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할인의 달콤함 유혹… 진료차트에 암호 적는 '007작전' 쓰기도연예인·유학생·외국인 등도 주요 타겟… 실리콘·콜라겐등 무자료 구입도 탈루 방법

서울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안모(40ㆍ 남) 씨는 진료과목 대부분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진료 내역을 통보할 필요가 없는 비보험 대상인 점을 악용했다.

그는 “진료비를 현금으로 결제하면 할인혜택을 제공하겠다”며 환자들에게 현금결제를 유도했고,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금은 곧바로 지출한 적도 없는 병원 광고선전비용으로 둔갑했다. 안씨는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수입금액 6억 원을 탈루한 것으로 국세청 조사결과 밝혀졌다.

‘소득 있는 곳에 탈세 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각종 병ㆍ 의원에서의 탈세행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요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일부 성형외과의 경우 다양한 방법까지 동원해가며 탈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들어 성형 사실을 고백하는 연예인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연예인들은 자신이 성형했다는 것을 비밀로 하거나 감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당수 병원들이 이처럼 사생활 보호를 위해 비밀리에 성형을 하는 연예인들의 수술비를 탈세에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연예인들은 신분노출을 꺼려하기 때문에 신용카드 결제보다는 현금 결제를 선호한다”며 “병원 측은 비밀자금과도 같은 연예인 수술비용을 병원수입금목록에서 누락한 뒤 고스란히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신분이 애매모호한 유학생이나 외국인들도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주로 현금결제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이들이 지불한 수술비 역시 소득신고에서 제외된 채 병원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일부 성형외과는 일명 ‘007 작전’을 쓰기도 한다. 진료 차트상 진료단가를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언어나 기호로 ‘암호화’해 기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암호처럼 기록한 진료 단가는 축소나 누락이 용이해 탈세수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게다가 암호로 기록돼 있는 진료단가마저도 정확한 것이 아니다. 성형부위별 단가가 천차만별임에도 불구하고 진료차트 상의 진료단가를 모두 동일 금액이라고 가장함으로써 병원 수입금액에서 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카드결제 대신 현금으로 수술비를 결제하게 되면 탈세가 보다 수월해지기 때문에 상당수의 성형외과가 공공연히 환자들로부터 현금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서울 강남 신사동 A 성형외과는 “수술 전에 전체 수술비용의 10%를 선불금으로 받고 있고, 이 비용은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하다”며 사실상 카드결제를 회피하고 있다. 압구정동의 B 성형외과는 “현금을 내면 수술비용의 20%를 깎아줄 수 있다”며 현금결제를 부추기기도 했다.

드러내놓고 환자들에게 현금결제를 요구하는 병원도 있다. 명동에 위치한 C 성형외과는 “수술비 가운데 최소한 절반은 현금으로 내야 한다”며 의무적인 현금결제를 규정해놓고 있다.

최근 성형수술을 위해 강남의 한 성형외과를 찾은 최모(31ㆍ 여)씨는 “치료비로 500만 원이 나왔는데 현금으로 하면 430만 원까지 해준다고 해서 급히 현금을 준비했다”며 “70만 원이나 깎아주는데 누가 카드를 쓰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성형외과의 탈세를 위한 노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형수술의 주재료로 쓰이는 실리콘이나 콜라겐 같은 주요 소모품들을 무자료로 구입해 탈루하고 있고, 마취제, 보톡스 등의 약물은 구입량과 투입량까지 조작해가며 탈세에 악용하고 있다.

작정하고 탈세를 시도한 성형 외과들의 경우에는 고용하고 있는 의사를 서류상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켜 해당 의사의 수입금액은 제외한 채 병원매출을 30~40% 낮춰서 소득세 신고를 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조세연구원의 전병목 연구위원은 “세무당국이 비보험 진료가 많은 의료기관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의료비 공제 및 신용카드 소득공제, 현금영수증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미용이나 성형수술 등은 의료비 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항목이 많기 때문에 신용카드 소득공제 자료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 위원은 “미용이나 성형외과 등 비보험 병과에서는 현급지급 시 할인 등을 내세우며 수입금액 노출을 회피하는 사례가 많아 투명성 제고에 한계가 있다”며 “성형외과 등 고소득 전문의료직종의 소득 파악을 위해서는 의료비 공제대상의 확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미용, 성형수술 역시 의료비 공제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다양한 수법을 동원해 탈세를 꾀하고 있는 성형외과에 대해 관리를 계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수입금액 탈루 및 각종 자료제출 미비 등 불성실신고혐의자에 대해서는 즉각 세무조사대상자로 선정하는 등 대응강도를 높일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올해부터 병ㆍ 의원이 수입에 대해 무신고 또는 과소신고를 한 것이 적발될 경우 전체 수입금액의 0.5%를 가산세로 추가 납부해야 하는 ‘사업장현황신고불성실 가산세’가 시행되지만, 병ㆍ 의원들이 이를 또 어떻게 피해 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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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