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 등 비재무적 성과 다룬 기업리포트'자화자찬' 아닌 '진실' 담아야 오히려 유익

삼성전자의‘봉사드림팀'이 경기도 용인‘팔복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지속가능경영(Sustainable Management, SM)’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기업들이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으며, 한국기업들도 선진국을 좇아 잇따라 발간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지속가능성보고서란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러 형태의 활동으로 구현하고 그 성과를 정리한 보고서를 말한다. 재무적 성과를 정리해서 주주와 금융기관 등에게 보고하는 ‘연차보고서(Annual Report)’와는 사뭇 다르다. 환경이나 사회공헌, 인권 등 비재무적 성과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 내용은 ‘자화자찬’ 일색이고, 진정성이 결여돼 있어 기업홍보 브로슈어와 다를 게 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게다가 적잖은 돈을 들여 발간한 보고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소비자와 주주,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시민단체 등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보고서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도록 유도, 우군(友軍)으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진솔한 대화 수단으로 삼아야

코카콜라는 지난해 발간한 ‘2006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2006년 네덜란드에서 3000유로의 환경 관련 벌금을 물었으며, 미국에서는 133건의 법규위반으로 61만8,995달러의 벌금을 물었다”고 밝혔다. 글로벌 가전제품 회사인 GE는 지난해 6월 발간한 ‘2007년 기업시민 보고서’에서 자사제품 일부가 군사용으로 전용된 사실을 시인하고, 해당 제품의 주문을 중단했다.

반면 한국기업들이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이처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봉사활동 실적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고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문제에 대한 정형화된 진단이나 대책도 찾기 어렵다.

다만 최근 보고서를 낸 케이티엔지(KT&G)는 △외주업체 및 내부직원의 절도 행위 △일부제품의 과장광고로 ‘주의’를 받은 사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건의 처리 등 숨기고 싶은 사례들을 과감하게 공개, 신뢰감을 크게 높인 것으로 평가됐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지속가능경영 연구·교육기관인 보스턴칼리지 기업시민센터(BCCCC)의 페기 코널리(Peggy Connolly) 커뮤니케이션 담당 이사는 “많은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의사소통의 핵심이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BCCCC는 이와 함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대다수 기업들이 종업원이나 각종 시민단체, 자사의 소비자, 잠재 종업원인 구직자 등에게 자신들의 지속가능경영성과를 알리는 데 소홀하다”고 최근 조사보고서에서 지적했다. 종업원과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사기를 북돋고 사외 이해관계자와의 진솔한 의사소통은 인재선발에도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포스코사회봉사활동.

■ 통(通)하면 동(動)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제기가 있다. 이해관계자들이 특정 기업의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등 지속가능경영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인지(認知)할 기회가 매우 적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지속가능발전 커뮤니티 서스틴(SUSTAIN, http://www.sustain.kr)은 최근 자체 보고서에서

“대다수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해당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성과를 ‘단편적’이며 ‘불완전’하게 인지, 보고가 의도하는 ‘투자’나 ‘구매’ ‘입소문’ 등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현 서스틴 대표는 “한국기업들은 GRI(국제 지속가능성보고서 작성기준)나ISO26000/SR(국제 사회책임기준) 등 지속가능성 관련 국제기준에 집착하는 반면 국내소비자 등 직접적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에는 사뭇 수동적”이라고 말했다. 지속가능성 보고의 환류(feed-back) 과정에 다수의 국내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키지 않아 ‘이해관계자에 대한 지속가능성 보고’라는 고유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는 특히 한국기업들이 ‘인증마크’만을 지속가능경영의 주된 성과로 인식하는 편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지역사회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을 반영할 수 없는 인증마크는 무의미하며,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 없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사회적 책임’ 성과가 높은 기업의 경우 인기가 좋아져 매출과 주가가 오르고 인재들이 운집하는 한편 세금도 많이 내 지역사회 전반을 이롭게 한다는 연구보고서가 잇따라 나오면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국내 기업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제 기업들이 국내외 환경변화에 따라 이해관계자에게 SM성과 보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 지속가능성 보고서 무엇에 쓰이나

영국의 코퍼레이트 레지스터(CorporateRegister.com)사는 90여개 나라의 기업들이 발간한 지속가능성보고서 1만6,000건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한국기업도 국제사회의 보고서 발간 추세를 따르고 있다. 2008년 3월 현재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한 한국 기업은 유한킴벌리, 포스코, SK텔레콤, 삼성SDI 등5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이유는 주주 등의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경영위험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공헌, 기후변화 대응, 인권, 빈곤퇴치 등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배경에서다. 대다수의 기업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책임 수준이 높은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는 여러 연구결과들도 보고서 발간을 서두르게 한다.

국제연합(UN) 글로벌컴팩트나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사회책임(SR) 가이드라인들도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를 재촉하는 제도들. 특히 오는 2009년 발효될 ISO26000/SR(국제 사회책임기준)은 환경과 인권, 기업지배구조 등의 측면에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기업을 각종 거래 때 배제하는 잣대로 활용될 전망이다.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기업들에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 셈이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기업이 중대한 실수했을 때 일종의 진정제 역할을 한다. 지속가능경영(SM) 성과가 잘 인식된 기업의 경우 부정적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이해관계자들이 △해당사안에만 반응하거나 △위기극복에 조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 미래지향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 기업경영컨설턴트는 “태안기름유출사고 당사자인 삼성중공업이나 생쥐머리 새우깡을 유통시킨 농심이 평소 지속가능성보고를 통해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히 의사소통을 해왔다면, 지금처럼 포괄적인 반감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