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능률 향상 위한 '펀 경영' 바람… 유머러스해야 구직·승진에 유리CEO 설문서 77%가 "재미있는 사람 채용 선호"… 성대모사·모창 등 개인기 관련 커뮤니티 인기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김소희(25)씨는 광고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 전부터 ‘스터디’를 시작했다.

주말 내내 스터디원들과 영어공부, 면접공부를 하고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익히며, 광고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부담을 느끼고 심혈을 기울이는 시간은 바로 ‘개인기 연습 시간’이다. 성대모사와 모창은 물론 유머, 춤 그리고 몸개그까지 연예인을 방불케 한다.

사회는 ‘재미있는 사람’을 원한다. 지능지수(IQ)가 높아 똑똑한 사람보다 엔터테인먼트 지수인 엔큐(EnQ)가 높아 재미있는 사람이 더 각광 받는 시대다. 이제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엔큐 지수를 높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6년 초 ‘세리 CEO(www.sericeo.org)’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CEO 631명 중 50.9%가 ‘재미있고 유머가 풍부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항목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매우 그렇다’고 답한 CEO도 26.5%나 됐다.

또 ‘유머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일을 더 잘한다고 믿는다’는 항목에서는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의 비율이 각각 40.6%, 17.1%를 차지했고, ‘유머가 기업 조직문화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항목에서도 총 88%의 CEO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보였다. 결국 엔큐 지수가 높아 유머러스한 사람이 인사채용에서 더 유리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기 연구소’나 ‘개인기 훈련소’와 같은 커뮤니티가 인기를 끌고, 개인기를 위해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엔큐 지수를 높여 ‘재미’와 ‘성공’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리콤 아이디어 익스프레스' 행사에 참가한 직원들.

개인기 연구소의 회원 정모씨는 “요즘 인기 절정인 가수의 모창 연습을 하려고 동영상까지 다운 받았다”며 “틈날 때마다 보면서 따라 하는데 조만간 친구들한테 평가를 받아 볼 생각이다”고 밝혔다.

정씨는 “회사에서 회식자리나 모임이 있을 때 개인기 하나 정도는 있어야 분위기를 맞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는 건 시간문제다”고 덧붙였다.

취업 준비생의 경우에는 개인기 연마를 위한 시간투자가 더 절실하다.

올 초 제약회사에 입사한 이주하(26)씨는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고 조용한 성격 탓에 면접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게다가 할 줄 아는 개인기라고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러나 이제는 식상해져 버린 시트콤에서의 ‘오지명 성대모사’ 뿐이었다.

이씨는 면접에서 성공하기 위해 ‘개인기 스터디’를 시작했고, 상식이나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보다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기 위한 노력에 더 열중했다.

이씨는 “면접 때 선보이기 위해 한달 넘게 연습한 ‘팔도사투리 모창’이 입사 성공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지금도 인사부에 갈 때면 ‘팔도 사투리’ 한번 보여달라고 성화다”며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면접 때 심사 위원들을 웃길 정도로 활발한 개인기와 유머를 보여준 응시자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면접 점수가 후할 수밖에 없다. 입사 후에도 이런 사원들이 조직 적응력이나 업무 성취도가 더 뛰어난 경우가 많아 엔큐 지수가 높은 재미있는 사람들을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엔큐 지수가 높은 인재들은 사회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기업들 역시 ‘펀(Fun) 경영’을 통해 밝고 유쾌한 직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엔큐 지수가 높은 개인들이 성공하는 것처럼 엔큐 지수가 높은 기업이 구성원과 고객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내 발전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는 2004년부터 펀(Fun)경영 총괄 임원인 CJO(Chief Joy Officer)를 뒀다. 신바람 나는 직장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CJO가 직접 나서서 스키장 가기, 단풍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직원들 단합과 즐거운 일터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오리온 그룹 사원들이 본사 강당에서 다 함께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오리온 그룹도 2001년부터 일주일 중 가장 일하기 싫은 수요일을 ‘맵시 데이’로 지정해 직원들이 한껏 멋을 낸 요란한 복장으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달 한번씩은 가장 옷을 잘 입은 직원에게 포상을 하는 이벤트도 열고 있다.

오리콤은 지난해부터 전 직원이 한 달에 한 번 조조 영화를 단체 관람하는 ‘오리콤 아이디어 익스프레스’를 실시하고 있다. 직원들에게는 지친 머리를 식히고 아이디어를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심리학과 ‘로버트 프로빈 교수’는 웃음이 많은 기업이 웃지 않는 기업에 비해 평균 40%에서 300%까지 생산성이 증대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업의 엔큐 지수를 높인 뒤 직원들의 업무능률과 매출을 신장시키는 전략으로 유명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전 CEO 허브 켈러허는 권위를 내던지고 웃음을 회사에 퍼트려 실제로 직원들의 능률을 3배 이상 높이기도 했다.

펀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교포 진수 테리(52. 한국명 김진수)는 ‘웃다 보면 성공한다(Catch the Fun, Achieve Global Success)’는 요지로 ‘재미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펀(Fun)이 곧 커뮤니케이션이다’ ‘엔큐 지수를 높여야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내가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영어를 못해서도 동양인 이민자라서도 또 미국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도 아니다.

단지 ‘재미’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며 그때부터 스스로를 바꾸기 위한 ‘펀 트레이닝’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그 후 조직의 엔터테이너로 변신에 성공한 진수 테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수 민족을 격려하고 희망을 줬다는 공로로 제정한 ‘진수 테리의 날 (2001년 7월 10일)’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재미’만을 강조하고 ‘엔큐 지수’를 높이려고 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건이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조직구성원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음 치료사 한광일 박사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억지로 웃음을 유발하려다가 사람들을 놀리는 유머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며 “자연스러운 재미와 즐거움이 진정으로 엔큐 지수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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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