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주도 체세포복제배아 연구는 수십 가지 분야 중 하나일 뿐학계도 위축되지 않고 연구 성과…학술지·학회 논문수 세계 3·4위수정란 배아줄기세포 배양 기술… 세계 최고 미국과 동등한 수준

온 나라와 전 세계를 충격과 좌절로 몰아 넣은 ‘황우석 쇼크’가 발생한 지도 꼭 2년이 흘렀다.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선두주자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던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논문과 줄기세포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빚어졌던 패닉 현상은 어느덧 기억 속에서도 어렴풋해졌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어도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난치병 환자들은 한 가닥 희망을 놓아버렸고, 국민들은 과학선진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국내 줄기세포 학계의 타격은 더욱 심대했다. 나라 안팎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연구자들의 의욕이 꺾일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내 줄기세포 학계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뜻밖의 사태에 제동이 걸려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또 외국의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어디쯤 달려가고 있을까. 혹여 한국의 불행을 비웃으며 멀찌감치 거리를 벌려 놓은 것은 아닐까.

학계에 따르면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줄기세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오히려 배신의 계절을 딛고 내실을 다져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우석 쇼크 이후 일반 국민들 사이에는 “한국의 줄기세포 신화는 끝났다”는 통념이 자리잡은 게 사실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줄기세포=황우석’이라는 등식이 예전에는 상식처럼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학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애초부터 황우석 전 교수가 주도한 인간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수십 가지에 달하는 전체 줄기세포 연구 방향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는 설명이다.

세계 각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크게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는데,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흐름 가운데서도 한 분야라는 것. 더욱이 배아줄기세포 쪽에서는 수정란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오히려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가 줄기세포의 전부인 양 비쳐진 것은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생산으로 이어져 치료기술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황우석 신드롬’이 낳은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착시효과의 탓도 컸다는 지적이다.

일반의 오해는 또 있다. 한국 줄기세포 학계의 위상이 황우석 쇼크 이전만 해도 세계 1등이었던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내 줄기세포 연구 수준은 예전에 세계 7, 8위 정도에 그쳤다는 게 학계의 냉정한 평가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 줄기세포 학계가 크게 위축되지 않고 나름대로 연구성과를 꾸준히 내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 2007년 7월 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그 동안 저명 학술지에 발표된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관련 논문 수에서 세계 공동 4위를 차지했으며, 2007년 6월 국제줄기세포학회에서 발표된 초록 수도 122개로 세계 3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통상 양질의 논문 발표 수를 한 국가의 연구역량을 판단하는 준거로 삼는 과학계의 관행을 감안하면, 국내 줄기세포 학계는 황우석 사태의 시련을 잘 극복하고 괄목할 성장세를 이어가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국내 줄기세포 연구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컨트롤타워 격인 과학기술부 산하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을 중심으로 한 연구성과는 매우 두드러진다. 일례로 현재 사업단은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를 41개 가량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또 다른 줄기세포 강국 일본이 보유한 3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다.

나아가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를 수립, 배양하는 기술과 인프라는 세계 최고인 미국과 대등한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세계적으로 새로이 각광받기 시작한 이른바 유도만능줄기세포(iPSㆍ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연구 분야에서도 한국 학자들의 행보가 탄력을 받고 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사람의 피부세포 등 체세포를 이용, 특정 유전자 등을 삽입해 분화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린 세포로(이 과정을 ‘역분화’라고 한다) 마치 배아줄기세포처럼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세포를 말한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의 쓰임새를 정확하게 대체할 수 있을 뿐더러, 생명윤리 논쟁과도 무관해 세계 줄기세포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일본 교토대 신야 야마나카 교수팀과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교수팀이 각각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든 데 이어, 재미 한국인 과학자 박인현 박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미국 하버드대 조지 데일리 교수 연구팀도 유도만능줄기세포 생성에 성공했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2006년 상반기에 정부 차원에서 ‘범부처 줄기세포종합계획’이 수립되면서 역분화 연구에 대한 지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대여섯 개의 국내 연구팀이 역분화에 의해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며, 이 가운데 2개 팀은 이미 관련논문 작성을 마쳤을 만큼 상당한 진척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게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학계에서는 줄기세포를 활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신세계가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쯤 뒤에는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져 보면 결코 먼 미래가 아니다.

따라서 국내 학계가 황우석 쇼크에서 본 것처럼 ‘사상누각’이 아닌 진짜 탄탄한 줄기세포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더욱 더 많은 예산 지원과 연구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아울러 특정 연구분야에 대한 쏠림 현상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연구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줄기세포 신화의 개막은 이제 진정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 인터뷰- 김동욱 과기부 세포응용연구사업단장
"줄기세포 주도권 탈환, 국가가 적극 지원을"
국제 신뢰 회복 재도약 완료… 5~10년 뒤 일부 질환은 치료 가능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지난 1년여 동안 국제적인 신뢰회복을 통해 재도약할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자들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김동욱 세포응용연구사업단장(연세대 교수)은 한국 줄기세포 학계가 황우석 쇼크를 깨끗이 씻어내고 앞으로 쭉쭉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에 따르면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은 최근까지 국내외 신뢰회복과 국제협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2007년만 하더라도 국제 줄기세포포럼 가입, 아ㆍ태 줄기세포네트워크 구축, 세계 줄기세포 프로테옴이니셔티브(단백질 연구) 공동의장 배출, 서울 심포지엄의 성공적 개최, ‘복제양 돌리의 아버지’ 이언 윌머트 박사팀과 공동연구 합의, 국내 배아줄기세포주 검증 및 세포사업단 줄기세포주 은행 설립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전 세계 한국인 줄기세포 연구자들의 역량을 한데 아우르는 ‘한민족 줄기세포연구자 네트워크’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점도 눈에 띈다. 그 결실로 벌써 몇 개의 국제 공동연구가 수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신 연구동향에 관한 상호 정보교환 시스템도 갖춰졌다.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은 주목할 만한 연구실적도 많이 내놓았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로부터 파킨슨질환, 척수손상, 당뇨병, 혈관질환의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 희소돌기 아교세포, 췌장세포, 혈관세포 등의 분화에 성공한 것. 또한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해 심혈관 및 신경계 질환 등을 치료하는 임상 원천기술을 개발한 것도 눈에 띈다.

다음은 김동욱 단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황우석 교수가 주도했던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는데 실상은 어떤지.

▦세계적으로 몇 개의 연구팀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원숭이에서는 연구가 성공한 상태다. 한국도 아쉽지만 제한적으로나마 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돼 있다. 아울러 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한 연구진도 많이 있다.

-최근 미국, 일본 등지에서 만능줄기세포 연구가 급부상하고 있다. 만능줄기세포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이미 분화된 체세포(가령 피부세포)를 거꾸로 분화, 즉 역분화시키면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세포가 되는데 이를 유도만능세포라고 한다. 이 세포를 이용하면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와 비슷하게 면역적으로 문제가 없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난자나 배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복제배아 줄기세포와 달리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장점을 지녔다.

-만능줄기세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데.

▦줄기세포 연구는 각 분야마다 장, 단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양하게 많은 연구를 하는 것이 좋다.

-한국이 줄기세포 연구에서 다시금 주도권을 쥐기 위한 방안은.

▦선진국들은 주도권을 쥐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가 지금보다 좀 더 지원을 많이 해야 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 지원비가 선진국에 비해 적다. 아울러 선택과 집중에 의해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 치료는 언제쯤 가능한가.

▦학자에 따라 5~15년을 내다볼 만큼 전망이 많이 엇갈린다. 대전제는 사람에게 줄기세포 치료법을 적용하려면 안전성과 치료효과가 먼저 담보돼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5~10년쯤 뒤에는 일부 질환에 대해 줄기세포 치료법을 적용하는 게 가능하리라 본다.

■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 차이는

줄기세포는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의 기원이 되는 세포다. 가령 상처가 난 피부가 새로 살아나는 것은 피부 아래에 피부세포를 만들어주는 줄기세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는 인체의 다양한 조직에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adult stem cell)와 인간 생명의 씨앗인 배아에서 유래하는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의 두 가지로 나뉜다.

성체줄기세포는 특정한 조직에 존재하는 세포로서 골수세포는 혈구세포로, 피부줄기세포는 피부로, 후각신경줄기세포는 후각신경세포로만 분화되도록 운명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세포다.

반면 배아줄기세포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생성된 수정란(배반포)에서 비롯되는 세포다. 수정란이 태아로 성장할 때는 약 2조 개의 세포가 생기는데 배아줄기세포는 이처럼 수많은 종류의 세포로 발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무한 능력을 갖고 있어 전(全)분화능 줄기세포라고도 이른다.

■ 황우석 박사 요즘 뭐하나
용인 연구소에서 명예회복 연구작업?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그는 최근 줄기세포 연구를 재개해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의 동향 지인이 경기 용인에 설립한 S생명공학연구원을 국내 거점으로 삼고 있다는 소문이다. 이 연구원은 최근 보건복지부에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계획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교수가 태국에서 모종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학계의 한 전문가는 그의 태국 현지 연구설(說)을 부정했다.

"논문 조작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국내외를 들락거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태국의 학계나 관계 사람들에게도 황 교수에 대한 소문을 물어봤는데, 그런 일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더라"고 전했다.

황 전 교수는 줄기세포 논문조작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돼 최근까지 19차례 공판에 출석했다. 20차 공판은 연초에 속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적인 진실 가리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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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