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기업처럼 영리사업 하지만 번 돈은 모두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복지천국 OECD국가선 수십년역사…저소득층 자활 도와 사회통합 기여정부, 관련법 제정으로 국내서도 첫발… 일자리 창출및사회서비스 주력

미국의 ‘퍼 스콜라스’(Per Scholas)는 구형이나 중고 컴퓨터 재활용사업을 하는 회사다. 설립자 존 스투키는 일반 기업이나 컴퓨터 제조 및 대여업체들이 낡은 컴퓨터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점에 착안, 이들 컴퓨터를 기증받아 빈곤지역의 학교와 가정에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하려는 목적으로 회사를 세웠다.

폐컴퓨터 처리 문제로 고민하던 기업들도 스투키의 구상에 큰 호응을 나타냈다. 이에 뉴욕 브롱스 지역의 40개 기업과 재단들이 회사 설립 컨소시엄에 참여함으로써 1995년 퍼 스콜라스가 탄생했다.

퍼 스콜라스는 직접 판매망을 구축하기보다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사업을 벌이는 비영리 자선단체와의 파트너십 형태로 재활용 컴퓨터를 보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설립 이후 30만 대가 넘는 컴퓨터를 미국 각지의 4만여 저소득 가구에 공급해 왔다.

이 회사는 또 다른 주요 사업으로 컴퓨터 전문기술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기술 습득의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이 대상이다. 훈련생들은 엄격한 기술훈련과 함께 인터뷰나 발표기술, 취업전략까지 교육을 받는데, 모든 과정을 마치면 컴퓨터 조립 및 수리업계가 인증하는 최고 수준의 자격증서를 취득하게 된다.

퍼 스콜라스의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매우 성공적인 결실을 낳고 있다. 졸업생의 75% 가량이 높은 임금을 받는 직장에 취업하고 있으며 3년후 취업상태 유지 비율도 80%에 달한다.

퍼 스콜라스의 경영방침은 ▦정보기술(IT)로부터 소외된 저소득층에게 컴퓨터 보급 ▦소외계층에게 IT 직업훈련 기회 제공 ▦기업들을 대신한 폐컴퓨터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처리 등 3가지로 요약된다.

눈여겨보면 그 바탕에서는 한 가지 일관된 정신을 읽을 수 있다. 바로 사회적ㆍ공익적 목적을 위해 기업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퍼 스콜라스는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이른바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으로 불린다.

결식 이웃을 위한 도시락 제공사업을 펼치고 있는 SK그룹.(왼쪽)

이윤창출을 지상목표로 삼는 일반 영리기업과 달리 사회적기업은 이윤창출과 함께 사회적 목적의 실현을 함께 추구한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선 순위는 사회적 목적의 실현에 놓여 있다. 이윤창출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재원 마련의 수단에 불과하다.

미국의 ‘로버츠 엔터프라이즈 디벨럽먼트 재단’(Roberts Enterprise Development Fund)은 사회적기업을 “저소득층에게 일자리 창출과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업수익으로 운영되는 비영리ㆍ수익창출 벤처”라고 정의한다.

또 사회적기업 ‘루비콘’ 관계자는 “우리는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라는 매우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회적기업의 존재 이유를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이미 유럽이나 미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상당한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사회적기업은 유럽에서 매우 발달해 있는데, 이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지역 특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70년대 이후 유럽의 비영리단체들은 국가나 지방정부, 기업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통해 지역 단위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이는 복지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유럽 각국의 복지제도 개혁 및 복지서비스 민간 이양과 맞물려 사회적기업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다.

OECD 한국대표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유럽에서는 노동시장의 경쟁 심화로 취약계층이 급증하면서 고용창출과 사회통합 차원에서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가 주도의 복지제도가 민간 등이 참여하는 다원적 복지(welfare pluralism)로 옮겨가면서 사회적기업의 역할과 영역은 크게 확장되는 추세다.

그 중 영국은 사회적기업이 무려 5만5,000여 개나 있는데, 이들 기업은 전체 노동자의 5%를 고용하면서 전체 고용사업장 총매출의 1.3%를 차지해 국민경제의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사회적기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올 초 공포한 데 이어 지난 7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 및 일자리 제공을 그 목적으로 명시, OECD 국가들의 사회적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적기업 육성에 직접 소매를 걷어 붙이고 나선 데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동이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가족구조의 변화 등으로 사회복지, 간병, 보육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수요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반면 공급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현재 국내 사회서비스 부문의 인력은 전체 수요에 비해 약 90만 명이나 모자란 실정이다. 아울러 국내 사회서비스 부문의 고용 비중은 OECD 국가의 평균치인 21.7%에 훨씬 못 미치는 13.1%(2005년 기준)에 불과하다.

또한 고용시장의 심각한 침체도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성장 둔화, 산업구조 고도화 등으로 우리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일자리 부족, 소득불평등 심화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사회서비스의 공급도 늘리고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도 제공하는 일거양득의 복안으로 ‘사회적일자리 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뚜렷했다.

대부분 사업이 주로 정부의 재정지원에만 의존하다 보니 수익창출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데다, 일자리 역시 저임금의 단기 직종이 많고 서비스의 질도 낮았던 것이다. 때문에 정부 지원이 줄어들거나 축소되면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큰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사회적일자리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적ㆍ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부가 선택한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인 셈이다.

아울러 정부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일자리 창출과 연계시키는 것은 물론 일부 비영리 복지단체가 자생적으로 키워나가고 있는 사회적기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하자는 복안도 갖고 있다.

현재 SK텔레콤은 실업극복국민재단,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결식이웃 도시락공급’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교보생명도 실업극복국민재단과 협약을 맺어 간병봉사단 사업에 재정 및 경영지원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기업과 민간단체(NGO)의 연계사업이 사회적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한 의료생활협동조합연대, 세종장애아동후원회 등 일부 NGO가 수 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는 복지사업 모델도 장차 사회적기업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 정선희 상임이사는 “우리나라는 민간 차원의 사회적일자리 창출 여건이 취약한 상황이어서 정부의 인큐베이팅 역할이 불가피하다”며 “그런 점에서 정부의 사회적기업 육성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르면 정부는 사회적기업에 대해 ▦경영 및 재정 지원 ▦시설비 등 지원 ▦공공기관의 우선 구매 ▦세제 및 사회보험료 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놓았다. 시장에서 자리잡을 때까지 세심하게 보살피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사회적기업의 성공을 반드시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기업의 안착 여부는 결국 이들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있느냐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선희 상임이사는 “사회적기업이 자립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 못지않게 민간 차원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경영, 세무, 회계, 판매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조직적인 지원을 하고 일반 국민들도 애정어린 관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사회적기업 인증심사를 거친 ‘법적인’ 사회적기업을 10월 중 처음 발표한다. 지금껏 사회적기업으로 분류됐던 업체들도 사회적기업육성위원회(위원장 노동부 차관)의 인증을 받지 못하면 앞으로 사회적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앞서 지난 7~9월 제1차 인증 신청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113개 단체가 사회적기업 인증 신청을 하는 등 높은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과연 사회적기업은 우리나라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선진 복지사회로의 진입을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실험이 막 시작됐다.

● [인터뷰] 부산대 조용복 교수
"사회적 기업도 회사… 이윤 남겨야 생존 가능"

“일반적인 기업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경제적 목적과 더불어 사회적 목적, 나아가 환경적 목적까지 추구하는 ‘착한 기업’인 사회적기업의 성공은 결코 우연히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부산대 경영학부 조영복 교수(사회적기업연구원장)는 “사회적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 외부적인 정책과제와 기업 내부적인 경영과제, 이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정책과제의 핵심은 사회적기업의 가치에 대해 시민사회가 인식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혹은 혜택을 어떻게 측정하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돼 있다. 순수 영리기업의 투자수익을 측정하는 것은 쉽지만 사회적기업이 미치는 광범위한 사회적 영향과 혜택은 산술적으로 가늠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려면 사회적으로 ‘매력’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그 매력은 이른바 ‘사회적투자수익’(SROIㆍSocial Return On Investment)이라는 구체적 수치로 나타낼 수 있어야 시민사회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기업 내부의 경영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기업도 기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존속원칙은 두 가지 부등식으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기업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는 원가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돼야 한다(가격>비용)는 것이고, 둘째는 소비자는 지불하는 가격 이상의 가치(가치>가격)를 느끼고자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사회적기업 역시 기업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윤을 남겨야 하며 아울러 소비자도 만족시킬 수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또 “기업의 환경은 동태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 생존의 기본원칙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적응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기업도 주류사회의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기업의 성격을 가진 이상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사회적기업육성법 주요용어 풀이

■ 사회적기업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며,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ㆍ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면서 인증을 받은 영리ㆍ비영리 조직이다.

민법상 법인ㆍ조합, 상법상 회사,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 등의 일정한 조직형태를 갖춰야 한다. 또 영업활동을 통해 얻는 수입이 총 수입의 일정 비율 이상이어야 하며, 이익은 사업 자체나 지역공동체에 재투자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자원봉사단체나 순수 공익적 목적만을 수행하는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 등은 사회적기업이 아니다. 의사결정 구조도 주주, 근로자, 서비스 수혜자, 지역사회 인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민주적 형태를 띤다.

■ 취약계층

소득기준에 의해 사회서비스 구매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과 노동시장 여건상 취업하기 어려운 취업취약계층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가구 월 평균소득이 전국 가구 월 평균소득의 100분의 60 이하인 자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른 55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른 장애인(중증장애인 포함) ▲성매매 피해자 ▲실업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 ▲노동부 장관이 취업상황 등을 고려해 취약계층이라고 인정한 자(신용불량자, 갱생보호대상자, 노숙자 등) 등이다.

■ 사회서비스

교육, 보건, 사회복지, 환경 및 문화 분야 서비스,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서비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분야의 서비스를 뜻한다.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서비스’에는 보육 서비스, 예술ㆍ관광 및 운동 서비스, 산림보조 및 관리 서비스, 간병 및 가사지원 서비스, 그 밖에 노동부 장관이 사회적기업육성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정하는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 사회적 목적

주로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 외에 다른 사회적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사회적기업육성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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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