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거품 곧 걷힐 것"몰아붓기식 관행은 문화적 균질화의 징표

[한국 초대석] 영화평론가 김영진
"한국영화 거품 곧 걷힐 것"
몰아붓기식 관행은 문화적 균질화의 징표


“‘실미도’를 강우석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추켜 세우는 일각의 평가가 머쓱하다. ‘실미도’는 반 잔밖에 차지 않은 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그의 영화를 통해 더 취하고 싶은 관객이 많아질 것이다. 그가 술 반 잔이 대중이 원하는 양이라고 계속 우기면 우리는 채워지지 않은 남은 빈 잔을 더 아쉬워 하게 된다.”

- 획일적 소비양태 등 한국 특유의 현상

영화평론가 김영진(40)은 1,000만 관객 돌파라는 꿈의 기록을 이룩해 낸 한국 영화의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 그렇듯 의문 부호를 찍어 두고 있다. “한국 영화가 꿈의 숫자를 넘어 섰다”며 모두가 감격에 겨워 마지 않는 대세가 그는 자못 의심스럽다. 우르르 몰려 가기 좋아 하는 한국 사회 특유의 병폐가 다시 한 번, 그러나 이번에는 영화라는 문화적 계기를 통해 노정됐다는 것이다.

먼저, “지금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카피(복사본)는 무려 520개”라며 여타 영화의 경우 그것이 200여개에 불과한 현실을 상기시켰다. ‘쉬리’ 이후 대작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 그 같은 몰아 붓기식의 제작ㆍ배급 관행이 당연지사인 것처럼 됐다는 지적이다. 그는 “자국의 영화가 미국 영화보다 인기 있는 곳은 한국과 인도뿐”이라며 “이것은 문화적 균질화(均質化)의 징표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한쪽으로 와르르 쏠리는 한국 특유의 현상이 영화라는 계기를 통해 다시 한 번 표출됐다는 것이다.

어느 평론가가 ‘말죽거리 잔혹사’를 두고 말했듯,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4명 수컷들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56명 쭉정이들의 리얼리티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영화는 삶의 진실에 대해 대단한 폭력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객석은 이소룡의 액션과 진추하의 낭만이 권상우와 한가인이라는 매개에 의해 현실화돼 나타난 표상에 매료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 ‘말죽거리…’에 국한되는 사실이랴. 김씨는 그 같은 획일적 소비 양태에 대해 딴죽을 걸고자 하는 것이다.

“신작이 일주일에 일곱편꼴로 개봉되고, 인기가 없다 싶으면 단 하루만에 내려 와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렇듯 폐막률(영화판의 용어로는 ‘드롭(drop)률’)이 높은 현실에서 ‘실미도’가 이룬 흥행 성적은 하나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태극기…’는 ‘친구’와 비슷한 수준인 800만명 정도에서 흥행을 멈출 것이라는 관측도 따른다. “2주만에 500백만명을 동원한 ‘실미도’의 성과는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제 나라의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인기 높은 곳은 한국과 인도뿐이다. 인도가 영화에 기울인 엄청난 노력은 이른바 ‘발리우드’라는 관용어로 충분히 대변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 같은 몰아붓기가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최근 ‘실미도’와 관련, 기자들로부터 스무통에 가까운 전화를 받았어요. 똑 같은 질문에 비슷한 답변, 짜증날 정도죠.” 그 말에는 그토록 승자에 대한 기록에만 열을 올리는 우리 언론의 관행에 대한 회의가 잔뜩 묻어 난다. 어찌 언론뿐이랴.

가까운 예로, 일본만 해도 유능한 감독의 경우는 단관(單館) 개봉 등의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길이 열려 있고, 또 그렇게 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예를 든다. “현재의 거품 같은 상황은 곧 걷힐 겁니다. 우리 관객이 다양성에 대한 요구도 크지만, 싫증을 잘 느끼거든요.” 그러나 지금, 한국 영화는 한쪽으로 몰아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왜 그런가?

“‘실미도’ 같은 경우, 따지고 보면 엉성하지만, 그 같은 결함이 결국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 때문에 용인된다고 볼 수 있어요. 화젯거리가 만발했던 ‘태극기…’의 전투 장면 같은 것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여타 객관적 자료에 비하면 별 것 아니죠. 정확히 말하자면 장동건과 원빈을 보는 재미라고나 할까요.” ‘태극기…’의 경우, 첫 전투 장면인 낙동강 전투빼고는 평양 시가전 등 화제를 모은 장면들도 모두 그 둘의 시선으로 해석된다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그것은 한국 영화가 지역성(locality)을 살리는 데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특성이다. ‘실미도’와 ‘태극기…’는 이 시대 한국 영화의 장밋빛 미래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이유이다.

- 거장들에 의해 이어져온 한국 영화사

“우선 주제의 측면에서, 두 영화 모두 과거라면 나오기 힘들었겠죠.” 그렇다면 그토록 제약이 많았던 지난 시절, 痢??저주 받은 영화사(史)는 어떻게 존속될 수 있었나? “한국적 영화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갖고 그것을 세련시켜 나간 거장들 덕택이죠.” 1980년대의 이장호ㆍ임권택ㆍ배창호, 90년대의 박광수ㆍ장선우, 90년대 후반의 홍상수ㆍ허진호ㆍ김기덕 등을 그는 꼽았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감독은 임권택. 1960년대 황금기를 구가하다 술적 탐색이 중도 하차했던 신상옥ㆍ유현목ㆍ김기영 등과는 다른 류의 행보를 보여 한국 영화의 실체적 가능성으로 엄존해 있다는 것. 초기에는 1970년대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생계를 위해” 오락물 또는 반공 영화만 찍다, 좌익의 후예라는 생득적 조건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을 하고 세상과 진지하게 대면해 내는 힘, 한계적 상황을 돌파해 내는 힘으로 한국 영화를 주도해 오고 있다는 것. “한국 영화의 일반적 흐름과는 무관한, ‘거장적 독립성’을 획득한 분이죠. 여타 감독들은 안착하거나 자멸했던 데 비해, 한국적 영상미를 고집스레 추구한 까닥이죠. ‘만다라’ 이후 한국적 영상미를 꾸준히 천착해 온 결과죠.” 문제는 그 이후다.

“1990년대 이후 박광수ㆍ장선우 감독이 찬란하게 내비쳤던 한국 영화의 가능성이 어떻게 이어져 오고 있나 하는 거죠.” 박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ㆍ‘베를린 리포트’, 장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ㆍ‘우묵배미의 사랑’ 등 역작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재수의 난’(박광수)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장선우)이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자본가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그들은 쇠락의 길로 접어 들고 만다.

이후 한국 영화에 남겨진 현실적 행로는 이른바 컨셉(concept) 영화. 스타ㆍ장르ㆍ관객 선호도 등 흥행 요소들을 고려해 영화를 ‘상품으로서 생산’해 내는, 할리우드식 영화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1990년대 이후 젊은 제작자들이 충무로를 점령하면서 새로이 전개된 양상이다. 심재명(명필름), 신철(신씨네), 강우석(시네마서비스), 차승재(사이더스) 등 40대 초ㆍ중반으로 구성된 그들은 철저한 계산을 거친 후에야 실제 작업에 들어 갔다.

“예를 들어 ‘목포는 항구다’를 보세요. 애초에는 진지한 느와르(noir) 영화로 기획됐죠.” 그러나 당시 ‘조폭 마누라’ 등 이른바 조폭 영화가 뜨자, 더 웃길 것을 요구하는 투자사의 주문에 따라 시나리오가 180도 틀어져 코미디가 돼 버렸다는 것. “당시 마침, 그 영화의 제작진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죽을 지경이라더군요. 원래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였는데, 자꾸 뒤바뀌는 통에 그렇게 되고만거죠.”

- 핫머니 아니면 헤지펀드

지금 한국 영화는 이를 테면 핫 머니 아니면, 헤지 펀드다. “우리 영화의 흐름은 6개월만에 바뀐다는 게 통설이예요.”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 보이’ 등이 누더기 같은 조폭 영화라는 통념을 엎고 성공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실미도’나 ‘태극기…’가 연타석 홈런을 치자 일거에 대작(大作) 영화라는 흐름으로 돌아섰다는 것. 이것은 이른바 충무로 특유의 역동성아면서 동시에 비(非)안정성이라는 지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영화계만큼 전면적으로 세대 교체 된 데가 있나요?” 대기업과 금융 자본으로 영화를 찍다 보니, 젊은 층의 취향과 투자사의 판단이 최대의 관건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가 서 있는 현실은 철저하게 양분된 두 길이다. 하나는 영화를 오락물로 보고, 철저하게 산업화된 시스템하에서 제작, 또는 생산해 내는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예술품으로서 영화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 같은 영상 자본이나 1970~80년대 자행됐던 검열의 족쇄 같은 억압적 계기들을 벗어 던지고, 고집스레 자신의 영상 언어를 추구하는 일단의 세력을 일컫는다.

“물량 공세에도 따라 오지 않는 관객들이 분명 있어요. 한국 영화 붐이라는, 언젠가는 사라질 반짝 유행에 반기를 들면서, 우리 영화의 진정한 가능성을 주목하는 일단의 세력이죠.”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이 바로 그들에게서 나온다. 최근 제 5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이 이?쾌거는 그들의 기대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지적이다.

- 영상자본이 아닌 예술의 승리

광범위하게 유포된 영화 미학이나 관습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작업 방식은 물론, 초저예산에 엄청나게 짧은 촬영 시간 등 실제 제작 과정에서 주류와 첨예한 대립각을 보여 온 김 감독만의 승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성공 하지 못 하더라도 꾸준하게 작업해 온 김기덕ㆍ홍상수 감독 등이 입증해 보인 대안적 모델은 이제 봄볕을 쐴 채비를 끝낸 셈이다.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30억이지만, 절반도 안 되는 5~15억이라는 돈으로 한국 영화의 힘을 보여 오고 있는 이들에게서 우리 영화는 자본이 아닌 예술이 된다는 지적이다.

생산과 소비 관행이 다양화 하고 있는 점도 빼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극장가의 풍경을 바꾸고 있는 멀티플렉스가 좋은 예. “1~2년새 우리 극장가의 풍경을 바꾼 멀티플렉스는 개성적인 영화와 일반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당초 미국서 시작됐을 때는 영화의 공급 과잉에 의한 도산을 막아내보자는 방편으로서 였지만.” 또 한 가지 더. 젊고 개성적인 감독들이 각자 다양하게 재능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봉준호(‘살인의 추억’), 박찬옥(‘질투는 나의 힘’), 장준하(‘지구를 지켜라’) 등 신예 감독들을 예로 든다. 이들은 빈익빈부익부, 혹은 정립(鼎立) 구도의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건강성을 지켜 갈 것입니다.”

1989년, 대학에서 영화 강사로 활동을 시작한 김씨는 이 시대 한국 영화의 현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고 비판했다. 현재 영화주간지 ‘필름 2.0’의 편집 위원으로 있는 그가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영화 언어’가 폐간됐을 때였다. 진양준(‘부산영화제’ 기획자) 등 당시 신예 영화 평론가들이 한국 최초의 본격 영화비평서를 목표로 자비를 갹출해 근근히 이끌어 오다, 1994년 16호를 끝으로 막을 내린 계간지다.

당시 막내 편집 위원이었던 그는 이듬해 영화전문지 ‘시네21’을 창간해 잡지를 이끌고 오다, 2000년 미디어 2.0에서 영화 잡지 ‘필름 2.0’의 창간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편집 위원으로 활약중이다. 또 우여곡절끝에 복간돼 현재 3호까지 나온 ‘영화 언어’의 편집장으로도 쓴소리를 들려 주고 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3-04 17:02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