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화된 가요시장의 갑옷을 벗기겠다"새 가요제 제 1회 한국대중음악상 창설의 산파역"음악성이 기준이 되는 대안적 음악상의 표본 만들 것"

[한국 초대석]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
"권력화된 가요시장의 갑옷을 벗기겠다"
새 가요제 제 1회 한국대중음악상 창설의 산파역
"음악성이 기준이 되는 대안적 음악상의 표본 만들 것"


“순위가 무슨 의미 있어요. 연말 가요 시상식의 순서 매기기 같은 식의 관행을 더 이상 답습하지 말자는 겁니다.” 문화이론서들이 가득 찬 연구실에서 성공회대 김창남(45ㆍ신문방송학과)교수가 특유의 백발 아래서 웃는다.

그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은 이념적으로 보자면 왼쪽으로 기우는 문화 이론서나 사회 과학 서적들. 학교 도서관에 1,000여권 기증하고 남은 책들이다. 그 중 2004년 2월 빛을 본 ‘대중 음악과 노래 운동, 그리고 청년 문화’(한울 아카데미刊)는 가장 최근 저작인 셈. 어느덧 ‘노래5’란 부제까지 왔다.

우리 대중 가요의 지킴이로서, 학교 안팎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올곧은 발언을 마다 않았던 그가 드디어 나섰다. 3월 17일 오후 7시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펼쳐질 ‘제 1회 한국 대중 음악상’의 대표격인 선정위원장을 자임했다. 그래미상처럼 한국에도 권위 있는 대중음악상이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도출된 상이다.

실제로 2월 23일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기자 회견 형식으로 이 상의 출범을 알렸을 때, 도하 신문들은 대중 문화면의 머릿기사로 새 상을 환영하고 나섰다. 새 상이 구체화돼 가는 모습을 언론들은 커다란 기대로 반겨 오던 터다. 그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봄소식처럼, 언뜻언뜻 수면위로 모습을 비쳐 왔기 때문이다.

- 비문화적 작태에 대한 반격

지난 1월 9일 ‘문화연대와 대중음악개혁을 위한 연대 모임’이 천명한 내용은 대중 가요라는 커다란 파이를 둘러 싸고 자행되던 지극히 비문화적인 작태에 대해 명징한 반격이었다. “기존 가요 시상식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철저하게 음반 위주로 음악성과 실력만을 기준으로 하는 대안적 음악 시상식을 펼치겠다”는 것이었다. 앞서 2003년 11월에는 문화연대 주최로 ‘대안적 대중음악상 개최’ 기자회견이 펼쳐졌다. 당시도 그는 교수이자 선정위원장으로 새 움직임의 구심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2003년 9월, 평론가 등이 모였던 사석에서 문화연대의 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장이 발의하면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경위를 압축했다. 이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이 상의 당위성과 세부적 운영 방안 등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해 오던 터였다. 하룻밤 꼬박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격론을 벌인 이들은 모두 14개 분야를 대상으로 한 첫 시상식의 얼개를 완성했다.

그를 포함한 17명의 선정위원들은 토론을 통한 다수결의 방식을 택했다. 그를 비롯, 임진모(대중음악평론가) 등 평론가, 원용민(오이뮤직 편집장) 등 전문 저널리즘 종사자, 김우석(KBS 라디오 PD) 등 방송 종사자 등이 첫 선정위원단으로 작업했다. 10여년 전부터, 모이면 해 오던 이야기가 비로소 현실화된 것이다.

이들은 기존 가요상의 관행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가요제는 문화 권력의 또 다른이름이었다. 가요제가 끝나면 수상자와 함께 그들이 부른 곡들을 모은 편집(컴필레이션) 음반도 생산함으로써, 권력으로서의 사이클을 마무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이 상은 당연시돼 온 그 관행을 거부한다. “하나의 앨범 자체가 독립적 컨셉이고, 완결적 작품인 거죠. 동시대적 컴필레이션이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거부합니다. 컴필레이션이란 결국 대중 문화의 창조력을 약화시킬 뿐이죠. 제작 제의가 와도 거부할 생각입니다.” 방송이나 유통 관행상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좋은 음악이 제대로 알려진다는 것은 이 상으로 파생될 최대의 효과다. 순위에 귀를 쫑긋거리고 호들갑을 떠는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 상하면 순위부터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나 언론들이 조금은 머쓱하게 됐다.

- 네티즌 의견 반영, 민주성ㆍ객관성 확보

이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 가는 것은 위원단만 아니다. 네티즌이 한표 한표 던지는 의견도 반영, 민주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3월 15일을 기한으로 해 2일부터 올라 오고 있는 온 라인 투표의 집계 결과는 20% 반영된다. 선정위원회는 3월 16~17일에 걸쳐 집중 토론을 벌인 뒤, 80%의 영향력으로 수상자를 정한다. 이 대목서 그가 꼭 부탁하는 말이 있다. “후보에 오른 곡들이 무언지, 그것만은 제대로 소개해 주세요.”

영광의 가수들을 일별해 보자. ‘올해의 가수’ 남자 부문에는 윤건, 이적, 휘성, 이승열이 올라 왔다. 이들과 함께 조용필이 포함된 것이 이채롭다. 2003년 9월, 18집 ‘Over The Rainbow’를 신보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창작은 이 상의 전제 조건이다. 같은 이유로 윤도현, 강산에, 안치환 등은 제외됐다.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사람들인데, 지난해에는 신보가 없었거든요.”

여자 부문에는 한영애, 이상은, 보아, 이수영, 이상은 등이 올라 있다. 이밖에 그룹 부문 후보를 차지 한 것은 더더, 러브 홀릭, 아소토 유니온, 델리스파이스, 빅마마 등이다. 또 지난 1년 동안 바람직한 활동을 펼친 음반사에게는 ‘올해의 레이블’상을 수여하는데, 이번에는 캬바레사운드, 플럭서스, M-보트 등이 경합을 벌이게 됐다.

이른바 가요계의 주류-비주류 공식은 여기서 설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그러한 구분법의 기준은 무엇일까? “메이저 기획사가 키우면 주류예요. SMㆍYH 패밀리ㆍJYP 등의 소속으로, 현재 방송의 오락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가수들이죠.” 그 둘을 가르는 최대의 기준은 TV 출연 여부라는 지적이다. “구미(歐美)에서는 생각도 못 할 풍경이죠.” 그 곳에서는 MTV 등 전문 케이블파의 몫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경우는 장르적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몰아 붓기식의 관행도, 위기에 노출되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그 같은 기형적 구조에다 최근 불어 닥친 심각한 불황의 여파 탓에 한국의 대중 가수들은 기이한 생존 전략에 내몰리고 있다. 노래와 전혀 무관한 개인기(번지 점프, 강아지 흉내 내기 등) 등에 목을 매다시피 한다. “이효리의 인기가 상종가라지만, 정작 음반 판매량은 15만장에 불과해요. 뮤지션이나 대중적 아이콘으로서의 자리매김은 포기하고, 엔터테이너만으로 가수가 존재하는 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음악적으로 자의식을 가진 가수들은 시장에 서는 일이 차단돼 있는 실정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 자들은 방송에서 차단되므로, 대중은 모르고, 음반은 팔리지 않는 악순환 구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가수를 예술가로서 보자는 거죠. 방송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진정성 있는 음악을 발굴ㆍ소개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또 기존의 대중 음악상이 부추긴 불균형 양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널리 알리자는 거예요.” 거기에는 현재가 대중 음악의 암흑 시대라는 판단이 근거하고 있다. “유신과 긴조(긴급조치) 같은 정치적 억압 장치는 오늘날 시장 논리와 상품 논리로 모습을 바꿨죠.”

- 조폭적 유통구조의 음반산업

그는 우리의 음반 산업을 주먹구구식이며 조폭적이라고 못 박았다. “배급망이 제각각이고, 세금 구조마저 투명하지 못한 상황이 답습되고 있어요. 자기 판이 몇 장이나 팔렸는 지, 가수조차도 알 수 없는 구조죠.” 길보드(리어카로 파는 무단복제 테이프) 이후 무단복제의 관행을 버전업한 mp3, 기술적으로 새로운 툴을 개발해 가처분을 빠져 나가는 벅스뮤직이나 소리바다 등으로 음반 시장은 갈수록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해결책은 없는가? “유통 과정을 투명하게 해, 불합리한 시장에서 독점의 이익을 누려 온 메이저 음반사를 정리하는 것이 첫 번째다.” 공중파 방송이 대중 음악에서 손을 뗄 것, 특히 순위 매기기 프로는 대중 가요를 압살한다는 발언이 뒤를 잇는다. 오락 프로에 가수를 들러리로 출연시켜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사들의 관행은 폐지해야 한다. PR비 사태로 대표되는 악습이 대표적이다. 하나의 유력한 실천 방안은 공연 산업을 살리는 것이다.

공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 진다. 공연장을 늘리자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음악 설비를 갖춘 공연장이 참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관의 고질적 타성화까지 겹친다. “전국에 문예 회관들은 많이 짓지만, 비싼 기자재들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공무원들 때문에 문은 아예 잠겨 있다시피 한 게 현실입니다.”

축적과 반성 없이는 문화도 없다. 대중 음악에 쓴소리 해 주는 음악 전문지가 없다는 것은 외형만 번지르르한 한국 대중 음악계의 현실을 웅변한다. 그나마 두 가지 있던 음악 잡지는 웹진 등 새恝?방식의 매체에 내몰려 겨우 연명해 가는 실정이다. 지금 한국에는 요컨대 ‘청년 문화’가 실종된 것이다. 그는 문화의 단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대중 음악이 이렇듯 난맥상을 펼치기 전의 좋았던 시절은 없었을까? “1970년대 통기타 시절이죠. 김민기와 송창식 등 뛰어난 싱어-송 라이터가 구심점으로 있었던.” 트로트와 팝으로 대별되는 양강 구도가 독식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공존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70년대의 통기타 문화, 80년대의 민족ㆍ민중문화 등 지배 문화와 길항하며 이어 오던 청년 문화의 전통이 90년대 이후는 어디로 갔죠?”

- 설 자리 잃은 청년문화

우리 문화의 가장 핵심적 코드인 청년 문화는 청소년 문화로 전락하고 말았다?것이다. 그것은 대학 문화가 주변부 문화로 전락하고만 시대적 변천과 궤를 같이 한다. 민주화와 탈냉전으로 명시적 공격 대상을 잃어 버린 대학의 문화 시장이 주변부 문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적 억압이 약화되면서, 세대 문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세계화 바람, 특히 신자유주의와 함께 들이 닥친 취업난 탓에 대학은 아예 취업 학원으로 탈바꿈한 탓이 크다.

그것은 따져 보면 70, 80학번 선배들의 잘못 아닌가? “그들의 변혁 욕구를 새 시대로 버전업 하지 못 한 탓이죠. 이념 과잉에 대한 반성이 지나쳐, 탈이념적 반동으로 치달았다고 할까요?” 그는 주류 음악이 아닌 비주류의 음악을 새 시대에 맞게 버전업 하는 데에 대학 특유의 커뮤니티가 강력한 네트워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들어 성공회대는 새 학과를 신설한다. 문화예술경영학과. 그는 초대 학과장으로 자리하게 된다. 21세기의 들어 지배력을 더해 가고 있는 대중문화에 대해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강좌를 개설한다는 취지다. 영화론과 매스컴론 등이 학부에 새로이 개설될 강좌다. 학교를 벗어 나서도, 그는 일복이 많다, 우만연(우리 만화 연대ㆍ대표 이희재)과 한국 민족 음악인 협회(대표 오용록) 등 두 단체의 이사가 그에게 맡겨진 또 다른 직분.

“내 시대의 미학은 비장함이었다. 1990년대 이후 청년 문화의 미학은 경박함으로 귀결된다. 21세기는 둘 다 아니면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노래패 ‘노찾사’에서 활동중 만난 동갑나기 부인 조경옥씨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큰 아들 내현(18)은 하드코어 록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로 무대를 누빈다고.

민중가요 활동을 한 부모, 귀를 찢을 듯한 록 음악을 하는 아들. 이들의 정반합, 뭔가 새 시대의 미학이 나올 법 하지 않는가?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4-03-18 14:41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