을 의뢰한 자체가 도급택시 등 리스제 활성화를 위한 초석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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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법 실태 조사> 중 리스제 도입 검토 부분. 정부도 노동악화와 불법지입금 활성화를 예상했지만, 리스제 시행대상과 방법을 검토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