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인터넷 카페 '유부클럽' 탈선의 놀이터로 변질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한 장면.
‘유부녀 쉽게 유혹하는 방법’ ‘유부남에게 통하는 애교 베스트 10’….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이런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부남. 유부녀들의 ‘애인 만들기’ ‘애인 되기’ 퇴폐적 열풍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수준으로 번지고 있음을 적나라에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녀와 탈선하는 불륜행각은 동서고금에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상에서 노골적으로 외도를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 예전과 다르다.

이들은 이른바 세컨드 라이프를 위해 ‘유부클럽’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고민을 함께 나누는 등 상담자이자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A 카페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미혼녀’들을 위해 개설된 곳이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거래처에서 만난 사람인데 자꾸 보다 보니 정이 들었죠. 그 사람도 저랑 같이 있으면 좋고, 와이프보다 더 편하대요. 빨리 끝내야 하는 걸 알지만 쉽지 않아요. 주변에서 눈치챌까 무섭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끝내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아요.” 얼마 전 이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유부녀이면서도 이 카페에 흥미 삼아 가입한 회원들은 “어떻게 임자 있는 남자한테 꼬리를 치냐” “가정 파괴범이다”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거다” 등 비난하는 글을 대거 올렸다. 반면 미혼 여성 회원들은 “오죽하면 결혼한 지 얼마 안됐는데도 한 눈을 팔겠느냐” “남편 바람나게 한 와이프가 문제다” 등 양측이 팽팽하게 의견 대립을 보였다.

사태가 너무 소란스러워지자 결국 카페 주인은 이후에 가입하는 사람들에게는 등급제를 적용해 일정 등급 이상만 게시판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바꿔버렸다.

이 카페 또 다른 회원 박모(25세)씨는 여대생이다. 얼마 전 30대 중반의 유부남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박 씨는 앞서 동갑인 남자와 2살 연상인 미혼 남자를 각각 사귄 적이 있었는데 만날 때 마다 데이트 비용 걱정을 해야 했다고 밝혔다.

“남친이 영화를 보여주면 나는 밥이나 커피를 사야 했고, 항상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지금 애인은 유부남이기는 하지만 다른 걱정 없이 편하게 해준다.” 나이 차이가 크고 어느 정도 경제력도 갖고 있어서 자신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배려해준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A카페 개설자 김모씨는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카페와 이웃을 맺은 카페도 3곳이나 된다”며 유사한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후죽순 생겨난 유부클럽이 유명 사이트마다 수백 개씩이나 되고, 회원 수도 각각 수십~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의 유부클럽은 유부남. 유부녀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중시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곳이었다. 그러나 불륜이 유행하는 사회 풍조와 맞물려 본래 클럽의 취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마음 놓고 외도할 수 있는 장소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다른 인터넷 사이트는 대한민국 유부남, 유부녀를 위한 커뮤니티로 육아. 건강 정보를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곳은 시간이 지나 회원들간의 편안한 만남을 주선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유부 탈선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현재 회원수만 해도 2,000여 명이 넘는다.

지난 9월에는 ‘정모(정기적인 모임)’를 가졌고, 일주일에 2~3번은 ‘번개(갑작스러운 모임)’를 한다. 참여율도 높고, 참석한 사람들은 하루 정도 짧은 만남에 그치지 않고 대부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만남을 이어간다.

“오늘 영화 번개 좋았어요. 특히 ‘sdy20’님 게시판에서 얘기만 주고 받다가 직접 만나니까 더 반가웠어요. 답답한 일상에서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조만간 또 만나요.” 이 커뮤니티의 한 회원이 남긴 번개 후기다.

또 다른 회원 김모씨는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이모씨와 함께 얼마 전 여행을 갔다 왔다. 김씨는 아내에게 회사에서 워크숍을 간다고 둘러댔고, 상대방 역시 남편에게는 동창생들끼리 여행을 간다고 꾸며 둘만의 밀월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김씨는 자신 뿐만 아니라 회사 동기들도 ‘애인 만들기’를 꿈꾼다며 그 중 몇몇은 자신의 외도를 알고도 말리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한다고 전했다. 심지어 커뮤니티 가입 방법을 묻는 친구도 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이 같은 세태를 두고 연애지상주의와 쾌락주의, 개인주의가 결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현 교수는 “쾌락추구 성향이 강한 대중문화가 개인을 자극하기 시작하면서 불륜에 대한 죄의식이 줄고 있다”며 “쾌락권 추구가 곧 개인적 권리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만족을 주는 사랑이라면 사회 도덕률을 무시할 뿐 아니라 남의 사람까지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결혼생활에 대한 후회와 절대시됐던 일부일처제에 대한 도전이 늘면서 불륜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 교수는 “불륜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인 부부가 갖고 있다”며 일부일처제라는 제도의 틀에 안주하지 말고 부부 사이의 진짜 애정을 끊임없이 확인할 것을 권고했다. “결혼하고 부부가 됐다고 해서 둘 사이가 언제나 굳건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며, 항상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면서 긴장된 애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현 교수는 말했다.

■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심리학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를 들어 불륜을 설명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사랑에 장애가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대를 더 깊이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불륜 커플이 늘고, 그들의 사랑이 더 열정적으로 달아오르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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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