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고액연봉 실태기획재정부 등 고위관료 출신 알짜 '싹쓸이'… 민간전문가는' 드문드문'

행정안전부의 2008년도 공무원 연봉 및 봉급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가 수반이자 최고위직 공무원인 대통령의 올해 연봉은 약 1억6,867만 원이다. 여기에 직급보조비 등 각종 수당을 합치면 실제 대통령이 수령하는 연봉 총액은 약 2억863만 원에 이른다.

이처럼 수당을 포함한 실 수령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국무총리는 약 1억5,296만 원, 부총리와 감사원장은 약 1억1,656만 원, 장관급 공무원은 약 1억1,259만 원을 올해 연봉으로 받게 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대통령은 연봉 2억 원, 장관은 1억 원짜리 공무원인 셈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임명하고 정부 부처가 관리감독을 하는 공공기관의 기관장 중에는 장관은 물론 대통령 연봉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통합공시시스템(일명 ‘알리오 시스템’)을 통해 공시한 2007년도 공공기관 경영현황을 분석한 결과, 302개 공공기관 가운데 기관장 연봉이 2억 원을 넘는 곳이 무려 46곳에 달했다.

특히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을 비롯해 10개 기관장 연봉은 4억~6억 원 선으로 대통령 연봉의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연봉만으로 따지자면 대통령이 전혀 부럽지 않은 셈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알리오 시스템에 공시된 기관장 경력사항을 살펴보면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 주무부처 출신 인사가 산하 기관장으로 옮겨간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반면 민간 출신 전문가가 기관장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이런 점으로 미뤄 정부가 공공기관 고액연봉 문제를 일부러 방관 혹은 묵인해온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정부 부처 고위 관료들에게는 산하 기관 임원 자리가 곧 자신의 퇴임 이후를 보장하는 유력한 안전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神)도 부러워하는 직장’으로 불리기까지 하는 공공기관의 수장 가운데 대통령급 혹은 그 이상의 연봉을 받는 46인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경력을 토대로 고위 관료와 공공기관장 사이에 형성된 암묵적인 ‘함수관계’를 살펴봤다.

지난 4월 중순 임기 도중 사퇴한 산업은행 김창록 총재는 2007년 기관장 연봉 1위를 기록했다. 연봉 액수는 자그마치 6억1,200만 원이다. 그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경제협력국 국장 및 관리관, 국제금융센터 소장,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거친 정통 재무관료 출신이다.

또한 각각 연봉 순위 2위와 3위인 수출입은행 양천식 행장과 기업은행 윤용로 행장도 역시 재무관료 출신 인사다. 양 행장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심의관,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 및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윤 행장은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 과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들 외에도 기관장 연봉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금융공공기관의 수장은 거의 모두 경제관련 부처 관료 출신이었다. 다만 5위에 오른 한국투자공사 홍석주 사장은 옛 조흥은행(신한은행과 합병)에서 행원으로 시작해 행장까지 지낸 정통 은행인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연봉 순위 10위권에는 민간 출신 기관장이 적잖이 포진해 있다. 12위에 오른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은 미국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 및 석좌교수, 미국 과학재단 부총재 등을 역임했을 만큼 저명한 과학자다. 다음 순위인 한국가스공사 이수호 사장은 LG상사 부회장을 지낸 경영자 출신이다. 또 17위인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재희 사장은 유니레버코리아 회장 등 외국계 기업 경영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그러나 민간 출신 공공기관장은 수적으로 확연한 열세를 보인다. 그만큼 ‘공공기관장은 관료 출신의 몫’이라는 공식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산하 공공기관이 많은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 지식경제부(옛 산업자원부), 국토해양부(옛 건설교통부) 등 3개 부처 출신 인사가 기관장으로서도 득세를 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관장 연봉 2억 원이 넘는 46개 공공기관의 상당수는 이들 3개 부처 출신 인사가 장악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로 보이는 기관장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경력을 보면 해당 기관의 전문성과는 별로 관계가 없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한국공항공사 이근표 사장(서울지방경찰청장 역임), 한국조폐공사 이해성 사장(문화방송 부장,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역임) 등이 그런 예다.

이른바 ‘대규모 공공기관 집단’으로 분류되는 한국전력공사(한전)의 기관장 대다수가 2억 원 이상 연봉을 받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전 집단은 한전 본사 등 11개 소속기업으로 이뤄진 국내 최대의 대규모 공공기관 집단 중 하나다. 산업자원부 제2차관 출신의 이원걸 한전 사장(26위)을 필두로 무려 8명의 한전 기관장이 46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한전은 지난 2000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5개의 발전 자회사를 분리, 독립시킨 바 있다.

대통령급 연봉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1억 원대 연봉을 받는 기관장은 수두룩하다. 2007년 기준 공공기관장 평균 연봉은 1억5,000만 원에 달했다. 평균 연봉만으로 본다면 공공기관장 모두가 국무총리급인 셈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장의 호시절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공공기관장 연봉 체계를 손보라고 지시한 데다, 최근 감사원의 강도 높은 공기업 감사가 실시됐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그들만의 돈잔치’를 벌여 왔던 공공기관 수장들의 주머니에도 이제 찬바람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윤현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