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당 판매수량 못 채우면 책임 떠넘겨… 일부 직원은 수억 원까지 채무 지기도

‘캔 음료수 3개 1,000원’슈퍼마켓의 파격 세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할당된 판매수량을 채우지 못한 음료회사 영업직원들의 덤핑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점장이 영업직원의 판매수량을 미리 책정하고, 팔지 못한 상품을 허위로 보고하는 ‘가판’, 월말 수금이 안될 경우 싼 값에 음료수를 떠 넘기는 ‘덤핑’….

음료업계의 이런 요상한 관행 덕분에 소비자는 더러 혜택을 누리기도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 죽어나는 것은 음료회사의 영업직원들이다.

지난 5월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는 동안 노동계 다른 사안은 수면아래로 가라앉곤 했다.

롯데칠성, 동아오츠카, 해태음료 영업직원들의 노조 결성도 그 중 하나. 3개 회사 영업직원은 올해 3월 산별노조를 결성했지만 노조위원장이 나온 지점이 폐쇄되는 등 여전히 회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다름아닌 가판, 덤핑 등 음료업계의 전근대적 관행 때문이다.

음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 음료회사 일부 영업지점의 경우 공공연히 가판과 덤핑이 이뤄지고, 직원들은 수천만~수 억원에 이르는 빚을 진 것으로 밝혀졌다.

업계의 고질적 관행에 따라 영업직원이 덤핑처리에서 드는 차액 부분을 고스란히 떠안기 때문이다. 이들 직원은 퇴사 시 덤핑 차액부분을 보전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회사측으로부터 횡령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업계 관행에 대항하기 위해 롯데칠성, 해태음료, 동아오츠카 3사 영업직원들이 산별노조를 결성한 것이다.

■ 매출량 부풀리기 위해 회사가 부추겨

“코카콜라 폭탄 세일하는 거 보셨습니까? 코카콜라 보틀링은 영업직원 노조가 있어서 가판이나 덤핑문제가 상당부분 완화됐습니다.”

롯데칠성 노조위원장 김정일 씨는 회사에서 영업직원의 가판과 덤핑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증거로 2005년 5월 롯데칠성 영업부에서 전국 지점장들에게 보낸 ‘비밀문서’를 공개했다.

문서에는 ‘월초 판매가 많을 시 가판 정리’, ‘판촉비는 가판정리금액을 포함한 목표달성을 감안해 월요일에 배정’, ‘메일 보신 후 삭제 요망’ 등의 전달사안이 있다.

매출을 부풀리기 위해 롯데칠성 지점장들에게 가판을 부추기고 증거를 없애려 했다는 얘기다. 증거 자료에 대해 회사 측은 “(비밀문서) 이메일 내용을 본 적 없다. 관련 조치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문서는 롯데칠성과 영업직원 간 재판 과정에 증거자료로 제출됐다. 김정일 씨의 경우 밀린 차입금은 2,000만원 정도. 노조원 중 그나마 양호한 상태다.

해태음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해태음료 서산지점 김정언 씨의 경우 신용보증을 선 아버지의 월급이 차압된 상태다. 2003년 해태음료에 입사한 김씨는 해당 지점장에게 가판ㆍ 덤핑을 강요 받고 덤핑 가격의 차액을 매달 수 십만원 씩 빚으로 떠 안았다.

김씨는 “(판매 대금의) 미수금이 1,000만원 되면 지점장이 영업직원에게 각서를 쓰게 한다. 지점장들은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영업직원들을 회유했지만, 해태에서는 공금횡령으로 나를 고소했고 각서는 증거자료로 서울 남부지법에 제출된 상태”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지금 영업 보조직원으로 강등됐다. 김씨는 “올 해 초 CEO가 바뀌면서 덤핑이 줄어든 듯 했지만, 8월 이후 다시 200만~300만원, 많게는 1,000만원 가량 차입금이 쌓이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산별노조 결성으로 갈등 최고조

회사와 영업직원 간 소송이 잦아지자 음료회사 영업 직원들은 지난 3월 11일 노조를 결성했다. 그러나 노조 결성과정부터 사측과 노조의 갈등이 터져 나왔다.

노조 창립식 하루 전인 3월 10일 롯데칠성과 해태음료의 일부 지점에 느닷없이 야유회 개최가 통지됐고, 창립식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버스를 고속도로에서 막는 사태도 벌어졌다.

롯데칠성 김정일 노조위원장은 “창립식 다음날 출근해 보니 지점장, 부장, 전무이사까지 찾아와 탈퇴하라며 하루종일 나를 사무실에 감금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노조 창립 직후 노조위원장이 나온 롯데칠성 서광주지점이 강제 폐쇄 됨으로써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서광주지점 폐쇄 과정에서 사측은 노조에 가입한 비정규직 영업직을 해고하고 정규직 영업직을 원거리로 발령했다.

롯데칠성 측은 “영업실적을 기준으로 통폐합시킨 것”이라며 “지역 영업환경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해태음료 측은 “산별노조원 중 현재 해태직원은 거의 없다”며 “산별노조를 인정하기보다는 직원 개개인마다 협상을 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측의 주장은 다르다. 노조위원장 김정일 씨는 “서광주 지점의 경우 폐쇄 직전까지 영업실적이 전국에서 5위안에 드는 모범 지점이었다. 롯데칠성 신제품이 나올 때 테스터 마켓으로 이용되는 전국 2개 지점 중 하나”라고 반박했다.

해태음료 순천지점과 롯데칠성 순천지점의 경우 지점 폐쇄를 추진하다 노조측의 강력한 반발로 무마됐다. 동아오츠카 역시 서대전 지점 조합원을 원거리로 발령을 내거나 지점대기 시키는 방법으로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오츠카 대전지점 김성건 씨는 “사측에서 동아오츠카의 노조 조합원이 2명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조합원으로 밝혀질 경우 해고 등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가입 후에도 신분을 밝히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음료영업직 산별노조의 조합원 대부분이 ‘전직원’ 신분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조합원으로 신분이 밝혀질 경우 정규직은 원거리 발령, 비정규직은 계약해지 방식으로 차례로 해고해 왔다.

해태음료 서산지점 김정언 씨는 “노조 조합원 중 해태음료 직원이 없는 이유는 조합원으로 밝혀진 후 회사가 이 조합원들을 해고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음료 3사 산별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교섭 공문을 20여 차례 보냈다. 오철민 사무국장은 “노조가 제시한 교섭 내용은 임금 협상이나 복리 후생이 아니라 가판과 덤핑을 없애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롯데칠성 측은 “이미 생산직 직원을 대상으로 한 노조가 설립된 상태”라며 “영업직 산별 노조의 경우 노동부에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태음료와 동아오츠카도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해태음료 측은 “업계 1위인 롯데칠성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동아오츠카 역시 “산별노조 실체가 의심된다. 동아오츠카의 사내 노조가 있는 이상 (영업직 산별노조는) 복수노조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오철민 사무국장은 “3사 산별노조를 설립 하기 전 영업직이 각 회사 노조에 가입한 사례는 없었다”며 “지난 3월 노조설립 필증을 받았고 법원의 교섭 가처분 신청 판결을 기다리는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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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