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혁명가로의 대전환, 인터넷 무료과외사이트로 과외시장에 혁명의 바람

[한국 초대석] 덴 커뮤니케이션즈 최인호 대표
영어혁명가로의 대전환, 인터넷 무료과외사이트로 과외시장에 혁명의 바람

“몸 안의 암세포를 빼야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영어 안에 들어 있는 일제를 청산해야, 우리도 살고 영어도 살아요.” 미소 띤 동안(童顔)에서 나오는 비유 치고는 과격하다. 아니, 이념적이고 전투적이다. 최인호(39)씨. 우리 시대의 총아로 각광 받는 상품을 두고 하는 말인가?.

좋다, 그를 큰 영어 선생이라 해 두자. 치열한 강남 영어 학원가를 소프트웨어적으로, 또 하드웨어적으로 평정해 가고 있으니, 별 무리 없는 표현이리라.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여기서 ‘크다’는 표현은 이제 한국 전체를 상대로 명강을 펼치게 됐다는 외형적 측면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하기사 지금도 젊지만), 그는 벌건 대낮에 자행되고 있던 이 땅의 야만성에 맞서 최전방에 서고자 했던 열혈남아였다. 그가 보여 줬던 준열함에 대해 알고 나면, 삶의 분량이 결코 녹록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절로 다가 온다.

이 사회와의 접점으로 택한 영어는 이 시대, 성공의 첩경으로 통하는 만능 패스나 다름 없다. 그는 그것을 획득하는 길을 안내해 왔고, 또 상당히 성공했다. 공화국이라는 별칭으로 차별화되고 있는 강남땅, 거기서도 대한민국에서 학원의 밀도가 가장 높다는 고급 주택가 대치동에 본거지인 ㈜덴 커뮤니케이션즈가 있다는 사실이 잘 말해 준다. 그는 대표이면서 강사다.

- 인터넷으로 평등한 교육기회 제공

카메라 앞에서 가상의 학생들을 위해 열강을 펼치는 곳은 그의 인터넷 영어 교육 도메인‘티치 미’에 업그레이드 돼 나갈 콘텐츠를 제작하는 8평짜리 스튜디오다. 1회에 1시간 가까운 분량(150메가)의 동영상 파일을 만든 뒤 RM(리얼 미디어)으로 전환시켜, 유저가 다운 받을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모두 공짜다. 돈도 안 될 일을, 그는 중앙 일간지 3곳에 ‘인터넷 동영상 강의 무료!’라는 제목으로 전면 광고를 때려 가며 알렸다. 1월 말이었다. 2월 17일, 교육인적자원부가 사교육 경감책으로 EBS와 인터넷 강의를 실시한다고 발표하기 한참 전.

광고에서 그가 내건 문구는 선전이라기보다는 숫제 구호였다. ‘ 인터넷에서만큼은 완벽하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 ‘ 인터넷 무료 동영상 강좌로 교육 소외에 종지부를 찍자!’ 폭발중인 영어 교육 시장 행태에서 이것은 분명 반역이다. 캔디 등 만화 주인공 차림은 물론 성대 묘사로 강의를 하는 강사, 엽기 의상에 스킨십이라는 명목하에 지분거리며 강의 하는 강사, 급기야는 ‘미친 영어’를 한답시는 중국의 강사 등등 손님을 끌어 모으려 못 하는 것 없는 데가 한국의 영어 시장 아닌가. 거기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것 아닌가. 충분한 경험과 두둑한 뱃심이 그의 자본이다.

1999년, 대치동의 한 보습학원에서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수능 대비 영어 강의가 이 사회와 본격 접촉하게 된 첫 계기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벽증이 있었다. “내가 만든 영어 교재를 다 외워서 (교실에) 들어 갔거든요.” 3년 동안 거의 매일, 밤 새도록 뒤진(서핑한) 인터넷에서 따 온 싱싱한 예문들로 만든 3권짜리 책(‘Hyper English’)이 그것이었다. 왜 그랬나? “고등학교 때 죽어라 본 영어 참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다시피 하고 있던 유료 영어 강의 사이트를 망하게 하고 싶었죠.” 그 같은 오기로, 그해 4월 인터넷 도메인을 관리하는 미국의 ‘네트워크 솔루션’사에 신청한 것이 바로 현재의 도메인명이었다.

“며칠 있으니 방문객들이 한둘씩 늘고, 신이 나 매일 업데이트해 갔죠. 질문자가 미안할 정도로 자상하게 답을 써 올렸어요. ‘사역 동사’ 등 우리는 그 동안 말도 안 되는 일본식 억지 영어 문법을 주입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갔죠.” 분명 어딘가는 뷰어(보는 사람)가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믿음은 커다란 실체가 돼 왔다. 외대 동시 통역대학원을 나와 일류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던 윤종상씨도 그 중 한 명. 서울대 입학한 제자 두 명에게 연락, 매일 독해 문제를 두세개씩 올리게 한 다음 윤씨와 함께 콘텐츠화시키는 작업이 계속됐다. “음악과 인생을 안주 삼아 즐겁게 술 마시며 계속해 갔죠.”

- 최우수 영어 사이트로 선정되다

취미 생활처럼 계속해 가던 그 해 연말, 창간을 준비중이던 인터넷 전문지 ‘하우 인터넷’에서 ‘네티즌 7,760명의 여론 조사 결과, 귀하의 것이 한국의 영어 사이트 20여 개 중 최우수로 선정됐다’는 연락이 왔다. 단 몇 명이 꾸려 나가는 사이트가 수십억 자본금의 회사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는 소식은 다름 아닌 기적이었다. 홈 페이지 운영비 20만원, 회식비 10만원 등 40만원으로 운영되던 사이트였다. 망설일 것 없었다. 그와 윤씨는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수유리에 5,0000만원 짜리 오피스텔을 얻어 차린 법인이 ㈜덴 커뮤니케이션즈. 디지털(D) 에듀케이션(E) 네트워크(N)의 약자다. 학원 강사일로 번 돈을 축내며 차곡차곡 준비해 가고 있던 그에게 강남땅에 사무실이 비게 된다는 친구의 전언이 왔다. 거기서 그는 온 라인상으로 청강생들을 모집, 일본식 문법을 뒤집는 혁명적 강의로 테헤란 밸리 일대의 성인 수강생들로부터 강의 때마다 꽉 차는 열띤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당시를 돌이키는 그의 어투가 예사롭지 않다. “과거의 잘 못 된 영어 지식을 엎을 새 패러다임”까지는 좋다 치자. 그러더니 “양질전화”니, “생산력과 생산관계” 같은 생경한 용어가 술술 등장하는 것 아닌가. 영어를 주제로 한 말이라는 사실을 떼 놓고 본다면 혁명적 유물론자, 한때 이땅에 횡행했던 말로 바꾸자면 좌경운동권의 용어 아닌가? 그는 “독어 번역 작업 7년의 결과”라고 했다.

그가 쓰는 대표 사무실 책장의 책들은 물론 영어 관련 서적이 절대 다수다. 그러나 뜬금 없는 것 같은 일련의 책을 보게 된다. 두툼한 칼 맑스 저작 선집에 ‘진보 평론’ 같은 좌파적 서적들이다. 전형적인 운동권의 징표다. 좀 더 들여 보니 ‘박종철 출판사’라고 돼 있다. 그 이름 석자에 기억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좀 더 자세히는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알려진 어떤 청년에게로 줄달음 친다. 뜨거운 한국 현대사의 어떤 집단 기억속으로.

그는 서울대 철학과 84학번이다. 그는 광주민주화항쟁 사진들을 보고는 생의 노선을 바꿨다. 김민석ㆍ백태웅 등 학생회장을 배출한 이념 서클 ‘대학문화연구회’에 들어 가 1학년부터 농활과 공활은 물론, 화염병 가투(가두 투쟁)에 앞장 섰다. 2학년, 대우어패럴에서 불붙은 구로동맹 파업때 백골단의 저지를 뚫고 식품 등을 전달, 현조 건조물 침입죄로 불구속 입건된 이후, 그는 더욱 흔들림 없었다. 부모와 단절 상태였음은 당연. 3학년 당시 ‘5ㆍ3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의 가투 당시 맨앞에 있다, 소요죄란 명목으로 인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 갔다. 그 3개월 동안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았다”고 지금도 궂은 날이면 시큰거리는 무릎은 증거한다.

근 100일 가까운 악몽의 시간 동안, 그는 일어와 독어 문법책을 두 권 뗐다. 구타와 투옥이 남긴 것은 그 뿐 아니다. 그는 학생 운동의 전위는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다. 잘 알던 사람들의 비아냥 어린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도서관에 쳐박혔다. 기왕의 독어와 철학에 더욱 매진하면서 루이제 린저의 ‘북한 기행’을 가명으로 펴내기도 한, 철저한 잠행 시기였다. 동독에서 출판된 ‘자본’ 등 맑스의 저작에 보다 가까이 다가선 때였다. 백종현(철학), 고창범(독문) 등 교수들과 맺어진 가연(佳然)은 그 같은 앎의 욕구 때문이었다. 군대는 면제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요죄라는 굴레를 쓰면서 자동적으로 취해진 조처였다. 대학을 졸업한 것은 1990년. 긴 대학 생활이 남긴 것은 또 있다.

- 좌경투사의 박종철 출판사 설립

1987년 1월 4일, 4학년 어느 날을 그는 잊지 못 한다. 1단짜리 기사였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학생 운동 하면서 우리는 누구나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종철이 일 줄이야….” 죽기 몇 시간 전 만나, 서로의 고민을 얘기 했다. 종철이를 마지막 본 사람이 된 그는 너닷새 앓아 누웠다.

“괜히 삐딱했던 나와는 달랐어요. 내가 서클 세미나에서 설전이라도 펼치면(그는 ‘개기면’이라는 당시 운동권의 변말로 표현했다), 딱 두 마디로 나를 뜨끔하게 하던 친구였어요. ‘ 니 말도 일리가 있다. 헛소리 하지 마라’고.” 그가 뜨고 난 지 3년 뒤, 그는 지인들을 규합해 ‘박종철출판사’를 설립했다. 친구가 남긴 일갈에 대한 답이었다. 이제는 바른 소리 하기로 나선 것이다. 참 맑스주의자였던 친구에 어울리는 작품을 준비하는 데 꼬박 7년을 꼬박 바쳤다.

그래서 빛을 본 출판사가 박종철출판사, 대망의 첫 작품이 전6권의 ‘맑스 엥겔스 저작 선집’. 이 출판사의 대표작으로, 여전한 스테디 셀러다. 이로써 “세계의 지성국가 중 맑스 전집이 없는 유일한 나라, 한국”이라는 오명을 씻게 됐다. 최근 영어 관련 사업을 하느라 벗의 이름을 딴 출판사 일은 후배에게 맡겼지만, 박정기ㆍ정차순 등 이제는 칠순이 된 종철의 노부모에게는 항상 빚진 마음이라 했다. 당시 한국을 울렸던 박정기씨의 말, “아부지는 아무 할 말 없데이. 잘 가그래이”가 남긴 울림을 그는 잊지 않고 있다.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를 통해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전수된다. “문법은 상부 구조고, 언어 현실은 토대다. 문법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한 박자 늦다. 사회 현상에 비해 언어가 늦다면, 문법은 더 늦다. 그러므로 언어의 실재에 무게를 두라. 문법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아마 맑스나 엥겔스가 영어 선생이 됐다면, 저 정도의 말을 하지 않았을까.

위악적인 질문이 스멀스멀 나왔다. “젊은 시절의 눈으로 보자면, ‘악(惡)’의 중심부에 있는데?” 그는 명쾌하게 받아 친다. “먹고 살려 하다 보니, 돈도 많이 벌게 됐고, 여기까지 관성으로 온 거죠.” 그리고 지난 2월 12일, 사람들은 몇 개 일간지에서 결국 ‘공짜를 많이 애용해 달라’는 요지의 기이한 전면 광고를 하나 보게 된다. ‘인터넷 동영상 강의 무료’라는 굵은 제목으로 ‘교육 소외에 종지부를 찍자’는 요지의 본문 아래, 그가 동료 선생들과 함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착한 선생들이 만든 무료 과외 사이트(www.TeachMe.co.kr)에는 현재 하루 3만여명의 전국 학생들이 갈증을 달래고 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지방에 산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서러운 학생들, 자식을 밀어 줄 힘이 없어 속타는 학부모들”이다.

요즘 그에게 즐거운 고민 하나가 생겼다. 2ㆍ17 발표가 난 1주일 뒤, 그에게 영문법 강의를 맡아 달라는 제의가 정부측에서 온 것. “구두로 수락했죠. 강의 방식에 간섭만 없다면 해 볼 생각이예요.” 사회 혁명을 꿈꾼 뒤, 교육 혁명에 안착한 그의 지금 심정은? “티치미 이후 기존의 유료 사이트는 가격을 낮췄고, 유료 사이트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았어요. 인터넷이 한 개인의 꿈을 실현시킬 패러다임을 제공한 거죠.”

변증법적 유물론자의 어투를 빌면, 토대와 상부 구조는 여전히 긴밀하게 조응하고 있는 셈이다. 새 버전으로.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3-10 22:23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