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문화교역 문창호 대표 (중국 옌벤대 교수)한중일 문인·화가 6만 명 서명사전 나와미술품 위작 시비 줄일 예술품 감정사 제도 도입 시급

서울 종로구에 사는 김인식(47) 씨는 지난 일요일 오전, ‘TV 쇼 진품명품’(KBS1TV)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문득 선친이 가보처럼 간직해온 옛 글씨가 떠올랐다.

김 씨는 당장 행서(行書)체로 쓰인 간찰(편지)을 가져와 프로그램 전문 감정위원의 설명에 따라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누구의 간찰인지 알 수 없었다. 간찰의 끝 부분에 ‘늑(泐)’이란 서명(暑名)이 있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 지 가늠조차 못했다.

문인들은 작품의 내용이나 흥취에 따라 다양한 호를 새겨 낙관을 찍거나 서명을 하였다. 하지만 옛 서화, 문집, 간찰에 작가의 이름 없이 낙관만 찍혀 있거나 처음 보는 호만 있을 때 누구의 작품인지 궁금하다.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사전이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한국, 중국, 일본의 문인이나 화가,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등 명인(名人) 6만 명의 호(號), 자(字), 별칭 20만 개를 한데 모은 <한중일 서명사전>이다. 중국 연변대 예술대학 객원교수인 문창호(53) 씨가 수년간 사재를 털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결정체이다. 책에는 공자, 소식(蘇軾ㆍSu Shi, 1036~1101)으로부터 명필가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 석봉 한호(1543~1605), 일본 최초 수묵화가 셋슈(雪舟·1420~1506), 고므로 스이운(小室翠雲·1874~1945), 이명박 대통령, 골프선수 박세리, 가수 정지훈(비·RAIN)까지 한중일 고금(古今)의 명사들이 망라돼 있다.

이 서명사전(363쪽)에 따르면 앞서 ‘늑(泐)’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서명이다. 추사는 그 외에도 ‘老果(과천사는 늙은이)’‘노염(老髥)’‘仙客(仙客老人)’등 사용한 호만 해도 200여 개에 이른다. 사전에서 그러한 서명을 찾아보면 추사의 본명과 생몰연대, 출생지, 주요 업적과 사용된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경우 ‘다산(茶山)’‘여유당(與猶堂)’‘洌水(열수)’등의 서명이 알려져 왔지만 ‘菜山(채산)’‘죽난산인(竹欄山人)’‘탁옹(籜翁)’‘삼미(三眉, 미간에 흉터가 있음)’‘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등의 서명은 전문가들도 알기 어려운 것들이다. 옛 문헌에 나타나는 정약용의 서명은 23개나 되는데 <한중일 서명사전>은 그러한 내용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또한 책의 부록에는 한ㆍ중ㆍ일의 명인 6만명 중 8,000명의 스승과 가족관계, 시대의 흐름(風格)과 한중일교류관계 등을 정리해 통사적 인물사전을 연상케 한다. 예컨대 조선 태종의 장남 安平大君은 중국 원나라 시대의 명필가 조맹부(趙孟頫·1254~1322)를 흠모해 서예에 능했는데 책(2378쪽)에서는 안평대군 소개 면에 조맹부에 대한 설명도 상세히 곁들여 이해의 폭을 넓혔다. 아울러 책의 본문에는 ‘송설(松雪)’‘자앙(子昂)’처럼 널리 알려진 조맹부의 서명 외에 ‘조왕손(趙王孫)’‘조승지(趙承旨)’‘수정궁도인(水精宮道人)’‘조구파(趙鷗波, 집에 鷗波亭 있음)’ 등 생소한 서명(21개)을 소개해 서명만 봐도 누구의 작품인지를 알 수 있게 했다.

2,885쪽에 달하는 이 사전은 지난 6년간 하루 12시간씩 작업하며 철야를 예사로 했던 문창호 교수의 집념의 산물이다.

문 교수는 대학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한 ‘정통파’는 아니다. 중학교 시절 동양화의 매력에 빠져들어 서화가인 우암 오재수 선생을 무작정 찾아가 서예와 한문을 배우긴 했지만 대학(성균관대 통계학과)을 졸업한 뒤에는 대기업에 들어가 20여년간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고미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아 서화와 간찰, 골동품 등을 약 3,000여 점 수집하여‘보는 눈’이 생겼고 감정 실력도 수준급에 이르렀다.

“고미술품을 대하니 한학을 공부하게 되고 낙관(서명)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됐는데 주변에 고미술품에 찍힌 서명의 주인을 모르는 소장자가 많아 안타까웠어요.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그래서 90년대 초반부터 작가의 호와 서명에 집중적인 관심을 갖게 됐죠.”

그가 작가의 서명을 모아 사전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것은 ‘한글엑셀판’을 활용할 수 있게 된 1997년 이후다. “사전을 만들겠다고 하자 무모한 일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소리부터 들렸지만, ‘그렇다면 나라도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그는 2002년 명지대에 문화예술대학원 예술품감정학과가 생기자 회사를 그만두고 늦깎이로 공부하며 ‘한국고미술감정협회’라는 출판사를 설립, 본격적으로 사전 편찬 사업에 뛰어들었다. 1~2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사전 편찬 작업은 그러나 홀로 고금의 문헌을 뒤지고 20만 개에 이르는 항목을 빠짐없이 정리하는 동안 훌쩍 지나갔다. “6년 동안 설과 추석 말고는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고 서울 봉천동의 15평짜리 사무실에서 새벽 3, 4시까지 자료 찾기, 입력 작업을 했어요. 나중에는 눈이 흐려져 작업시간을 줄여야 했을 정도였죠.”

6년 동안 사전 편찬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5억5,000만 원. 퇴직금으로 사두었던 시골의 땅 6,000평을 팔고 서울의 37평짜리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간신히 메웠다.

그리고 올해 3월 드디어 사전이 출간됐다. 비용이 모자라 일단 350부만 찍었다. 만만찮은 분량에다 혼이 담긴 책의 가격은 30만원. “누가 이 사전을 구매할 지 막막하지만 우리 고미술품 감정의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자부합니다.”그러면서 그는 지난 6년간 묵묵히 기다려준 어머니 최일순(78) 여사, 부인과 고등학생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문 교수는 서명사전 출간과 관련, ‘감정(鑑定)’의 의미성을 강조했다.“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서양화, 서예 작품들의 위작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 사전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감정의 기본자료로는 쓸만할 겁니다.”

사실 문 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고서화나 미술품의 진위를 가리는 ‘감정’의 중요성은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장 예술품이나 문화재의 진위 문제는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관건이다. 그 동안 수없이 발생해 사회 문제가 된 동서양의 미술품 위작사건은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최근 들어 미술품의 진위를 판별하는 공인된 기관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전문 감정가이기도 한 문창호 교수는 “문화유산이며 중요자산인 예술품은 각개의 진위문제도 개인이나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국가의 공인된 감정시스템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예술계 안팎에서도 정부가 기존 인력을 국가시험을 통해 선택 활용하는 감정인프라 구축과 예술품감정사(가칭)와 같은 자격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 점에서 <한중일 서명사전>은 감정의 활성화와 제도화를 위한 디딤돌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책 문의 http://www.i-china.co.kr, 02)876-7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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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