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파는 현대판 '박선달'"궂은 날씨 일수록 돈을 더 버는 업종" 예보 빗나갈까 항상 조마조마

[직업의 세계-25] 기상 컨설턴트 박흥록
날씨를 파는 현대판 '박선달'
"궂은 날씨 일수록 돈을 더 버는 업종" 예보 빗나갈까 항상 조마조마


2월의 예비 신랑 박흥록(33)씨.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던 몇주전, 웨딩 야외촬영 날짜 사흘을 앞두고 갑자기 약속을 취소해 버렸다. 이틀이 지나자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하기 시작했다. 간밤부터 질척거린 날씨는 사흘째인 다음날 종일 비와 눈을 범벅으로 만든 채 서울을 뒤덮었다. 원래대로라면 야외촬영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촬영스태프로부터 ‘날짜를 바꾸길 정말 잘 하셨다’는 감탄의 인사가 찾아 들었다. 물론 박씨가 다 알고 한 일이다.

“다른 일도 아닌 이런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더구나 본인 일에 날씨를 잘못 맞추면 진짜 망신이잖아요(웃음).”

날씨를 파는 기상 컨설턴트. 그게 박씨의 직업이다. 정확히 말하면 날씨 정보를 세상에 판매하는 일, 일면 하느님과의 동업자다. 경력 5년째를 맞는 박씨는 현재 민간기상정보업체인 (주)케이웨더 마케팅 팀장으로 뛰고 있다.

항상 일기 예보는 꿰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그 자신이 예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예보는 전문 예보관이 따로 맡고 있다. 박씨네 회사의 경우, 전직 기상청 예보관 출신 전문가들이 여럿이다. 이들은 첨단 기상관측 장비와 기상청, 미국, 유럽 등지로부터 입수한 기상 데이터를 사용해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를 민첩하게 추적한다. 민간기업에서 파는 날씨정보는 일반적인 기상청 예보와도 다소 차이가 있다. 예보 지역 범위부터가 광역 단위가 아닌 읍, 면, 동 등 세부지역까지 접근한다. 시간적으로도 멀리로는 6개월까지, 짧게는 3시간 간격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보의 정확도는 평균 90%대에 이른다. 봄철에는 93%까지 오른다. 날씨 변덕이 심한 여름철에도 평균 80-90%를 유지한다. 기상청의 평균 정확도보다도 높은 적중률이다. 돈을 받고 파는 상품이다 보니 그만큼 정보의 품질에 대한 책임과 부담감도 클 수 밖에 없다.

▽ 날씨 데이터를 경제현상에 접목

예보는 예보관이 하지만, 이 날씨 데이터를 경제 현장에 심는 것은 기상 컨설턴트들의 몫이다. 이 분야가 흥미거리 신종사업 취급을 받던 때도 이미 지났다. 박씨네 회사의 경우만 해도 이미 유통업체에서부터 건설업, 요식업, 위락시설,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 국내 업종의 약 70~80%에 기상 컨설턴트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왜 날씨가 중요할까?

피자집 주인이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비가 오면 빈대떡, 파전과 같은 음식을 찾는 한국인 특유의 습성 때문에 그와 비슷한 피자도 그래서 비오는 날 많이 팔립니다. 특히 오후 2-4시경에 비가 오면 맑은 날보다 7-8배까지 매상이 오릅니다. 하지만 이것을 미리 예측 못하면 주문이 아무리 폭주해도 재료와 배달인력이 모자라서 손님을 놓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대형 업체의 경우엔 저희로부터 비가 언제쯤 올지, 오면 몇시 쯤에 내릴지 미리 정보를 확인한 뒤 그런 날은 콜센터 직원부터 배달원 인력, 피자 재료까지 미리 충분히 확보해 매출에 대비합니다. 요즘은 기업들의 전반적인 추세가 사전 수요 예측쪽으로 가면서 날씨 정보가 더욱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김밥, 햄버거 등 유통기간이 짧은 일배 식품류가 70~80%를 차지하는 24시간 편의점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현장중 하나다. 모 유통업체에서 조사한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맥주는 날씨가 흐릴 때 가장 잘 팔리고, 소주와 양주는 눈 오는 날 매상이 최고다. 도시락 장사는 눈이 올 때가 최악. 맑은 날 잘 팔릴 것 같은 아이스크림은 의외로 구름이 낀 날 더 히트다. 이때 매출이 40%이상 늘어난다. 빵은 비가 오면 인기지만 눈이 오면 안 팔린다. 날씨는 돈과 시장을 움직이는 또 다른 손이다.

이미 국내 유명 건설회사 상당수도 날씨 정보를 사서 쓰는 시대다. 악천후 때 생기기 쉬운 공사 현장의 안전사고도 대비하고, 특히 공사기간 중 비나 눈이 오면 공기가 지연되는 등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리 날씨 정보를 확인한 뒤 공사 시기를 잡는 예가 많다.

대형 놀이공원도 날씨에 따라 울고 웃는 업종중의 하나. 특히 황금 주말에 화창한 날씨면 대대적으로 몰려들 놀이객들에 미리 대비해 시설내 음식 준비량과 운영 인력을 대폭 늘려 매출을 최대한 높인다. 반대로 주말의 비 소식은 최악의 상황. 이때는 이때대로 기본 비용에서라도 손실 폭을 줄이기 위해 음식과 아르바이트생 인력 등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날씨를 활용한 유비무환이다.

“이처럼 해당기업이나 상황의 특성에 맞추어 날씨 정보를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찾고 제시하는 것부터가 저희들이 하는 일이지요. 기업측에서 먼저 저희들에게 의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희 쪽에서 먼저 찾아가 제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박씨가 직접 치른 사례 한가지. 백화점마다 연례적으로 펼치는 여름 또는 겨울 세일행사는 뭣보다 그 시작 날짜를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판매의 성패가 갈린다. 추위나 더위가 물러가는 시점보다 너무 앞서도, 너무 늦어도 손실이 뒤따른다. 특히 시작 첫날 비나 눈이 와도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 행사가 수포로 돌아간다.

▽ 경영학도의 변신

2002년 1월 겨울 세일 중 폭설로 타격을 입은 모 백화점이 있었다. 그 해 여름이 되자 이 백화점은 된통 날씨에 혼이 난 때문인지 여름세일 기간을 선정해 달라며 이례적으로 박씨팀에게 도움을 청했다. 기상 자료를 분석한 박씨의 조언으로 이 백화점의 그 해 여름 정기세일 행사는 타 백화점보다 닷새나 앞선 날짜에 막을 올리게 됐다. 이 과감한 도박은 전년도보다 약 23%가 높은 매출을 기록한 뒤 끝이 났다. 날씨 마케팅의 승리였다.

모 대형유통업체도 날씨 전략의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다. 전국에 1,000여개의 24시간 편의점 체인망을 거느린 이 업체는 이미 3년 전 15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들여 첨단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날씨 정보를 사용했다. 매일 아침 8시 반쯤이면 일주일치 날씨 데이터가 각 점포로 전송된다. 그것도 해당 편의점마다 각각 그 위치에 맞춰진 상세 정보들이다. 이 내용에 따라 점포의 물품 발주량을 조정했다. 예를 들어, 비 예보가 있으면 도시락, 김밥, 아이스크림 등의 발주량은 줄이고 우산과 습기제거제는 평소보다 늘려서 들여놓은 뒤 진열대 전면에 잘 보이게 배치하는 식이다. 도입 후 1년 만에 매출이 20%이상 올라 있었다. 기상 컨설턴트들의 보람이기도 하다.

“저희가 제공한 정보를 활용해 큰 도움이 됐다는 연락을 기업으로부터 받을 때 가장 흐뭇합니다.” 박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공부한, 사실상 날씨와는 무관한 경영학도 출신이다. 졸업 후 얻은 첫 직장도 한 보험사였다. 법인영업팀에서 근무하던 당시 보험업계에서는 이벤트성 보험상품이 한창 붐을 타고 있었다. 그중 하나인 날씨 보험 관계로 현재의 회사와 접촉하게 된 뒤 박씨는 차츰 이 새로운 분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1년 6개월만인 99년 전직, 날씨 컨설턴트로 변신했다.

입사 당시만해도 단순 기상정보 서비스 수준에 머무를 때였다. 요즘처럼 다양하고도 섬세한 서비스 수준은 시간과 더불어 장비와 인력, 마케팅 전략 등이 빠르게 발전한 결과다. 한쪽에선 날씨와 기업을 접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하며 그 제안서를 들고 기업들의 문을 두드리는 한편, 기상학 관련 전문서 적을 뒤지며 관련지식도 다져나갔다. 특히 초창기엔 행여 제공한 기상 예보가 빗나갈세라, 날마다 마음을 졸이며 당일 날씨를 확인하곤 했다.

“요즘도 기상특보가 발령될 땐 혹시라도 전산시스템 오류 등으로 특보를 놓친 곳이 있지나 않을까, 거래처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입니다.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담담해진 편이지만, 그래도 항상 긴장이 됩니다.” 여름철 수해나 태풍, 겨울의 폭설이라도 일어나면 이들에게도 비상이다. 예보관들은 아예 24시간 비상근무, 덩달아 폭주하는 문의전화로 컨설턴트도 함께 바빠진다. 갑자기 날씨가 포근해졌던 지난해 12월 초순에도 기업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특히 난방기구나 에어컨 제조업체, 에너지 관련 업체 등 날씨와 직결된 분야의 기업인들에게는 잠깐의 이상 변동도 민감한 문제로 다가간다. 최악의 경우, 기상의 장기적 향방에 따라 특정 업종이 죽고 사는 문제까지 걸려 있다. 날씨가 바뀔 때마다 궁금증이 폭발하기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저희가 이동통신업체들과 연계해 제공하는 유료 모바일 서비스의 경우에도 비나 눈이 오는 날은 하루 접속자 수가 약 40만명까지 올라갑니다. 지난 설 연휴 초반 눈이 내렸을 때 모바일 서비웰옇택蓚琉?평소의 3배였어요. 날씨가 나쁠수록 돈을 더 버는 업종은 아마 저희 업종밖에 없을 겁니다.(웃음)”

▽ 홈런예보 등 아이디어 상품으로 화제

한때 이들의 ‘홈런 예보’가 야구팬들의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프로야구 홈런타자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과 날씨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재미있는 스포츠 예보 상품으로 내놓았을 때다. 분석에 따르면 바람이 불면 이승엽의 홈런이 터지기 쉽고, 잠잠한 날엔 심정수의 홈런이 강하다는 것. 예보 내용도 ‘현재 기온이 26도, 습도 60%, 풍속 2.5m/S로 예상되니 이승엽의 홈런 가능성은 85%’식이다. 기상 컨설턴트들의 아이디어가 만든 화제작이었다.

날씨 때문에 맺어지?인연도 다양하다. 영화산업도 촬영 중 날씨에 따라 엑스트라와 세트 등 제작비가 좌우되는 분야. 영화감독들도 숱하게 만났다. 영화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영화 내용 중 주인공 꼬마가 마루에서 낮잠을 자다가 빗소리에 일어나 쭈볏쭈볏 빨래를 걷었다가 다시 널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인공 비가 아닌 ‘진짜 비’다. 이 비에 박씨의 땀도 담겨 있다. 자연 그대로를 고집한 감독의 의뢰를 받아 박씨팀이 3개월간 날씨 정보를 제공하며 함께 기다린 끝에 만난 단비였다.

현재 교통방송과 강원민방에서 ‘박흥록의 날씨이야기’등을 전하는 고정 출연자이기도 한 박씨. 본업 덕분에 야외촬영은 무사히 해결했지만 몇주뒤에 있을 자신의 결혼식 날씨도 역시 ‘쾌청’일까? “오늘 아침에도 기상자료를 확인해 봤는데, 그날 눈이 온 뒤 갠답니다. 정확한 건 사흘전쯤 가봐야 확실해 질 것 같아요.”

사족. 내게도 새 소망이 추가됐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 적었으면 좋겠다. 박씨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은 가판대의 신문이나 주간지 등이 맑은 날보다 3분의 1밖에 안 팔리는 거 아세요? 그런 날은 가방에다 우산까지 들다 보니 걸리적거린다고 안 사보는 거지요.” 독자는 나의 힘. 날씨는 우리의 힘.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2-04 14:11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