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눈치보는 마음고생·명절 후 공허감 등으로 우울증 걸리기도주부들 스트레스 받아 두통·소화불량·복통 등 호소… 산부인과 응급실 북적남편은 어머니·아내 사이서 속앓이… 혼기 놓친 싱글들도 결혼 재촉 몸살

명절증후군이 다양해 지고 있다. 명절증후군은 명절기간 살인적인 노동량을 감당해야 하는 주부들이 갖고 있는 스트레스를 통칭하는 말이었지만, 최근에는 며느리 명절증후군, 시어머니 명절증후군, 남편 명절증후군처럼 집안에서의 지위에 따라 그 증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 며느리 증후군 "명절 일주일 전부터 가슴이 조마조마"

결혼 3년차 주부 이상지 씨(26)는 명절 일주일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시어머니 몸이 불편해서 혼자 명절 준비를 떠맡아야 하기 때문. 집안 살림에 관심이 없는 남편은 명절 때 마다 화를 돋운다.

“임신 9개월 때 명절 쇠고 집에 오니 다리가 후들거리더라고요. 하루종일 서서 일했는데 앉으라는 말 한마디 안 하는 시어머니가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이후 매년 다가오는 명절은 그에게 스트레스다. 추석을 일주일 앞둔 그는 “명절 준비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명절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운 그는 전형적인 ‘며느리 명절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어지러움증, 두통, 소화불량, 복통, 심장 두근거림, 피로감 등을 호소한다.

힘들었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명절이 다가오면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경험들이 떠오르면서 다양한 스트레스 증상을 보이는 것. 때문에 명절증후군은 특정한 질병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통증은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스트레스성 질환 중의 하나다.

며느리 명절증후군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대학병원 산부인과다. 명절기간 대부분의 대학병원 산부인과 응급실은 가동률이 100%에 이른다. 동산병원 이수진 간호사(26)는 “명절 기간 산부인과는 항상 만원사례를 이룬다.

대부분 환자는 출산 때문이 아니라 두통, 메스꺼움, 어지러움 같은 가벼운 증상들 때문에 입원한다”고 밝혔다. 며느리들이 겪는 명절증후군을 임신에 따른 증상으로 착각해 응급실을 찾게 된다는 것. 이 간호사는 “이런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 명절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 나아서 퇴원한다”고 덧붙였다.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최경숙 교수는 “실제로 명절이 가까워지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 초조, 우울, 불면, 위장장애, 호흡곤란 등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며 “정서적인 불안이 심각해질 경우 우울증 증세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시어머니 증후군 "며느리에게 책잡히면 안돼"

아들만 셋을 둔 김 모씨(58)는 지난 해 맏며느리를 보았다. 직장 일을 하는 그는 혹시 며느리가 시댁에 와 집안살림을 보고 흉을 보지 않을까, 명절이 되면 집안일을 더 신경 쓰게 된다.

대청소하고, 아들, 며느리 좋아하는 음식 한가지라도 해놓으려면 마음이 바쁘다. 그는 “예전 우리 세대는 시어머니 눈치만 봤지만, 요즘은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약점 안 잡히려고 신경을 쓴다”고 말한다.

“며느리가 선물이라도 사오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아들 입맛에 맞는 음식이라도 한가지 가르치려는데 잔소리 한다고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서지요.”

김 씨는 “그러고도 아들내외가 가고 나면 집안이 텅 빈 것 같아 가슴 한 편이 횡해진다”고 말했다.

시어머니 명절증후군의 경우 예전 자신이 겪었던 시집살이에서 오는 스트레스,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마음고생, 명절 이후 공허함 등 보다 복합적인 양상을 띈다.

명절 내내 바쁜 아내의 일을 도와주는것도 남편들의 명절 증후군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며느리들이 겪고있는 ‘명절 전 증후군’부터 자식들이 떠나고 나서 겪게 되는 ‘명절 후 증후군’까지 고통을 겪게 되는 기간도 훨씬 길다. 최근에는 며느리의 명절증후군보다 시어머니의 명절증후군이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립북부 노인병원 신영민 원장은 “명절 후 고향에 남아 있는 부모의 공허함은 며느리 증후군 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며 “출가한 자식들을 목 빠지게 기다려온 명절이 끝나면 공허함을 넘어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남편, 싱글도 명절증후군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치여 속앓이를 하는 ‘남편 명절증후군’도 있다. 회사원 김모 씨(41)는 명절만 되면 아내가 짜증스러워하고, 시부모와의 관계에서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비쳐 짜증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 어머니를 설득해 맞춤 차례상을 주문했지만 어머니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흔히 남편들이 겪는 명절증후군은 며느리, 시어머니 명절증후군을 지켜보며 생긴 ‘마음 고생’인 셈.

장남인 김영학(33) 씨는 다가오는 추석이 고역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몇 년 전부터 설과 추석에는 의례 결혼하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 집안 종손인 그에게 있어서 결혼은 일종의 스트레스다.

자신의 집이 친지들이 모이는 ‘큰 집’이라서 남들처럼 이런저런 핑계로 명절을 건너뛸 수도 없다. 김 씨의 경우 결혼이 늦어 겪게 되는 싱글 명절증후군이다.

명절증후군은 전통적인 관습과 현대적인 사회생활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강도 높은 가사노동과 휴식부족으로 인한 육체적인 부담, 명절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성차별과 고부간의 갈등 등을 들 수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역할에 따른 스트레스는 다르지만 모두 주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명절증후군을 겪는 대부분 사람들의 대처방법은 ‘그냥 참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기만 하다 보면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다. 따라서 먼저 명절에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명절을 기회로 시댁이나 며느리와 소원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을지병원 최경숙 교수는 “명절을 온 가족의 잔치로 느낄 수 있도록 긍정적인 사고와 즐거운 마음을 갖고 가사노동을 온 가족이 분담하고 함께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마음 고생을 하느니, 팔 걷어 부치고 일을 돕는 것이 낫다는 것. 여성은 음식 장만을, 남성은 청소나 설거지를 하는 등 일을 분담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 싱글들은 사람들이 별 뜻 없이 내뱉는 말에도 자격지심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대비하려면 미리 상황을 예측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설령 예상했던 질문을 받게 되더라도 의연하게 넘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정신적·육체적 이상이나 우울증 등이 2주일 이상 계속된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전문의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아 만성적 우울증으로의 진행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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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