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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탐구] 강남길
살가운 인간미, 그 모습 그대로…
4년만에 방송 복귀 "아픔 겪은 뒤 몸도 마음도 성숙"


평범한 소시민의 자화상 강남길. 배우가 내뿜는 판타지나 신비감과는 거리가 먼 평범함 그 자체의 인물이지만 그처럼 대한민국 평균 남성 모델을 제대로 연기하는 배우도 드물다.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치던 2000년, 가정사 문제로 자녀들과 훌쩍 영국으로 떠난 후 4년 만에 방송에 복귀한 그는 예전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 푸근한 ‘봉수 아저씨’로 컴백





“글쎄, 짬뽕하고 아구찜이 제일 먹고 싶더라구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토록 먹고 싶던 매운 음식을 찾아 먹었다는 강남길. 약간은 수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문을 여는 그는 우리가 기억하는 강남길의 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라곤 흐르는 세월이 선물한 얼굴의 주름 정도. 아홉 살 때 영화 <수학여행>으로 데뷔한 후 군 제대와 동시에 드라마 <사랑합시다>로 성인 연기를 시작했으니 연기 경력만도 30년이 넘는다.

“모처럼 방송사를 찾았는데 마치 졸업한 학교 교정을 밟는 기분이었어요. 화기애애한 제작진들 분위기도 그대로고, 주변 동료들이 따뜻하게 반겨 주시니 절로 힘이 나네요.” 방송사 지인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안부인사를 전하는 바지런함을 보이기도 한 그의 복귀작은 MBC 일요 아침 드라마 <물꽃마을 사람들>.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 돼 사업에 손을 대지만 그것마저 실패한 후 낙향해 조그마한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세영이라는 캐릭터다. 도무지 암팡진 데가 없어 어른들의 경쟁사회에서는 매번 지지만 동네 아이들에게는 인기만점의 아저씨로 오랜 파트너 임예진과 호흡을 맞춘다. 적지 않은 공백기로 인해 연기자로서의 ‘감’이 떨어질 만도 한데 첫 촬영에서부터 OK 사인을 척척 받아내 아직 ‘건재함’을 과시했다고 제작진들은 입을 모은다. “드라마에서 언제 제가 누구 이기는 것 보셨어요? 다 억눌리고 지친 현대인들이죠. 단순히 웃기기만 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쉬는 동안 몸도 마음도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좋은 연기 보여드려야죠.”

그 동안 그가 맡은 캐릭터들은 대부분 중심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약자층이었다. 대학까지 나왔지만 온갖 이웃 일에 다 참견하는 <한지붕 세가족>의 백수 청년 봉수, 회사에서 밀려나는 상사를 끝까지 보필하는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과장, 만년 대리로 아내의 바가지만 듣지만 죽은 친구의 부모를 남몰래 챙기는 <베스트극장- 달수 시리즈>의 달수 등 사회의 ‘부조리’라는 덫에 걸려 항상 피해를 보지만 인간미만큼은 넘쳐나는 정감있는 인물들이다.



데뷔 후 숱하게 사위, 남편, 아버지 역할을 해왔지만 근엄한 가부장적 사회의 주인이 아닌 권위를 상실한 몰락한 가부장이었다. 오지명, 노주현, 박영규처럼 노골적으로 희화화된 코믹 캐릭터가 아니면서도 한국 남성의 남성적 아우라를 벗어 던진 채 살갑게 다가왔다. “실제 7남매의 서민적인 가정에서 자라서인지 평범한 소시민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역할이에요. 혹 제가 오버하는 부분은 없는지 요즘은 그 수위를 조절하는데 많은 신경을 씁니다.” 회사에서 퇴출 당한 후 소주 한잔으로 시름을 털어내고 집에서는 마누라 눈치 보기 바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인물이지만 시청자들은 그를 보며 좋아하고 그가 던지는 씁쓸한 웃음에 가슴 아파한다. 그는 바로 그런 힘이 있다. 브라운관 속의 그는 바로 ‘우리’이자 ‘나’인 것이다.

- “멋진 아버지 위해 노력할 것”

얼마 전 방영된 <베스트 극장- 겨울 하느님께> 편도 강남길 연기의 한 축을 그대로 보여줬다. 딸과 부인을 유학 보낸 후 1년의 300일은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기러기 아빠로 출연했는데 실제의 강남길과도 유사한 부분이 많아 보는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오는 4월께는 또 한편의 <달수 시리즈>도 선보일 계획이다. 엄마들이 노래방 도우미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부담해야하는 사교육비 문제를 꼬집는 극으로 4년 만에 돌아온 우리의 달수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많은 기대를 모은다. “은행 대리인 달수는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에요. ‘우이~씨’하고 화를 내보기도 하지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다만 가족과 함께 힘들지만 다독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죠.” 힘은 없지만 사회 정의가 뭔지를 아는 달수는 이제 강남길의 ‘연기 테마’이자 소시민의 ‘상징’이 됐다.



실제 그의 생활도 연기 이미熾?별반 차이가 없다. 운동으로 땀 흘린 뒤에 마시는 맥주 한잔에 감격해 하고 자녀들과 외식할 때가 가장 즐겁다. 털털한 성격 뒤에는 꼼꼼하고 내성적인 면도 있다. 몇 해 전엔 쉽게 읽을 수 있는 컴퓨터 책을 내놓더니 이번엔 영국 초행자를 위한 현지생활 안내서 ‘강남길의 오 마이 고드(god)’란 책을 펴냈다. 4년간의 그의 영국 생활 체험기가 재미난 사진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소개돼 있다.

“내면적인 아픔을 겪은 만큼 더욱 깊어진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에 두고 온 아이들이 걱정스럽기만 한데 이 녀석들이 매일 전화를 걸며 오히려 지 아비를 걱정하고 있네요. 아이들에게 멋진 아버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할 생각입니다.”평범한 배역을 평범하게 연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연을 빛내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조연으로 제 자리를 빛내고 있는 강남길. 특유의 순박한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반갑게 돌아온 그로 인해 TV 브라운관은 모처럼 사람냄새가 가득 할 것 같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


입력시간 : 2004-02-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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