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료전지 개발 1세대 주자 최서호 박사세계 친환경차 대회서 전종목 최고 등급 받아… 기술 불모지에 꽃을 피운 숨은 주역

현대기아차 환경기술연구소에 찾아든 새 봄은 여늬 해와 다르다. 이들은 지난해 말 열린 세계 친환경차 대회 ‘미쉐린 챌린지 비벤덤’에서 투싼 연료전지차로 전 종목 최고 등급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순수한 국내 독자기술로 승부한 최초의 도전, 최고의 쾌거였다.

기업의 차원을 떠나 한국 전체의 연료전지 기술력을 인정받은 국가적 경사였다. 바로 이 대회의 출전작을 만들어 호보를 전해온 숨은 주역들 한가운데에 최서호(39) 박사가 자리해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에 연료전지 개발팀이 만들어진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실험현장을 직접 지켜 온, 베일 속의 주인공이다.

■ 국내 자립 기술로 8년 만에 세계 재패

“ 저보다는 임태원 소장님을 비롯해 연료전지팀원 전원이 합심해 거둔 성과입니다.”

뒤늦은 축하인사를 전하자 최 박사의 차분하고 겸손한 화답이 돌아왔다. 미쉐린 챌린지 비벤덤은 세계 각국에서 개발한 하이브리드, 전기차, 연료전지차 등이 출전해 여러 분야에 걸쳐 친환경기술력을 견주는, 권위있는 국제대회.

이번 대회에서도 전세계의 유수 기업 54개 업체가 참가해 불꽃튀는 기술각축전을 벌였다. 현대기아차 연료전지팀의 경우 출전경험이 이번으로 네 번째.

시험종목은 연료전지차 즉 수소자동차의 연비, 브레이크 제동거리, 가속 성능, 소음 실험, 슬라롬(원뿔형 장애물을 일정 간격으로 세워놓고 지그재그식으로 통과함으로써 핸들링 성능을 판정하는 실험)등 다양한 테스트로 이뤄져 있다.

최 박사팀은 이 대회에서 올A 최고점을 끌어냈다. 국내에 연료전지 개발팀이 만들어진지 불과 8년만에 거둔 기적이다. 게다가 순수 국내 기술로 처음 도전하자마자 거둔 압승이다. 한 전문가는 “최 박사가 없다면 한국의 연료전지 개발사도 없다”고까지 단언한 바 있다.

“ 한가지 아쉬운 건 이번 대회에 일본팀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다음 기회에라도 꼭 한번 함께 출전해 맞겨뤄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전세계가 연료전지 개발에 촉각을 세우는 걸까?

“ 현재 쓰고 있는 일반 가솔린을 연료로 쓰고나면 이산화탄소 등 유해가스가 많이 배출되지만, 수소는 연료전지 내에서 반응 후 순수한 물만 배출하는 청정에너지입니다. 자연의 에너지를 연료로 사용한 뒤 그 부산물까지도 순수한 자연물로 되돌려보내는, 대단히 매력적인 미래 연료입니다.”

그만큼 이 기술에 대한 기업 안팎의 보안관리도 예민하다. 사실상 ‘연막’ 속의 공학자 최 박사가 정면으로 대외 공개되는 것도 이번이 이례적인 사례다.

“ 저희 분야는 국가기관에서도 직접 보안에 관여합니다. 대내적인 보안절차는 물론이고, 심지어 어디에 누가 얼마나 일하는지, 투입 인원조차 기업, 국가를 불문하고 철저히 비공개로 붙여져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도 마찬가지죠.”

■ 첨단 기술개발로 기적을 이루다

어릴 때부터 움직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기 좋아하던 소년. 고교때 적성검사를 하자 ‘기계공학’ 분야에 유독 그래프가 길게 그려져 있었다.

“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공부해보니 생각처럼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공외에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제어 분야 등을 많이 공부했어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때 그렇게 흥미삼아 공부해뒀던 것들이 지금 이 분야에 모두, 한가지도 빠짐없이 알뜰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이예요.”

2000년에 입사, 들어서자마자 바로 연료전지팀에 투입됐다. 막 출범된, 당시 한국 최초의 팀이자 원년 개발팀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국내 연료전지 개발계의 1세대, 개발자 1호가 된 배경이다. 당시 임태원 현 환경기술연구소장은 전반적인 실무를 맡고, 최 박사는 직접 실험장에 살다시피 지내며 실질적인 기술력 확보에 매진해왔다.

“ 처음엔 정말 막막했죠. 팀만 짜여졌을 뿐 아무것도 없었어요. 물론 기본적인 관련 이론 지식은 가졌지만, 실제로 연료전지차를 만들어 본 경험자가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과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외국팀과의 공동개발 형식으로 출발했다. 점차 독자개발의 가능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2006년 무렵이다. 내부인력과 기술만으로 처음 연료전지차를 만들어보면서부터였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때 화제를 뿌렸던 ‘준마’ 시승식 해프닝을 슬쩍 띄워 보았다.

“ 현장 관계자들의 심정이 어땠을 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웃음) 저희도 초기엔 여러 해프닝이 많았죠. 가장 아찔했던 건 2001년인가 맨처음으로 사장님 앞에서 첫 시연을 할 때였어요. 한겨울에 중역들까지 모두 늘어선 채 시승식이 시작됐는데 시동이 안 걸린 거예요. 부랴부랴 시승차를 고치며 수습하는데, 문제는, 사장님이 떠나시지않고 계속 우리 모습을 지켜보고 계신 거였어요. 불과 10여분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제 인생에 그 때처럼 길게 느껴진 시간이 없었어요.”

이때의 일로 당시 협력중이던 외국 공동개발팀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한국팀측에 한결 호의적으로 기술을 공개하는 등 훨씬 긴밀한 협조가 가능해졌다. 누구랄 것 없이 팀원 전원이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밤샘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4년말부터는 더 이상 큰 행사에서 시동이 꺼지는 일이 사라졌다.

■ 결심, 반드시 끝을 본다

최 박사의 천성적인 공학자 기질도 유명하다. 매사 계획적이고, 데이터 중심이며, 일단 작성한 스케줄과 목표는 반드시 지킨다. 대학원 시절 그가 ‘독자개발’한 영어공부법은 특히 그의 지인들 사이에 유명하다. 친구 관계는 물론, 방송도, 신문도, 책도, 논문도 모두 영어로만 말하거나 보는 등 1년간 철저히 ‘외국 유학생’처럼 살았다. 나중엔 꿈까지 영어버전이었다.

“ 원래 목표가 ‘토익 900점을 넘길때까지’였는데 그 방법 1년만에 목표치를 초과달성했어요.”

최 박사는 요즘도 비슷한 방법으로 일본어와 중국어 독파 중이다. 담배도 ‘점점 흡연자들이 홀대받는 사회분위기가 싫어서’ 금연을 결심, 바로 끊어버렸다. 얼마전엔 모 건강칼럼을 읽고 ‘반식 다이어트’법을 시작, 6개월이 지난 현재 약 10kg을 감량, 꿋꿋이 유지하고 있다.

세계 타이틀을 거머쥔 뒤부턴 ‘올A' 우등반의 대표주자로 최 박사 앞의 숙제가 더욱 산더미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데이터없는 시나리오는 절대 신봉치않는 그의 각오이자 포부이기도 하다.

“ 8년만에 이까지 온 것을 봤을 때, 그리고 현재의 여러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앞으로의 8년 동안에는 현재보다 3배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대로 계속 열심히만 한다면 분명 지금까지 거둔 성과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 최서호는…

1992년 고려대 기계공학과 졸업. 카이스트 대학원 석사(1995년) 및 박사 학위(2000년) 취득. 2000년 현대기아 연구개발본부 입사. '연료전지 차량 개발','연료전지 버스 개발' 등 관련논문 국제학회 발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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