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 추적하는 인간레이더경제계 불공정행위 감시, "거짓은 반드시 밝혀진다" 신념

[직업의 세계-31] 공정거래위원회조사관 진연수
'반칙' 추적하는 인간레이더
경제계 불공정행위 감시, "거짓은 반드시 밝혀진다" 신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 진연수(44)씨는 금연 대열의 낙오생이다. 독하게 잘 버티다가도 조사만 나갔다 하면 판판이 무너진다. 현장의 스트레스가 줄담배를 부추긴다. “예전에 다른 선배가 ‘담배를 끊었다가 조사만 시작되면 꼭 다시 피게 된다’는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그 말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

외양으로 치면 이건 말이 안되는 싸움이다. 공정위 조사관을 다 합쳐야 30명 정도.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한다. 업종 불문, 유형 불문, 국내 기업이란 기업은 모두 관리 대상이다. 기업들 속에서 벌어지는 부당내부거래행위나 하도급 문제 등 경제계의 불공정행위를 감시하고 추적한다. 기업의 경제질서가 이들 손에 달려있다.

대한민국 사대문 안에 들어있는 고층건물치고 안 들어가 본 곳이 없다. 찾아왔다고 반겨주지도 않는다. 혐의점을 잡고 찾아간 대기업에서 엘리트들의 고단위 방어전이 앞을 가로막는다. 강제 압수수색권이 없는 조사관 신분이다 보니 노하우의 전법 외에는 어찌할 도리도 없다. 한 굴지의 대기업을 조사했을 땐 기본 자료조차 볼 수 없었다. 있는 사실조차 날인과 확인을 거부한 채 상대측은 축구 수비 대열처럼 사무실을 막아 서서 조사를 봉쇄했다. 시간을 끌며 서류를 빼돌리기도 했다. “ 결국 그날 서류를 못 보고 나왔지만, 다른 방법으로 계속 정보를 수집하고 자료를 갖추어 위원회에 상정했습니다. 나중에 해당 회사에 상당한 과징금이 추징되었습니다. ”

- 조사방해와 비협조의 벽을 넘어

도로 건설 하도급 문제로 조사한 모 유명 종합건설업체가 있었다. 역시 방해와 비협조의 벽에 부딪쳤을 때, 진씨는 특유의 초강수 작전으로 돌진했다.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현장 사무실을 통째로 비닐로 덮어씌웠다. 그 위에 ‘봉인’처럼 도장까지 찍어놓고 ‘조사를 방해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슬쩍 큰소리를 쳐놓았다. 발이 저린 관계자들이 그때부터 순순히 서류를 보여주었다. 오래지 않아 문제의 물증을 찾아냄으로써 사건에 종지부를 찍었다. “증거가 빨리 발견되지 않을 때, 조사관들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란 말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힘이 듭니다.”

지난해 한 기업집단 조사로 두 달을 뛰고 나자 마주치는 선배들마다 ‘가발을 썼냐?’고 물어댔다. 몰라보게 빠진 머리 숱 사이로 흰머리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그래도 분명 보람있는 일입니다. 설령 저희가 스트레스를 더 받는 한이 있더라도 기업들이 보다 투명한 사회가 된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진씨는 공정위 조사국의 토박이이자 고참이다. 조사2과 소속 사무관이다. 여기에선 무엇보다 팀웍이 생명이다. 한번에 많게는 10명. 투입된 반원들이 서로 민첩하게 호흡을 맞추어야 해결이 빠르다. 누가 숙제를 던져주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스스로 기업들의 동태를 파악해 문제점을 포착하는 것부터가 이들 자신의 임무다. 신문, 방송은 물론, 인터넷 정보와 내부자의 제보 등 모든 통로를 열어놓고 부지런히 환부를 살핀다. 혐의점에 대한 확신이 들면 철저한 조사계획을 짠 뒤 현장에 뛰어든다. 사방에서 압력이 밀려들 때도 많지만, 간섭해봐야 허사다. 공정위는 기관 자체도, 조사관 개별적으로도 독립성과 공정성이 엄중하게 보호되고 요구되는 곳이다.

재무재표 등 서류 분석은 기본이다. 하지만 연 매출액이 1조원만 넘어도 그 산더미같은 서류를 모두 확인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진다. 조사가 시작되면 조사에 대한 상대의 저항과 은폐전도 반대편에서 함께 벌어진다. 사안이 큰 경우, 상대 기업에선 물리적 행사도 주저하지 않는다. 돌파구는 조사관의 지혜와 노하우, 그것뿐이다. “95년 하도급 문제로 한 건설업체를 조사하러 갔는데, 담당자가 저랑 동료 조사관을 윗층으로 데려가 계속 앓는 소리만 하며 붙들고 있는 겁니다. 제가 동료에게 눈짓으로 ‘여기는 내가 맡을테니 당신은 아래층에 내려가서 서류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아래층에 내려간 조사관이 마침 여직원이 이면계약서 원본을 몰래 복사하고 있는 걸 발견해 서류를 입수했습니다. 그 계약서를 단서로 계속 밀고 당기며 찾아낸 끝에 결국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자료를 부탁받은 담당자나 부서장이 얼마 만에 나타나는지, 어떤 자료를 얼마나 가져왔는지, 심지어 상대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옛날에는 회계자료를 조작하는 경우도 왕왕 발견되었다. “종이 재질이나 도장 색깔이 다르다든지, 담당자의 필체가 다른 것, 인쇄 잉크가 번진 정도가 다른 것, 종이가 도중에 뜯겨나간 흔적 등 위ㆍ변조 흔적은 딱 보면 압니다. 또 담당자나 부서장을 불러서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속사포처럼 계속 질문을 퍼붓다보면 반드시 어딘가에는 구멍이 뻥 뚫리는 곳이 나타납니다. 거짓은 꼭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 조사과정서 읽게되는 기업의 미래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조사를 받는 기업측의 태도나 반응만 봐도 그 기업의 특성과 미래가 보인다. 국내 상위권 재벌그룹 A,B,C. A그룹은 조사관들이 찾아오면 입안의 혀처럼 친절하고 자상하다. 하지만 일단 증거가 발견되고 나면 사생결단의 ‘엉겨붙기’ 작전으로 철저히 자사를 방어한다. 반면 B그룹은 조사팀이 오든 말든 처음엔 철저히 무관심과 푸대접으로 일관한다. 조사를 위한 공간 조차 제공하는 둥 마는 둥 이다. 대신 증거가 드러났다 하면 180도 회전한다. ‘제발 살려달라’며 바짝 엎드린다. C기업은 최상같은 최악이다. 조사관들조차 혀를 찰 만큼 사원들의 애사심이 바닥이다. 자신이 몸담은 직장에 치명적인 해가 되든 말든, 요청하는 서류마다 아낌없이 퍼준다. 기업의 철학과 생명력이 드러나는 단면이다.

결정적인 증거서류를 찾았을 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보물을 찾은 기분이 따로 없다. 그러나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또 한번 작은 늪에 빠진다. 인간적인 연민 때문이다.

“이 보고가 올라가면 선량한 사원들까지 크게 다치지는 않을까 마음이 약해져서, 그럴 때마다 제 자신에게 자꾸 최면을 걸곤 합니다. ‘어쨌든 잘못된 일이야’ 더 냉정하고 모질어지려고 애씁니다. ”

진씨는 공정위 조사관 생활만 10년째다. 대학을 졸업한 87년,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발령을 기다리는 몇 년 동안 바깥 사회도 녹록치 않게 맛보았다. 신문광고를 보고 스포츠용구 대리점을 열었다가 빚만 안고 털었다. 사기꾼에게 당한 일이었다. 빚을 갚으려고 기계류 세일즈에 도전했다. 허드렛일까지 맡아가며 고객들을 찾아 다닌 끝에 1년 반쯤 지나자 서서히 목돈이 들어왔다. 막막하던 빚도 청산하고 중고자동차 수출 사업에 새로이 눈독을 들이던 즈음, 공무원 발령 통보를 받았다.

첫 배속지가 통계청의 모태인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의 산업통계과였다. 사업장별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현황을 분석하는 ‘산업센서스’가 신출내기 공무원 진씨의 첫 업무였다. 2년쯤 지나자 진씨에게 갑갑증이 몰려들었다. 조금 더 자유롭고 여유있는 업무를 원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경제기획원 본부로 옮긴 뒤 예산실에 배속되면서, 인사하러 간 첫 날부터 자정 넘어 퇴근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 채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아침 통근버스를 타기위해 6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상황은 똑같았다. 공정위로 옮기기까지 5년 동안 그렇게 지냈다. 첫 석달 동안은 사표를 낼 생각까지 했지만, 사표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업무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것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 일요일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냉랭한 사무실에 나와 일하다가 동상에 걸려 고생한 일이 몇 번 된다.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하는 격무 때문에 주변에선 이혼을 당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체력도 떨어지고, 가족에게도 면목이 없어 잠시 충전의 시간을 위해 94년 공정위 업무를 자원했다. 그런데 자리를 옮긴 지 얼마 뒤 경제기획원이 폐지됐다. 돌아갈 ‘친정’이 사라지면서 자의반, 타의반 공정위의 ‘귀신’이 되었다.

- 가정 잊고 산 세월, “공무원은 팔자소관”

공정위는 원래 경제기획원내 1개 실국으로 존재하다 90년 사무처로 확대 개편된 뒤 다시 94년 경제기획원의 폐지와 함께 현재와 같은 독립체로 분리되고 역할이 강화된 것이다. 이곳은 합의제 준사법적 기관 성격을 갖고 있다. 진씨가 조사국에 들어서자마자 30대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조사를 필두로 성수대교 붕괴 사건과 관련된 하도급 문제 조사, 대형유통업체 대규모 조사 등 사기업, 공기업을 막론하고 큼직한 조사업무가 줄줄이 이어졌다. 특히 IMF 상황은 이들 조사팀에게도 전시(戰時) 선포나 진배없었다. 이후 약 3년간 거의 집을 잊고 살았다.

98년은 그에게 가장 힘들고 분주한 해였다. 현재 공정위의 핵심 업무로 진행되고 있는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행위 조사 등이 처음으로 체계적이고 대대적인 규모로 집행된 것이 바로 그 해였다. 98년 5월, 6대 재벌기업들에 대한 대규모 조사가 착수됐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조사를 받았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아주 강도높게 진행된 조사였습니다. 현장조사 때도 반원들 모두 밤 늦게 퇴근하고, 서점에서 관련 전문서를 찾아보거나 새벽까지 관련 업계의 아는 분들을 만나 안팎의 정보를 수집하는 등 쉴 틈이 없었습니다.”

긍지와 보람을 빼면 현실적으로 내세울 것이라곤 사실상 거의 없다. 공무원중에서도 가장 번듯해보이는 중앙공무원이지만, 과천 정부청사 안에 자리한 사무실조차 찾아간 손님이 민망할 만큼 비좁고 볼품없는 책상과 집기들로 빠듯하게 채워져 있다. 수입도 일반인들의 상상과 차이가 있다. 언젠가 그를 찾아왔다가 우연히 월급봉투를 보게 된 다른 직장의 후배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기는 월급을 한 달에 몇 번씩 나눠서 주나 보지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는 요즘도 일요일마다 출근이다. 놀아도 사무실에서 놀아야 마음이 편하다. 두달 쯤전 일요일에는 잔무처리를 하고 집에 돌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크게 다쳐 전치 4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지만, 2주만에 퇴원해버렸다. 할 일없이 쉬는 게 더 고역이었다. 아직도 성치않은 갈비뼈로 일터를 활보하는 중이다. 서양의 어느 행정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 ‘공무원은 선택이 아니다’. 진씨의 해석이 맞을 것이다. “공무원은 팔자소관 같은 겁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결국 지금 이 일을 하려고 지난 과정을 거쳐온 것 같습니다. ”

정영주 기자


입력시간 : 2004-03-18 15:03


정영주 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