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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26] 신용조사원 윤담
신용의 날개로 기업을 살린다
착실하고 가난한 기업인에게는 신용이 최후의 보루, 실체와의 숨바꼭질도







아무리 설명해줘도 친구들은 돌아서면 ‘신용협동조합’이라고들 생각했다. 부친은 심지어 ‘보증을 서다니 웬 말’이냐며 당장 그만두라고 호통이셨다. 14년 전, 이 직장에 갓 입사한 뒤 윤담(41)씨가 치른 해프닝이다.

“저만 아니라 동료들도 똑같았답니다. 그때만 해도 신용보증기금이 어떤 곳인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때였지요.”


신용보증기금 영업부 차장대우 윤씨. 보증을 서기는 서지만 직접 서는 게 아니다. 그는 신용조사원이다. 은행대출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담보’인 신용을 평가하고 보증해 준다. 착실하지만 가난한 기업에게는 최후의 보루같은 곳이다. 더 이상 저당잡힐 것도, 기댈 곳도 없는 사업가들에게 마지막 돌파구다. 문의전화까지 합치면 한 해 상담건수 약 3천건. 그 많은 신청자중 옥석을 가려 돕는다. 그것이 신용조사원들의 업무다. 그중에서도 윤씨는 현장을 뛰는 현역 중 최고참이다.

윤씨가 처리하는 건수만 한달 평균 15건 정도다. 20건만 돼도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가며 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니고도 자정 가까이 퇴근하는 수준이다. 적게는 1,000만원에서부터 최고 100억원까지 저마다 걸려 있다. 기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손바닥만한 옷가게 주인에서부터 중소기업 대표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든다. 신용거래와 서류상 하자가 없는 한, 신청자 대부분이 보증을 받는다. 성사율이 높다. 과거보다 문턱이 많이 낮춰진 덕분이다. 소유한 집이나 부동산이 최근 1년내 압류나 가압류되었거나 금융거래중 최근 3개월내 연체 사실이 있는 경우, 세금이 체납된 경우 등 신용불량자는 애초부터 실격이다.

△ 신청자 대출서류로 업무 개시



업무는 신청자로부터 정식으로 서류를 제출받으면서부터 본격 시작된다. 꼼꼼한 서류심사에 이어 현장 실사를 거친 뒤 내부결재를 통과하고 해당 기업의 연대보증까지 받으면 끝이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으면 2,3일, 길어도 10일 이내다. 단, 3월처럼 신청자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시기나 조사과정에서 애매한 의심점이 잡힐 경우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재무재표 자료라도 번듯하게 갖추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신청자중엔 회계자료란 말조차 머쓱한 구멍가게 수준의 상인도 있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거나 세무사에게 모두 일임해 던져둔 탓에 본인의 회사면서도 회계사정에 깜깜한 업주도 적지 않다.

서류심사는 서류심사대로 만만치 않지만, 이를 무사히 통과하더라도 못지않게 까탈스런 현장 실사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서류에 기록된 내용과 회사의 실체가 일치하는가, 조사원과 신청인 사이에 팽팽한 진실게임이 벌어진다. 인력 여건상, 현장을 조사하는 시간은 대개 2시간 정도다. 이 짧은 시간에 해당기업의 대표와 면담을 나누거나 직원, 공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해당기업의 실체를 최대한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조사하는 입장에서는 행여 있을지 모를 ‘위험 요소’를 찾기 위해 촉각을 세우고, 조사받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후한 점수를 받기 위해 약점을 마냥 감추려 드는 본능적인 숨바꼭질이 펼쳐진다. 개중엔 이 실사에서조차 반칙을 시도하는 간 큰 양심불량자들도 있다.

“자신의 회사 대신 친구의 공장을 잠시 빌려 마치 자기 회사인 것처럼 속여 실사를 받은 사람도 있어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차라리 괜찮을 것을, 초라한 자기 회사를 보여주면 보증을 해주지 않을까봐 지레 걱정해서 통째로 속였다가 결국 사실이 발각돼 보증을 받지 못했죠.”

더 흔한 사례는 회사 바꿔치기보다 더 적발하기 힘든, 사장 바꿔치기다. 즉, 명목상 대표자 뒤에 알고보면 실제 대표자가 따로 숨어 있다. 서류상 사장은 ‘얼굴 마담’일 뿐, 실제로 회사를 움직이는 진짜 소유주는 신용불량자인 경우다. 베테랑의 노하우가 빛나는 것도 이럴 때다. 실제 대표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의 탐문 조사는 물론, 사장과의 면담 때도 여러 방법으로 ‘허’를 찔러본다. 위의 행각을 밝혀낸 것도 사장이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주변 여직원에게 사장의 이름을 묻자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고 의구심을 품고 풀어낸 문제였다. 자금 관계에 대해 조금만 자세하게 물으면 어물쩍거리는 어떤 사장도 있었다. 의심을 내색하지 않은 채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 회사 전표를 확인하던 중 파란색 펜으로 곳곳에 그어진 체크 표시를 발견, 이를 단서로 추적한 끝에 며칠 뒤 숨어있던 실권자를 찾아낸 탐정소설같은 일도 있다.

△ 조사원 10년이면 관상장이 다 돼



‘신용조사원 10년만 하면 관상장이 다 된다’는 말은 이들의 오래된 농담 중 하나다. 업무 관계로 만나는 사람 수만 매일 1,2명, 1년이면 약 600~700명에 이른다. 10년이면 수천명을 헤아린다. 워낙 오래 부대끼다 보니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도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바로 감이 잡힌다.

가장 괴로운 것은 ‘보증 불가’를 통보해야 될 때다. 탈락자는 극히 소수지만 말을 꺼낼 때마다 사뭇 곤혹스럽다. 상대의 반응도 여러 가지다. 조용히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는 반면, 막무가내로 노발대발 화를 내거나 여성의 경우 울음을 터뜨려 조사원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보증을 해 줄 때까지 안 가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나온다. ‘한번만 살려달라’며 사정하는 이들도 있고, ‘고위층과 잘 안다’며 협박하는 사람도 있다. 한 70대 어르신은 ‘죄송하지만, 안되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흥분해 쓰러져 황급히 119구조대를 부른 일도 있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일터다.

“세상의 축소판 같은 곳입니다. 이 안에서 별별 사건이 다 일어납니다. 사람만 해도 아주 순진한 분에서부터 아주 악질같은 사람까지 다양하게 만납니다.”

윤씨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 신용보증기금에 입사하기 전 모 공기업에서 1년여 근무한 경력이 있다. 새로운 길을 찾아 모 금융기관 공채에 응시해 합격한 상황에서 우연히 이곳의 시험 공고를 보고 호기심 삼아 지원, 합격후 연수를 받으면서 매료돼 마음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초창기엔 회계 관련 지식을 익히느라 적잖이 고생했다. 혼자 뛰어야 하는 요즘과는 달리 윤씨의 입사 당시만해도 신참은 선임과 2인1조로 편성돼 몇 년간 도제식으로 업무를 익혔다. 2년차에 들던 해,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대인 관계에서 빚어지는 스트레스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걸핏하면 사무실에 들어와 주저앉아 우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하루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현장 실사 때의 신경전과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자신이 상대해야 할 사람은 삼촌이나 아버지뻘쯤 되는 40~50대 이상의 노련한 기업인들. 세상 물정에 서툰 20대 신참들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신참들은 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조사를 당하고 온다’는 농담은 요즘에도 변함없는 진리다. 순진한 신참들이 나가면 조사중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 질문을 던지기는커녕 상대로부터 ‘역 취조’만 당하다 돌아오기 일쑤였다.

입사 첫 해에 한 스티로폼 제조업체에서 첫 보증사고를 경험했다. 사실상 신용조사원의 진짜 불안은 조사과정이 아니라 보증이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신용조사원의 검증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에서 향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고의 경중에 따라 담당자도 문책감이다. 선임조사원이 사실상 ‘합격’ 판정을 내리고 있던 모 스티로폼 회사의 현장 실사를 그에게 맡겼다. 스티로폼 값이 얼마나 저렴한지도 모른 채 그저 외형만 보고 선배의 의견대로 호의적인 결론을 보탠 윤씨. 보증 3개월만에 그 회사의 부도소식을 만났다. 사고를 확인한 순간 머리가 띵~했다. 부랴부랴 회사를 찾았지만 이미 사장은 도주한 상태. 월급을 받지못한 직원들만 모여 대책회의를 하며 현장을 찾은 윤씨에게 애꿎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처음엔 문책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부터 자책감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상황 앞에 냉정해지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실제로 아무리 조사가 철저해도 통계적으로 5%는 사후 사고가 터집니다. 시장 상황이나 경영자?질병이나 사고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합니다. 그래도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맨먼저 드는 생각이 ‘혹시 내가 이 회사를 잘못 판단했던 부분은 없었을까’ 제 자신부터 돌아보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사고라 해도 어떻게든 그 발생률만이라도 좀 더 낮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4년 전 그를 거쳐 자금을 수혈받은 한 컴퓨터 제조업체는 지금도 남다른 흐뭇함을 선사한다. 신청 당시만해도 연 매출액 몇십억원대에 불과했던 이 신생 기업은 현재 해마다 수백억원대의 수익을 올리며 동종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견실기업이 되어 있다.

△ 어려운 사람 돕는 자긍심 커

국졸 학력이지만 남부럽지 않은 튼실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던 한 신문광고 대행업체 사장은 금융거래상 약간의 하자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자격임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4천만원밖에 지원받지 못해 이를 맡았던 윤씨에게 내내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달고 살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장이 한달만에 음료수를 사들고 윤씨를 찾았다. “그 4천만원도 고마웠다. 그 돈이 씨앗이 되어 우리 회사가 이렇게 살아났다”며 연신 고뗄置?윤씨를 더욱 뭉클하게 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윤씨는 무엇보다 자긍심과 고마움을 느낀다.

외형적으로도 손색없는 인기 직업이다.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이 약 3천만원. 불황기일수록 오히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 특성상 원치 않는 명퇴, 조퇴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윤씨에겐 ‘불치의 병’이 하나 있다. 오랜 신용조사원 생활 끝에 무엇이든 꼬치꼬치 캐물어대는 습관이 붙었다. 집에서도 낙인이 찍혔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이 ‘오늘 달리기에서 꼴찌했다’고 할 때에도 여늬 아버지라면 한마디 정도로 끝날 대화를 윤씨는 ‘네 앞에 달린 아이랑 어느 정도 간격이었냐’부터 시작해 너무 ‘자상’해서 오히려 기피대상이다. 시달릴대로 시달린 아내는 윤씨의 질문이 2,3단계만 이르러도 숫제 못 들은 척 한다.

윤씨의 행복은 언제나 아침에 좌우된다. 출근하자마자 금융 관련 전산망부터 두드린다. 그날의 불량채무자 명단이 주르르 화면에 쏟아진다. 아는 이름이 보이지 않아야 비로소 하루가 편안하다. 매일마다 이 불안과 평화의 갈림길을 왕복하며 그의 달력이 넘어간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4-02-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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