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터프가이야!"서 카리스마 넘치는 청년장군으로 변신혼신다한 작품으로 '미친 놈' 소리 듣고 싶어

[스타탐구] 박용우
"나? 터프가이야!"
<무인시대>서 카리스마 넘치는 청년장군으로 변신
혼신다한 작품으로 '미친 놈' 소리 듣고 싶어


젊은 나이에 정권을 장악해 민초들을 위해 곳간 문을 연 개혁가 경대승. 이 매력적인 역사적 인물, 경대승에게 혁명가의 뜨거운 피를 수혈한 배우 박용우. <무인 시대>에서 청년 장군의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준, 뒤늦게 발견한 보석같은 배우 박용우를 만났다.

유약한 남성에서 용맹한 장군으로 대변신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박용우는 좀 ‘있는’ 집안에서 곱게 자란, 부드럽다 못해 유약한 남자였다. 적당히 잘 생기고 적당히 귀엽고 적당히 신뢰감이 가는 얼굴. 그의 눈은 괴로움에 익숙치 않고, 그의 입은 거친 폭언을 주저하며, 그의 손은 고급 와인 잔이 어울려 보였다. 대중들은 그렇게 박용우를 단정짓고 오해했다.

허나 <무인 시대> 속의 박용우는 그간의 이미지를 단번에 날려버린다. 거뭇한 수염과 부릅뜬 눈매가 신선하고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창을 휘두르는 모습은 섬짓하기까지 하다. 박용우는 배우이며, 배우는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색을 바꾼다는 것을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듯 하다. 오랜 준비 끝에 화려하게 터진 그의 변신에 대중들은 감동하고 놀라고 있다.

데뷔는 MBC 탤런트 공채로 했다. 1994년 공채 24기로, 동기생 정준호, 이성재에 비해서는 뒤늦게 유명세를 탄 셈이다. 주말 연속극 <아파트>를 시작으로 <위험한 사랑> <간이역> <종이학> 등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이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2001년 <선희 진희> 정도다. 손예진과 김규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한 재벌 2세 역으로 비중있는 역할이었다. 영화에도 단역으로 꽤 많이 출연했다. <쉬리>에서 어항을 들고 사무실을 왔다갔다 했던 ‘낙하산’ 신참요원, <동감>에서 김하늘이 짝사랑하던 대학 선배, <무사>에서 잔머리 굴리기에 바빴던 말단 역관이 바로 그다. 최지우와 호흡을 맞췄던 <올가미>에서 마마보이 남편으로 출연했지만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영화만 할 수 있다면 어떤 배역이든 상관없었어요. <쉬리>는 한석규, 송강호 선배가 출연한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영화사에 찾아가 어떤 역이든 달라고 조른 거구요.”

교육자 집안의 깔끔한 젠틀맨

평소 깍듯한 몸가짐이 말해주듯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금실 좋은 교육자 부모 밑에서 귀하게 컸는데 대학 진학문제로 처음 부모 말을 거역했다. 공대를 가길 원하는 부모 뜻과 달리 연극영화과에 지원해 부모 속을 썩이는데 대학 입학 후에도 집 보다는 영화관, 소극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연기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을 때였다. “여자도 아닌데 이상하게 분장실에서 나는 분냄새가 좋더라구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즐겁구요. 한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는 생각에 부족한 점 많지만 배우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아직 솔로다. 같은 탤런트 동기생과 4년간 사귀다 몇 년 전 헤어졌는데 그 뒤로는 일에 치여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고. 요즘처럼 전력을 쏟았던 드라마가 끝날 즈음이나 혼자 사는 아파트 불을 켤 때면 문득문득 외로움이 느껴진다. 이래저래 결혼할 때가 되긴 됐나 보다.

젠틀한 외모와 달리 실제 성격은 본인 표현대로라면 ‘다혈질’이다. 말랑말랑한 듯하지만 고집세고, 온화한 듯 하지만 타협할 줄 모른다. 연기 연습을 하다가도 성에 안 차면 한밤이라도 소리를 질러대 몇 차례 경비 아저씨한테 경고를 받은 상태다.

실생활도 아주 평범하다. 짬이 날 때는 동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거나 대중 목욕탕에 간다. 책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산더미처럼 빌려와 밤새 읽기도 한다. 배우라고 딱히 타인과 다르길 원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보는 시선도 부담스럽다.

박용우식의 연기를 꿈꾼다

<무인 시대>에 경대승 역으로 그가 캐스팅 됐다고 했을 때 열에 아홉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사극 경험이 전무한 그에게 경대승 역은 미스 캐스팅이라는 것. 주위의 우려와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간이 흐를수록 박용우는 경대승이 됐고, 경대승은 새로운 박용우를 창조했다. 예기치 못한 발견. 지금까지 튀지 않고 부드럽게 녹아있던 그는 수면 위로 불쑥 솟아 철駭? “제가 사극이 아니면 어디서 이덕화(이의민 역) 선배와 맞짱을 뜨겠습니까? 서인석, 김갑수 등 훌륭한 선배 연기자들과 함께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박용우는 박용우만의 연기가 아닌, 박용우식의 연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박용우식의 연기란 그가 맡은 캐릭터에 몰두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몰두는 석고상처럼 부드럽게 스미어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그런 것이다. 얕은 연기가 아닌, 내면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숭깊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얘기다.

장르를 바꿔갈 때마다, 자신에게 고착된 이미지를 털어낼 때마다 대중들은 또 다른 박용우의 모습에 때론 감탄하고 때론 실망할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서 기인한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을 터. 열정과 재능의 절묘한 조화로 끊임없이 관객의 뒤통수를 칠 때, 인정받는 배우, 오래가는 배우로 자리잡을 수 있다. “올해는 영화든, 드라마든 좋은 작품에서 혼신을 다해 ‘미친놈’ 소리 꼭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주먹을 꼭 쥔 채 새해 각오를 밝히는 그의 얼굴에서 이미 이글거리는 광인의 눈빛이 읽혀졌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1-28 16:59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