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근거 없는 총재 흔들기… 대외비 문건 공개 외교문제 될 수도"두바이 공주에게 향응 받고 올림픽 와일드카드 제공" 등조정원 총재, 2004년취임 이후 온갖 흑색선전 시달려

바람 잘 날 없는 세계태권도연맹(WTF)에 최근 ‘돈’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조정원 총재가 연맹 공금을 함부로 사용했다.” “양진석 사무총장이 IOC 위원에게 뇌물을 전달했다.” 심지어 “두바이 공주로부터 향응을 받은 대가로 올림픽 와일드카드를 줬다”는 주장까지 쏟아졌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취임 이후 온갖 흑색선전에 시달려온 조정원 총재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사무국을 개혁하는 계기로 삼았다.

조정원 총재는 3월 7일 이상헌 마케팅부장과 김동민 경기부 계장을 근무 태만과 명예훼손, 비리 개입을 이유로 해고했다. 노동조합 위원장과 부위원장인 김동민 계장과 이상헌 부장은 최근 노조를 설립, 조정원 총재의 공금 유용 등 각종 의혹을 주장했지만 연맹 감사 결과 오히려 노조원이 각종 비리에 연루됐다는 증거가 나왔다. 조 총재가 개혁의 칼을 휘두른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조양빌딩 앞. 노조는 13일 ‘조정원 총재 공금 유용 및 양진석 사무총장 IOC 돈봉투 사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상헌 부장과 김동민 계장은 한국체육대학교 출신. 그래서인지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경훈, 정재은 등 한체대 후배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마이크를 들고 연맹을 성토하자 시민들은 “또 비리냐”며 WTF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정작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던 한 청년은 “사범님의 지시로 나왔다”고 실토했다. 노조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정재은은 “적절한 절차 없이 해고당한 선배를 위해 규탄대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맹이 이미 상벌위원회를 두 차례 열었고, 소청 기회를 줬지만 노조가 거부한 사실은 전혀 몰랐다.

정재은은 “상벌위가 열렸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서 “만약 알았다면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했다. 노조가 한체대 출신 후배를 ‘얼굴 마담’으로 이용한 셈. 이상헌 부장도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도와줘서 고맙다”면서 “이름값이 있는 후배들이 나와야 언론의 관심을 끌지 않겠냐”고 시인했다.

이상헌 부장은 “조정원 총재가 공금을 유용했다는 증거를 공개하겠다”면서 취재진에게 각종 서류를 보여줬다. 경조사에 총재 이름으로 보낸 화환 목록과 각종 국제 행사에서 총재가 사용한 홍보비(PR fee)가 적힌 서류다. 이상헌 부장은 “화환 가운데 태권도와 관련이 없는 사람의 경조사에 간 게 꽤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액수가 많지 않을 뿐더러 경조사에 보낸 화환을 갖고 시비를 거는 건 억지다”는 게 태권도계의 중론이다.

또 조 총재는 국제행사가 있을 때 홍보비로 1,000~5,000달러를 썼다고 비난했다. 김운용 전 총재 시절 매달 2만 달러까지 판공비로 쓴 것과 비교하면 국제 행사에서 홍보비로 수천 달러를 쓴 것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다. 게다가 조 총재는 해마다 연맹에 기부금을 낼 뿐만 아니라 자비를 들여 태권도 알리기에 힘썼다. 태권도계가 노조의 주장을 얼토당토않다고 무시하는 이유다.

연맹은 22일 이상헌 부장과 김동민 계장이 그동안 공금을 횡령해왔다고 밝혔다.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재

김환표 연맹 총무부장은 “감사를 위해 회계 장부를 정리하다 발견했다”며 증거를 공개했다. 국제심판 연회비는 2006년까지 약 1,500명이 냈지만 2007년에는 약 500명에 그쳤다. 연맹은 내부 조사 결과 이 부장과 김 계장이 연회비를 횡령했다고 판단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국제심판 자격증을 따는데 이 부장이 수차례 개입됐다는의혹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조는 “이상헌 부장의 해고 사유 가운데 금품과 향응 수수가 있는데 연맹이야말로 두바이 공주에게 향응을 받고 2008베이징올림픽 와일드카드를 넘겨줬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연맹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IOC가 비밀로 해달라고 요구한 와일드카드 명단을 노조가 공개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공주인 셰이카 마이사 알 막툼은 2006도하아시안게임 공수도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태권도 발차기에 반했다”는 막툼 공주는 지난해 5월에는 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태권도의 높은 벽을 실감한 공주는 “태권도 종주국 한국 선수와 함께 훈련하고 싶다”고 조정원 총재에게 부탁했다. 공주가 항공료와 숙식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경희대 태권도부가 지난해 5월말 두바이를 방문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는 조정원 총재가 경희대 총장 출신이란 사실을 들먹이며 경희대 태권도부가 받은 숙식비용을 금품과 향응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UAE가 20일 연맹의 유감의 뜻을 표명해 자칫 잘못하면 와일드카드 문제가 외교 문제로 번질 가능성까지 생겼다. 연맹의 집안 싸움 때문에 IOC가 대외비로 해달라고 부탁한 와일드카드 명단이 외부로 누출된 것도 문제다.

조정원 총재는 “WTF 수장이 되면서 연맹 내 모든 직원을 껴안으려고 노력했다”면서 “함께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이제 모두 연맹에서 나갔다”고 말했다. 노조가 근거 없이 퍼트린 온갖 추문 때문에 연맹의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하지만 사무국 개혁에 마침표를 찍은 건 큰 소득이다. 최근 IOC 위원에 도전한 조정원 총재는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지만 연맹이 튼튼해졌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러나 세계태권도연맹은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스포츠용품회사 아디다스를 등에 업고 전자호구 선정 과정에서 연맹을 음해한 박수남 부총재와 지난해부터 사사건건 조정원 총재에게 시비를 건 태국의 IOC 위원 낫 인드라파나 부총재. 이들은 연맹 내에서 호시탐탐 조정원 총재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흑색선전을 일삼고 있다는 후문이다..

조정원 총재는 “이제 사무국 쇄신이 끝났으니 다음은 연맹 내 반개혁 세력 타파다”고 다짐했다.


스포츠한국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