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정부가 뭐든 해도 되는 ‘기회’ 아냐”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년(5월 10일)을 맞이했다. 집권 후반기로 들어섰지만 국정 운영 지지도는 70%를 돌파했다. 한국갤럽의 5월 1주(1일~7일) 조사 결과, 국정 운영에 대해 ‘잘한다“는 긍정 평가는 71%인 반면, 잘못한다는 부정 평가는 21%에 불과했다. 역대 대통령 취임 3주년 무렵 지지도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과거 조사한 역대 대통령의 취임 3주년 무렵 지지도는 박근혜 대통령 42%, 이명박 대통령 43%, 노무현 대통령 27%, 김대중 대통령 27%, 김영삼 대통령 41%, 노태우 대통령 12%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70%를 넘은 건 2018년 4월과 9월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6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뒤인 지난 2018년 7월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文 대통령 취임 3주년 연설 “우리가 표준이고 우리가 세계가 됐다”

이례적인 압도적 지지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임기 후반부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며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4대 과제도 제시했다. 첫째, 선도형 경제를 통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이다. “시스템 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 등 3대 신성장 산업을 더욱 강력히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면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투명한 생산기지가 됐다.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다. 한국 기업의 유턴은 물론 해외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고용보험 적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하여 우리의 고용안전망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국민 고용보험시대’의 기초를 놓겠다”면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고,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 나가겠다”고 했다.

셋째,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을 국가프로젝트로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미래 선점투자”라고 규정하면서 5G 인프라 조기 구축과 데이터를 수집, 축적, 활용하는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교육, 유통 등 비대면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도시와 산단, 도로와 교통망, 노후 SOC 등 국가기반시설에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여 스마트화하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 사업도 적극 전개하겠다”고 했다.

넷째,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연대와 협력의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것”이다. “성공적 방역에 기초하여,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중심에 놓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협력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했다. “남과 북도 인간안보에 협력하여 하나의 생명공동체가 되고 평화공동체로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71%’ 지지율을 냉정하게 바라봐야하는 이유

이런 정책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선 정부는 지난 3년간 보여주었던 정책 능력과 성과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총선 압승과 대통령 지지도 고공행진에 도취되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성찰하지 못하면 실패하기 쉽다. 최근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지난 3년간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라기보다는 코로나 사태에 기인한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한국 갤럽 2월 4주때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51%)가 긍정(42%)보다 훨씬 높았다. 그 이후 WHO가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하고 해외에서 한국의 방역 체제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면서 반전이 이뤄졌다. 3월 2주째 긍정(49%)이 부정(45%)을 앞서는 골든크로스가 일어났고 그 이후 상승세가 지속됐다. 한국 갤럽 5월 1주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대처’가 53%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정책과 관련된 응답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잘한다’(6%), ‘최선을 다함/열심히 한다’(4%), ‘정직함/솔직함/투명함’, ‘국민 입장을 생각한다’(이상 3%) 순으로 나타났다. 정책 항목인 ‘복지 확대’는 4%에 불과했다.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 성과가 없는데도 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가 단단한 것이 아니라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전통적인 보수 진영에서 문 대통령 지지에 대한 긍정 평가가 이례적으로 높았다. 가령, 대구·경북에서조차 긍정 대 부정이 53%대 30%였다. 60대 이상에서도 그 비율이 64% 대 26%였다. 보수층에서조차 긍정 46%, 부정 44%로 차이가 없었다.

문 대통령이 총선에서 보수의 대참패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런 조사 결과들이 주는 함의는 앞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성과를 내 놓지 못하면 민심은 빠르게 이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데이비스는 J-커브 이론을 통해 기대와 성취간의 인내할 수 없는 격차가 커지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현재 국민들은 코로나 사태 해결에 대한 엄청난 기대로 문 대통령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인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정부가 단기간에 경제 회복이라는 성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민심 이반이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태종과세종’ 논하기 전에 ‘겸손’ 먼저

최근 더불어 민주당 이광재 당선자는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 같다”며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 “3년 동안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참모로서의 바람”이라고 했다. 강 대변인은 최근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관련해선 “(문 대통령은) 국민을 받들고 섬기는 마음을 갖고 계시고, 각종 비상경제회의 조치에서 나타났듯이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단호함 그러면서도 겸허한 스타일을 국민이 평가하시고 신뢰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3년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면 코로나 방역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국민이 기대했던 성과는 아직 요원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구상과 약속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지 못했고,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지 못했으며, 대통령부터 새로워지지 못했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도 체감할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는 태종과 세종을 논의하기 전에 겸손이 우선이다.

이낙연, 이천 화재 조문 논란 “수양 부족, 부끄럽다”

최근 여권 유력 대권 주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큰 ‘홍역’을 치렀다. 지난 5일 이 전총리가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들과 설전을 벌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면담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기대했던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고, 이 전 총리가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취지로만 답하면서 면담 분위기가 격앙됐다. “어떤 대책을 갖고 왔냐”는 유가족의 질문에 이 전 총리는 “현직에 있지 않다” “국회의원이 아닌 조문객으로 왔다”고 답변했다. 격앙된 유가족이 “장난하느냐”고 항의하자 이 전 총리는 “장난으로 왔겠느냐”고 응수했다. “사람 모아놓고 뭐 하는 거냐”는 항의에는 “제가 모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이 전 총리는 한 유가족이 “그럼 가라”고 하자 “가겠습니다”라고 답하고 나서 분향소를 빠져나갔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 5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
대화가 공개되자 야권은 오만하고 부적절한 언행이라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장제원 통합당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낙연 전 총리는 너무 맞는 말을 너무 논리적으로 틀린 말 하나 없이 했다. 그런데 왜 이리 소름 돋냐. 이것이 문재인 정권의 직전 총리이자 4선 국회의원, 전직 전남지사,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차기 대통령 선호도 1위인 분이 가족을 잃고 울부짖은 유가족과 나눈 대화라니 등골이 오싹하다”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정치의 전형”이라며 “이성만 있고 눈물은 없는 정치의 진수를 본다”고 했다. 그는 “이낙연 전 총리께서 현직 총리 재직 시절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장례식장에서 보인 눈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눈물을 참으며 읽은 기념사,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보인 눈물을 기억한다. 그 눈물들은 현직 총리로서 흘린 눈물이었나 보다. 눈물도 현직과 전직은 다른가 보다”라고 했다.

조수진 미래한국당 대변인은 “즉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니 ‘제2의 기름장어’라는 세간의 지적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민주당이 2016년 12월 26일에 대권 행보에 나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비판했던 논평을 그대로 인용했다. 민생당에서도 “알맹이 없는 조문으로 유가족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것”이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과거 고건, 이회창 전 총리의 경우를 반면교사 삼아 실수를 안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고 전 총리도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이 전 총리도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논란 하루 만에 사과했다. “유가족들의 마음에 저의 아픈 생각이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저의 수양 부족입니다. 그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유가족과 당국 협의가 유가족 뜻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며 “이번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 저와 민주당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번 논란으로 이 전 총리는 얻은 것도 있다. 신중함이 따뜻함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과 더불어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경청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이 전 총리는 “장제원 의원 등의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 좋은 충고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사과하는) 이 위원장의 모습에 대인의 풍모를 느낀다”고 했다.

‘호위무사’ 없는 이낙연…대권도전 전 당권부터 잡아야

그러나 이번 논란으로 이 전 총리에게 한계가 노출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전 총리 주변에 논란을 앞장서 차단하고 야당의 공세를 막아줄 ‘호위무사’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하튼 이 전 총리를 결사적으로 옹위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당내 자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친박’, 문재인 대통령이 ‘친문’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앞세우고 대권 행보를 펼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전 총리가 당내 확고한 지지 세력을 만들기 위해 차기 당권에 도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내에서는 이 전 총리가 대권에 도전하기 전 당 대표직을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당 장악력과 언론 노출도를 높이는 효과가 커 ‘이낙연 대세론’을 형성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임기는 짧지만 압축적으로 국정과제 추진이 가능한 시기여서 나쁘지 않다는 논리도 제시된다.

물론 반대 논리도 존재한다. 사퇴를 전제로 한 전당대회 출마는 되레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전 총리가 2022년 3월 대선에 도전하려면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당대표직을 2021년 3월 이전에는 사퇴해야 한다. 당대표가 되더라도 그 임기는 7개월 남짓이다. 더구나,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내 출혈경쟁이 있을 수 있고, 당 대표가 되더라도 야권의 집요한 견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전 총리가 전당대회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아직까지는 다소 우세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전 총리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김태년 신임 원내대표 ”문재인 정부 성공 위해 모든 힘 쏟을 것”

21대 국회에서 177석 ‘슈퍼 여당’을 이끌 새 원내대표로 친문 당권파인 김태년(4선) 의원이 선출됐다. 김 원내 대표는 7일 민주당 당선자 163명이 전원 참석한 경선에서 과반인 82표를 얻어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 경쟁 상대인 진문(眞文) 전해철 의원(3선)은 72표, 계파색이 옅은 비주류 정성호 의원(4선)은 9표를 얻었다. 김 원내대표는 1년 전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인영 의원에게 밀려 패배했지만 절치부심 끝에 재수에 성공했다.

그는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87년 6월 항쟁 당시 전대협에서 이인영(의장)·우상호(부의장) 전 원내대표와 함께 1기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경기 성남수정에 출마해 당시 39세로 전국 최연소 당선됐다. 이후 18대 총선을 빼고는 이 지역에서 4선(17·19·20·21대)에 성공했다.

김 원내 대표 승리의 원동력은 열정과 정책통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는 2017년 5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추미애·이해찬 당대표 체제에서 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은 정책통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 인수위 격이었던 국정기획자문위에서 부위원장도 지내며 국정운영 100대 과제 입안에 참여했다. 김 원내대표이 2014년에 펴낸 저서 ‘성찰과 혁신’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의 추천사에는 “김태년은 열정이 넘치는 정치인이다. 그 열정만큼이나 좋은 정치에 대한 철학도 확고하다”고 적혀 있다.

김 의원의 1차 과반 득표 당선은 민주당에서 이변으로 평가되고 있다. 친문 그룹은 전해철 의원을 조직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 대표에 도전하는 친문 홍영표 의원과 전해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문그룹의 결집 양상이 오히려 부작용을 냈다는 평가도 있다. 경선의 최대 ‘캐스팅보트’였던 예비 초선(68명)과 호남 지역 당선인(27명)들의 지지가 김 원내대표의 승리 기반이 됐고, 4·15 총선 압승 이후 당·정·청 소통과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 개혁입법 처리에 대한 기대가 당선 요인으로 해석된다.

김 원내대표는 당선 일성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닥친 시기에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다”며 “통합의 리더십으로 당을 하나로 모으고, 당·정·청의 역량을 위기극복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위기 극복 대책은 원내대표가 직접 챙기면서 속도를 낼 것”이라며 “코로나 위기극복과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서 모든 힘을 쏟겠다”고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일하는 국회법’ 추진에 우선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국회가 법안을 상시 심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법안 ‘발목잡기’의 요인으로 지적돼 온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법사위원장은 야당 몫으로 배정돼 여당 ‘견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법사위 영향력 약화는 향후 원 구성에 있어 야당과의 갈등도 예상된다. 더구나, 김 신임 원내대표는 “이익은 공유하고 고통은 분담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이익공유제, 토지공개념 등의 반시장적 이슈를 공론화시키면 여야 갈등은 심화될 수 도 있다.

반대로 원격의료 허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과 창업지원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탄력근로·선택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9년째 표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혁신과 규제 개혁에 필요한 법안들을 21대 국회에서 우선 처리할 경우 코로나 경제 위기 돌파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더불어 민주당은 12일 당 중앙위원회를 열고 비례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시민당)과의 합당을 결의했다. 이날 온라인 투표에 참여한 중앙위원 497명 중 486명(97.7%)이 찬성했다. 양당 최고위가 13일 합동회의를 거쳐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신고를 끝으로 합당 절차가 마무리됐다. 민주당이 비례 연합정당 플랫폼으로 ‘시민을위하여’(시민당의 전신)를 선택하고 당명을 ‘더불어시민당’으로 바꾼 지 60일 만에 시민당은 최종 소멸된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14일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첫 회동을 갖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

통합당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 “국정에 협조할 건 과감하게 협조할 것”

미래통합당도 8일 경선을 통해 ‘영남권’ 주호영((5선·대구 수성갑)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주 의원이 84표 중 59표(70.2%)를 획득해 25표에 그친 권영세 의원(4선·서울 용산)을 물리치고 선출됐다. 영남(56명)과 초선(40명)의 표심이 주 원내대표에게 쏠렸다는 평가가 많다. 주 의원과 조합을 이룬 이종배 의원(3선·충북 충주)은 정책위의장을 맡게 됐다. 주 원내대표는 당내 대표적인 전략·정책통으로 꼽힌다. 판사 출신인 주 의원은 2004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 갑에서 첫 당선됐다.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과 특임장관 등을 지내 원조 친이계 인사로 분류된다. 친박·비박계 갈등이 극심했던 20대 총선(2016년) 때는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했고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는 바른정당으로 탈당하기도 했다. 이후 바른정당 초대 원내대표를 맡았지만 보수 통합을 명분으로 그해 11월 당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이번 총선에선 지역구를 수성 을에서 수성 갑으로 옮겨 현역인 민주당 김부겸 의원을 상대로 승리해 최다선 의원이 됐다.

황교안 전 대표 사퇴 후 공석인 당 대표의 권한을 대행해야 할 주 신임 원내 대표는 당장 거대 여당과의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을 해야 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여부에 대한 결론,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의 합당, 무소속 당선인 복당 문제 등 복잡하고 다양한 과제를 안게 됐다.

주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우리 당은 바닥까지 왔다. 1∼2년 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재집권할 수 없고 그야말로 역사에서 사라지는 정당이 될 것이라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현실적인 의석 차이를 인정하고 국정에 협조할 건 과감하게 협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공약으로 내세운 국회 법사위의 법안 체계·자구 심사 권한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통합당내에는 당헌·당규대로 8월까지만 비대위를 운영한 뒤 전당대회를 치러 차기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이른바 자강론이다. 이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당선자들과 김 내정자 사이에서 어느 정도 기한이면 서로 받아들일지 조율해 보겠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올 8월도, 내년 4월도 아닌 정기국회가 끝나는 올 12월까지 비대위를 운영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 측은 기한을 박아두고 시작하는 건 비대위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면서 김 위원장과 정치적 거래를 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 김태호, 권성동, 윤상현 의원 등 무소속 당선인 복당 문제에 대해서는 “복당 신청을 하면 시·도당과 최고위 승인 과정을 거치게 돼있는 만큼 그 협의체에서 결정을 하되 원칙적으로 빠른 복당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미래한국당과의 통합에 대해선 “(통합이) 가급적 빠르면 좋다고 생각한다. 미래한국당 지도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반면,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는 12일 “4·15 총선에서 국민의 혼란을 가중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며 여야 ‘2+2 회담’ 개최를 촉구했다. 한국당이 독립적 교섭 단체를 구성할 가능성에 대해 “제가 대표로서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고 있다”면서도 “‘무소속 당선자 중 1명을 데려와라’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공동 교섭 단체를 구성하라’ 등 많은 제안이 있어서 귀 기울여 듣고 있다”고 했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6일 “(국민의당)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당과도 손잡아야 하는 게 국회의 작동 원리”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래한국당이 독자노선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에서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14일 합당을 전격 선언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와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는 “합당을 논의하기 위한 수임기구를 구성해 조속하게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수임기구에는 각 당에서 2명씩 참여하기로 했다. 합당 시한에 관해서는 “최대한 빨리 한다는 데만 합의했다”고 말했다. 당 내부에선 더 이상 ‘꼼수’를 부리면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더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와 전화통화한 내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권력기관 개혁 문제는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의 실질적 구현과 남아있는 입법과제의 완수를 함께 이뤄야 할 과제”라며 “열린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 후 양당 합당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21대 총선을 앞두고 기형적으로 생겨난 비례위성 정당들은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통합당은 19~20일 연찬회를 개최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과 한국당과의 합당 문제를 논의할 전망이다. 통합당 당선자 84명 중 71.4%를 차지하는 초·재선 그룹(60명)의 의중이 김종인 비대위 출범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김태년, 주호영 두 신임 원내대표의 첫 숙제는 21대 국회 원(院)구성 협상이다. 김태년 대표는 21대 국회 원 구성을 놓고 “표결로 가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주호영 대표는 “아무리 의석이 많아도 개헌·개원은 여당 혼자서 할 수 없다”며 강도 높은 ‘협상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 민주당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시험대에 오른 민주당…겸손한 권력만이 공존과 협치의 시대 열 수 있어

베스트 셀러 ‘폭정(On Tyranny)’의 저자인 미국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코로나 이후 인류가 경계해야 할 것으로 ‘‘전체주의 확산, 포퓰리스트 득세, 이념적 편 가르기, 사실을 무시한 선전·선동, 정부의 공포 마케팅 등을 제시했다. 그는 “위기 상황인 지금이야말로 공포가 아닌,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 면서 “코로나라는 위기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정부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기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슈퍼 여당인 민주당이 깊이 새겨야 할 조언이다.

이념적 운동장은 아직 진보로 기울어져 있지 않다. 2018년 방송3사 지방선거 출구조사에 따르면 진보 29.2%, 중도 39.8%, 보수 24.9%였다. 2017년 대선 때와 비교해 진보는 1.5% 포인트 상승한 반면, 보수는 2.2% 포인트 하락했다. 중도는 1.4% 포인트 상승하는데 그쳤다. 메트릭스 리서치의 2020년 총선 사후 결과, 진보 27.9%, 중도 37.2%, 보수 25.8%로 2018년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민주당이 승리한 것은 진보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중도가 진보의 손을 들어 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힘으로 안정을 추구하려는 나쁜 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겸손한 권력만이 공존과 협치의 시대를 열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 김형준 명지대 교수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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