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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한국과학재단 송충한 박사
이공계의 실체적 위기 지적한 경제학자

"기초과학의 기피는 국가 존립의 위기"





‘발표 못 하면 아웃 된다(Publish or perish).’ 미국 대학 사회에서 진리로 통하고 있는 명제다. 멋들어지게 운(韻)까지 맞춘 덕에, 마치 햄릿의 저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를 연상케도 한다.

저 말속에는 미국 대학 교수들의 살벌한 생존 원칙이 압축돼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기저를 받쳐주는 무한 경쟁의 논리와 이데올로기가 진리의 전당이라는 아카데미까지 침투했음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대학 교수는 더 이상 보장성 보험이 못 된다는 말이다.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는 학문 자체내의 불안 상황, 즉 세계화와 첨단 과학의 지배력 때문에 학문의 존재론적 패러다임이 변해버린 오늘날에 대한 위기감에 가깝다.

그러나 이공계의 위기는 그것보다 더 실제적이고 급박하다. 더 이상 수강생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로 있던 과가 없어지고, 그때그때 요구에 맞춰 새 과가 생겨 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한 사례는 보기 힘들다. 대전시 유성구 한국 과학 재단의 송충한(47) 박사는 급변한 이공계 현실에 대해 선구적 답을 내놓은 학자다.

과기부 산하 연구 기관으로 년간 3,000여억에 달하는 예산으로 이공계 대학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그 곳의 두뇌격인 프로그램 매니저로 있는 송 박사가 최근 발표한 ‘이공계대학 연구 경쟁력 살리기’(고려대출판부 刊)가 서서히 반향을 얻고 있다.

문과(경제학) 박사이지만, 동시에 이공계 분야와의 긴밀한 협력 덕택에 연구와 실제를 아우르는 그의 독특한 위상 덕택에 빛을 볼 수 있었던 책이다. 나날이 짙어가다 못해 이제는 퇴영의 기미마저 보이는 대덕단지의 단풍 아래서 만난 송 박사는 “일반의 상식과는 반대로, 기초 과학 연구가 대학보다 기업에서 더 많이 이뤄지는 실정”이라며 걱정부터 먼저했다.


새로운 개념의 산학협동 모색 절실



공부는 너무 힘든데, 졸업후의 만족지수는 턱없이 낮아 해마다 이공계 지망생은 감소 추세다. 아예 대놓고 의대, 한의대, 치대로 줄을 대려 애쓰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뻔히 보고서도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현실이다.

이공계를 기피하면 미래는 없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현실 논리에 잠식되고 만다.“대학은 연구만, 정부는 정책만, 기업은 이윤에만 매달려 있는 현실로는 오늘날 급변하는 세계에 대처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대한 대응책이죠.” 급변한 현실에 맞춘, 새로운 개념의 산학 협동이 모색돼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외국이 내놓은 연구 성과를 우리가 곧바로 활용할 수 없다는 데 기초 과학 특유의 문제점이 있다. 곧 바로 현실화되는 것도 아닌 순수 기초 연구에 인적ㆍ물적 자원을 투입하기 보다는 외국의 기초 과학 연구 결과물을 도입해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그럴 법하다. 여기에는 그러나 이공계 특유의 중요한 점이 간과돼 있다.

즉, 외국의 기초 연구 결과물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발표 논문뿐 아니라 그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첨단 장비는 물론 그 장비를 운용해 연구를 해낼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업체보다 대학에서 기초 연구가 더 미비한 한국에서 그 같은 지적이 피부에 와 닿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실제로 2001년의 경우 국가 전체 기초 연구비의 44.8%를 기업체가, 대학은 33.6%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학에서의 이공계 기초 연구가 기업보다 적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금것 국내의 과학 기술 정책은 응용 연구와 개발에 주력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과학 기술은 경제 성장을 뒷침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청이 이제사 폐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문계를 기피하면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 하고, 문화를 기피하면 정서적 불모 상황이 초래되지만, 이공계를 기피하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하다는 말이 최근 한국의 대학가 상공을 불안스럽게 떠돌고 있는 현실은 아예 당연지사처럼 보인다.


정책보다는 시스템에 주목해야



고려대 경제학과 77학번인 송 박사가 이과 분야쪽으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당시로서는 낯선 기술경제학을 평생 연구 주제로 삼으면서부터 였다. 한양대 경제학과 대학원에 들어 간 그의 학위 논문은 ‘외국인 직접 투자의 기술 혁신과 기술 확산 효과’였다. 1987년~89년은 전공 분야를 잠시 접고 여러 대학 강단에서 경제학 전반에 대한 강의를 펼친 시기였다.

그의 논리가 현실과 보조를 함께 하는 것은 잠시 경제 일선에서 시간을 보낸 덕이다. 1989년부터 고려투자자문회사의 애널리스트로 일했던 것은 돈의 실재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비록 경제적 심리나 사회 변동 등 경제외적 요인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업무 특성과는 체질에 맞지 않아 2년을 넘기지 못 했지만, 당시의 경험은 현실을 등한시하지 않는 독특한 학문적 방법론의 밑거름이 됐다.

1991년 재단측의 제안을 받아 현재까지 오게 됐다. 한국과학재단법에 따라 1977년 만들어진 이 재단은 현재 1년에 3,000여억의 예산으로 이공계대학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곳이다. 대학과 경제 일선을 아울러 새로운 경제를 연구하는 기초혁신학회의 창립(1998년) 멤버로 지금껏 운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결정적인 것은 2002년 주어진 1년간의 안식년을 MIT 산하의 기술 정책 평가원인 조지아텍에서 보낸 시간이다.

“적어도 연구자에 관한 한, 미국이란 데는 계속해서 성과를 내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데라는 점을 똑똑히 확인한 거죠.” 7년만에 만난 대학 동창 등이 그 곳 부교수로 있는 사실도 큰 도움이 됐다. 그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한국의 문제는 대학과 현장을 연결하는 시스템 차원의 문제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가 미국 이공계 대학의 작동 시스템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해 말께였다.

“한국이 앞으로 발전하려면 정책보다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문제가 있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본들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대학의 연구와 산업 현장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그 중심이 바로 교수의 연구 행위다.

일견 미국 대학은 그 구성원에게는 삭막한 공간이다. 옥스포드대, 캠브리지대, 파리대, 도쿄대처럼 유수의 세계대학에서 볼 수 있는 여유는 찾기 힘들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를 게을리 않는 선두권 대학의 상황이 이하의 대학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는 경쟁 구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교수들은 놀랍게도 모든 것을 위해 경쟁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비, 공간, 시설, 장비는 물론 심지어는 주차 공간까지도 경쟁 대상이다. 무엇보다 연구비 확보는 그들의 지상 현안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 같은 추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이 일본의 국제경쟁력이 대폭 강화돼 상대적으로 미국 등 구미 국가들이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연구 활동, 특히 기초 분야 연구가 해결책으로 대두된 것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 그 결과는 1990년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1990년대 중반의 미국 경제 호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요체가 바로 ‘대학 자본주의(academic capitalism)’라는 새로운 흐름이다.

1977년 공식화된 이 말은 진리의 탐구를 지고의 가치로 삼는 학계가 볼 때는 불만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연구 기관과 교수들이 외부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의되는 말로서, 교수들이 외부로부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시장(市場)적 행동을 당당한 활동으로 인정하자는 것.

즉, 1980년을 전후해 경쟁의 심화, 공공지출의 제약, 과학 기술 중요성의 증가 등 세 가지 경제ㆍ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대학 사회에도 자연스럽게 풍토 변화를 꾀했다는 지적이다.

미국 이공계 대학의 최대 원칙인 ‘사용을 고려한 기초 연구’는 그 같은 노력의 결과다. 상아탑안에 갇혀 자칫 시대의 변화를 도외시하기 쉬운 대학도 자기 변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실질적 해결책으로 송 박사는 교수들의 연구를 자극ㆍ독려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들었다.


연구발표 없으면 퇴출되는 구조 바람직





“그것은 결국 시스템 구축의 문제지요.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 하면 퇴출시키는(publish or perish) 구조를 정착시키는 겁니다.” 학회가 인정하는 우수 저널에 논문을 실어야 하고, 그것은 연방정부 등지에서 따 내는 연구비로 가시화되는 미국식 대학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 NIH(생명과학연구지원) 프로그램이 수립한 기준이란 창의성, 실제 활용 가능성, 현실 환경과의 적응성 등으로 돼 있다. 환경을 보는 기준은 기계적(하드웨어적) 현실, 연관 분야의 연구자들이 한 데 모여 있는가의 여부가 초점이다. 이상의 조건하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인터넷이란 기술, 즉 새로운 시스템이다. 바로 미국 이공계 대학이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실례다.

첨단을 달리지 못 하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이공계 아카데미에 그 같은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들도 시장의 수요에 따라야 합니다. 대학에 자율권을 대폭 주어야 한다는 거죠.” 이 경우, 지자체나 산업체 등과 긴밀하게 협의를 거쳐 일부 대학과 산업체의 독과점 현상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 한국에서 이른바 산학 협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대학 연구비 중 기업체로부터 충당되는 비중이 미국과 영국에 비해 절반의 수준이라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현실과 괴리된 아카데미즘이란 적어도 이공계 대학에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상식. 젊은이들이 인문계를 기피하면 국가의 기강이 바로 못 서고, 문화예술계를 기피하면 국가의 정서가 메마른다. 요즘 문화예술계는 문화예술자본과 맞물려 호황을 누리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가치 판단의 문제에 가깝다. 그러나 이공계로 오면 그 흐름은 훨씬 급박하다.

바로, 젊은이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핵심이 현장과의 연계를 염두에 둔 교수들의 연구라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15편의 논문을 통해 그 같은 사실을 강조해 온 송 박사는 앞으로도 계속 기초 과학 정책에 관해 주의를 환기시켜 나갈 계획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정책 입안자들이 고려할 때라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3-11-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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