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치료기관 드물고 연구도 뒤처져… 청년의사 학술모임도 걸음마 수준

‘약물중독은 있지만 약물중독센터는 없다.’

약물중독의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떠돌고 있다. 증상에 따라 전문의의 정식 처방을 받아 약물을 복용하는 이들은 그나마 나은 사정. 이상증세가 발견되는 즉시 자신에게 처방을 준 전문의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생활 속의 상비약 등 일반약품을 사용하다 부작용을 겪게 된 약물중독자들이다. 당장 어느 병원, 어느 과목의 진료과를 찾아야할 지 기본적인 지식조차 제공받을 곳이 없다. 현재 이들이 현실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곤 대부분 인터넷이다. 당사자 또는 가족의 약물중독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며 원인을 묻는 내용들이 연일 인터넷에 넘쳐난다.

이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실제로 국내에 이에 대한 전문병원이나 전문의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거의 유일무이하게 자리했던 인천의 한 약물중독센터도 몇 년전 폐쇄된 상태. 그나마 그러한 곳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아예 모르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대학병원에 설립된 약물중독센터들이 있기는 하지만, 진료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이들 환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대다수가 알콜, 마약, 흡연, 도박 또는 인터넷 중독등 ‘대중적인’ 일부 과목에 한결같이 집중 편중돼 있다.

가천의과학대 독성전문 호흡기내과 노형근 교수는 그나마 현재 국내에서 이 분야를

다루고 있는 거의 유일한 권위자다. 재직중인 병원을 통해 실제로 약물중독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국내를 통틀어 약물중독자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현장이다.

노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이 분야의 연구와 활동이 매우 뒤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약물중독센터가 활성화 된지 55년 역사를 갖고 있다.

미 전역에 걸쳐 60여개의 중독센터가 왕성하게 가동되고 있다. 센터의 운영 재정 지원도 연방정부와 지자체 등이 상당부분을 분담하며 약물중독자 구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만 해도 약물중독센터가 설립된지 40여년. 각 국가마다 곳곳에 전문병원이 세워져 있어 약물중독자들의 치료와 재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약 5년전 대한임상독성학회가 처음 구성된 것이 이 분야 역사의 전부다. 그간 약물중독 전공자가 거의 전무하던 상황에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약물중독 중환자들을 접하다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 청년의사들이 조금씩 모여들면서 연구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그래봐야 이제 막 첫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하다. 대한임상독성학회는 정기세미나가 1년에 1회, 그 외 약 5,6회의 간이 학술회의를 여는 것이 현재 학술활동의 전부다.

약물중독 중에서도 급성약물중독 분야는 노형근 교수가 주축으로 뛰고 있지만, 만성약물중독의 경우는 아직도 대표적인 주역 하나 없는 불모지 상태다. 노형근 교수는 “ 다행히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젊은 의사들이 차차 늘고 있으므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한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현재 약물중독자들이 전문의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가천의과학대 길병원 내과로, 매주 한차례씩 노 교수가 외래진료를 맡고 있다.

“올해중 길병원의 전문 약물중독센터가 설립될 예정”임을 밝힌 그는 덧붙여 이 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했다. “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없으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이라며 “오갈 곳 없는 약물중독환자들을 한시바삐 구제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함께 나서야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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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