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티시 업소·동호회 등 성행… 고학력·전문직 종사자 특히 많아

사디즘(Sadism), 마조히즘(Masochism). 페티시즘(fetishism). 흔히 이상(異常) 성해위나 성적 취향의 대명사로 일부에선 변태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페티시즘 또는 페티시가 더 이상 변태행위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패티시는 무조건 변태라고 혐오하던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다.

페티시즘(fetishism)이란 이성의 육체 일부나 속옷, 스타킹, 구두 등 인격체가 아닌 물건이나 특정 신체 부위에서 성적 만족감을 얻으려는 경향으로 ‘성도착증’으로 분류되는 증상. 페티시스트는 페티시즘을 즐기는 부류를 말한다.

페티시스트들은 과거 성적소수자로 분류돼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숨지 않는다. 이제 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당당하게 밝힌다. 아울러 자신들은 변태나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터넷에서 페티시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검색창에 페티시라는 단어만 치면 이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페티시 관련 유흥업소를 비롯해 동호회, 카페, 블로그, 성인 사이트 등 관련 사이트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페티시가 널리 퍼져있다는 얘기다. 동시에 많은 이들이 페티시를 즐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흥업소의 경우를 들어보자. 과거 페티시 업소는 이웃나라 일본에선 흔했지만 국내에선 매우 드물었다. 전국적으로 몇 개 되지 않는 페티시 업소엔 성적소수자만이 소리소문없이 드나들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페티시 업소가 전국구 추세여서 전국 주요도시엔 기본적으로 한 두개의 업소가 들어서 있고 서울엔 거의 이십여개의 패티시업소가 각기 성업중일 정도로 대중화의 추세를 걷고 있다.

유흥을 즐기는 이른바 유흥고수(?)들 사이에서도 페티시 업소는 더 이상 변태만 가는 곳이 아니다. 포장마차에서 호프집으로 술자리를 옮기듯 그저 색다른 분위기의 업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페티시를 즐긴다고 해서 전혀 흉될 게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를 통해 활동하는 페티시스트들 중 자신을 변태라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패티시 카페의 회원들 대부분은 ‘멀쩡한’ 일반인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페티시를 즐기는 이유에 대해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권태로운 성 생활의 자극제로서의 변태행위를 위한 페티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스타킹이나 가는 발목 혹은 발가락이나 9cm의 높은 하이힐등에 ‘필이 꽂혀서’ 자신만의 페티시를 즐긴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모 포털사이트의 페티시 카페 운영진으로 활동 중인 안병중(31.가명)씨는 “중학교 때부터 페티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 때는 그게 변태라고 생각해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몰래 즐겼죠”라고 말한다.

안씨는 스타킹 신은 여자를 보거나 우연히 스커트 사이로 드러나는 여성들의 속옷을 보면 직접적인 성관계와는 다른 묘한 흥분을 느낀다고 한다. “어찌 보면 변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것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을 남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페티시는 그동안 감춰왔던 자연스런 자극이 아닐까요?”

안씨에 따르면 페티시를 즐기는 여성들도 생각보다 많다. “우리 카페 회원들 중에 여성들이 의외로 많아요. 대부분 적극적인 카페 활동을 하진 않지만 카페 방문은 수시로 해요. 여성 회원들도 남성의 간접적인 노출이나 특정 포즈를 보면 성적으로 자극을 받는다고 말해요.”

또 페티시를 즐기는 이들 중에는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강남에 위치한 페티시 전문 N클럽의 매니저 박현호(42.가명)씨는 작년 말까지 속칭 ‘텐프로 룸살롱’에서 일하다 지난 1월 말부터 페티시 클럽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텐프로 업소에서 페티시 클럽으로 옮긴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유흥문화의 트랜드로 자리잡아 돈벌이가 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업계 베테랑 선배가 페티시클럽을 오픈한다고 해서 이쪽으로 옮겼다”면서 “요즘엔 페티시 클럽처럼 특성화 된 곳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텐프로 룸살롱이 최근 수년사이 알게 모르게 하향 평준화되어 거의 일반 룸살롱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라 예전과 비교해보면 수익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 그래서 패티시 클럽을 잘만 특화시켜 상류층손님들을 유치하게 되면 텐프로 룸살롱과 비교해도 수익면에선 별로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처음에는 업소를 찾는 이들이 대부분 변태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더라”면서 “오히려 겉보기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더 의외였던 것은 전문직에 종사하시는 손님들이 자주 들른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서초동 부근의 또 다른 페티시 룸살롱 관계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우리 업소는 좀 변태적인 취향을 조금 더 오픈시켜놓은 시스템이라서 그런지 다른 곳에서 술을 한잔 걸친 상태에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많다”며 “부근 병원 관계자, 법조계 관계자 분들이 2차로 우리 업소엘 자주 들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들은 그냥 술마시고 노는 것보다는 카터 벨트에 스타킹을 기본으로 한 파트너 아가씨들에 더 필을 느끼는 듯 하다는 것. 마지막엔 꼭 스타킹을 손으로 찢고 기념으로 가져 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페티시는 신분 차이와 남녀를 불문하고 대중화 되어 가고 있지만 거부감도 없지는 않다.

회사원 최성민(32.가명)씨는 8개월 전 사귄 여자 친구 때문에 고민이 많다. 최씨의 페티시 취향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최씨는 여자 친구가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는 것을 좋아한다.

문제는 최씨가 자신의 패티시적인 취향을 침실에서 뿐만이 아니라 바깥출입을 할 때도 요구한다는 데 있다. 그럴 때마다 둘 사이의 침묵의 카르텔은 깨지고 만다.

최씨는 “아주 가끔씩 노팬티에 제가 좋아하는 색깔의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은 그녀와 사람많은 곳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는데 슬쩍 그런 뜻을 내비치면 그녀는 저를 변태취급하며 화부터 내기 일쑤”라며 “페티시가 변태라고 생각하는 건 습관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일종의 편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의 성적 취향에 맞춰 개발하고 도전해 보는 게 진정한 ‘성적 자유’를 얻는 것이라는 게 최씨의 지론이다.

페티시 카페 등에는 최씨와 같은 처지를 하소연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여자 친구 혹은 아내에게 ‘색다른’ 요구를 했다가 정신병자로 몰렸다는 내용들이 간혹 눈에 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숨기거나 버릴 뜻은 없다. 잘못된 것은 페티시에 대해 무지한 이들이지 자신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성적 취향 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커질지 두고 볼 일이다.


구성모 프리랜서 heyman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