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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33] 경영컨설턴트 현신균
기업 움직이는 아이디어 뱅커
승진 아니면 퇴출의 생존게임장, 논리적 사고방식 필요


지난 월요일에 그가 보낸 하루. 오전 8시에 들어간 회의실에서 정오가 돼서야 나왔다. 곧바로 다음 약속장소로 뛰었다. 고객사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기로 돼 있었다. 밥을 앞에 두고 시작된 일 이야기가 그들의 사무실로 함께 자리를 옮긴 뒤에도 종일 이어졌다. 퇴근시간도 그곳에서 맞았다. 다른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며 또 일 이야기. 그리고 소주 반 병. 9시 반쯤 해산한 뒤 여의도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두 번째 출근이다. 밀린 문서 작업을 하려고 컴퓨터를 켜자마자 약 60통의 e메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요한 회신까지 마무리한 뒤 막 다른 일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호출이 날아들었다. 폈던 일을 다시 접고 달려나가 또 업무관계로 아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 한 병. 피로로 파김치가 된 채 집에 도착했을 때 새벽 2시가 다 되어 있었다. 조용히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내와 두 아들 모두 잠들어 있었다. 평소에도 가족들이 깨어있을 때 들어가 본 날이 별로 없다.

“지금 제 머리속엔 4가지 일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 2개는 이미 진행중인 프로젝트들이고, 나머지는 앞으로의 문제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현신균(39)씨는 국내 컨설팅업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재목 중 한 사람이다. 소위 빅4 중 하나인 외국계 컨설팅기업 액센츄어의 상무이사다. 업무관계가 아닌 한, 그와 만나기란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어렵다. 책상 앞에 붙어있는 날이 거의 없다. 지난 주만해도 월요일 몇시간을 빼고는 1주일 내내 다른 회사로 출퇴근했다.


- 기업 안팎의 모든 문제 파악해야





경영 컨설턴트들이 맡는 일은 다양하고도 광범위하다. 현씨가 현재 맡고 있는 금융분야를 예로 들면, 고객 서비스 실태 파악에서부터 IT분야 사업비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 리스크 관리는 잘 이뤄지고 있는가, 보험 영업사원들의 효율적인 활용 방안 등 기업 안팎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이 도마에 오른다.

대기업의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이를 따내기 위한 컨설팅사들간의 경쟁과 신경전도 치열해진다. 치밀한 제안서의 힘으로 마침내 계약 체결까지 이르게 되면 그때부터 현장의 각개 전투가 시작된다. 문제점과 해법을 찾자면 먼저 현재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준비해 둔 체크리스트를 쥐고 공장이면 공장, 사무실이면 사무실, 철저히 현장점검에 나선다. 주로 실무 관계자들을 면담하거나 내부 자료, 또는 필요할 경우 설문조사 등의 방법을 이용한다.

한편에선 벤치마킹할 모델도 탐색한다. 세계 선진기업의 모범 사례를 찾아 자료집이나 인터넷도 두드리고, 가진 자료가 부족할 땐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컨설턴트들에게 도움을 청해 정보를 구하기도 한다.

프로젝트의 규모나 중요도에 따라 적게는 두세 명에서부터 많게는 500명 가까이 인원이 투입되기도 한다. 조사 작업은 대개 공개하에 협조적으로 진행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구조조정이나 기업의 매수, 합병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서는 프로젝트 자체가 극비리에 추진되기 때문이다. 보안을 위해 컨설턴트들의 작업도 호텔 객실 등을 빌려 무슨 작전을 펴듯 합숙하며 이뤄진다. 의뢰한 기업측에서도 극소수 관계자들만 알 뿐, 필요한 서류만 소리없이 공수된다.

가장 괴로운 진통은 보고서를 쓸 때 찾아든다. 확보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반드시 뭔가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컨설턴트들의 흡연량이 늘어나는 것도 주로 이 때다. 현황에 대한 분석이란 것도 관점과 기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기업마다 처한 상황도 다르고, 경제환경의 변수도 계산에 빠뜨리면 안 된다. 자신의 머리를 죄는 논리싸움이 이어진다. 팀원들의 열띤 토론까지 거쳐 마침내 가닥이 잡히면 그 때부터 최종 보고서 작성에 들어간다. 5개월짜리 프로젝트만 해도 보고서 분량이 웬만한 단행본 두 권과 맞먹는다. 두툼한 바인더로 너댓권, 약 1,000 페이지에 달한다. 적게는 4주, 길면 1년씩 땀을 쏟아 만든 이 결실이 얼마나 값있게 쓰일 것인가는 전적으로 의뢰 기업의 결정에 달려 있다. 적극 반영될수록 그만한 보람이 없지만, 사실상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숨이 찬 일이다.

- 적성ㆍ능력 있어야 살아남는 곳



“체력적으로 아주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본인의 적성뿐 아니라 능력도 뒷받침돼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입사 후 신입의 약 50%가 회사를 나㈃求?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안에는 애널리스트에서 컨설턴트로 오르는 단계에서 낙오해 그만두게 된 경우도 포함됩니다. ‘Up or Out’(승진 아니면 퇴출)이 철저한 곳입니다.”

지난해, 모 은행의 의뢰로 차세대 뱅킹 시스템을 구축한 일이 있다. 현씨를 포함해 총 35명의 컨설턴트 부대가 이 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종전의 비효율적인 금융업무 시스템을 바꾸고 싶어한 은행의 요구에 따라 처음엔 기존 시스템의 결점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정도로 계획을 잡고 출발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훨씬 심각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본적인 업무 분류 시스템만 약 130개에 달했다. 기본을 파악하는 데에만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단지 몇 군데를 뜯어 고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또렷해졌다. 결국 종전 시스템을 완전히 포기하고 원점에서부터 모두 다시 만들어내기로 결단을 내렸다. 기본 틀을 잡는 데만 1년이 걸렸다. 매일같이 전문서적과 자료, 서류들과 씨름하며 실무자와 전문가들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닌 결과다.

“힘들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거대한 조직의 가장 중요한 일에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그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것이 간단치 않지만, 그 자체도 배움의 즐거움을 줍니다. 제 생각엔,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로운 일일수록 정신적인 즐거움이 큰 것 같습니다.”

2002년은 한국전력거래소의 프로세스 컨설팅 하나로 1년이 다 지나갔다. 전력거래소는 전력을 일종의 상품 개념으로 다루어, 수요자로부터 주문을 받아 전력 공급량과 시간대를 사고 파는 곳이다. 이에 필요한 주문, 거래, 운영상의 모든 규칙과 시스템 등을 갖추어놓는 것이 컨설턴트들에게 맡겨진 역할이었다. 총 비용 약 1,000억원에 가까운 대규모 사업이었다.

국내에는 관련 전문가가 없어 외국인 전문가들이 다수 영입되었다. 국내 인력까지 합쳐 총 40명.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도 외국인이 맡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뜻밖의 문제에 봉착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참여하다 보니 서로의 문화적 차이도 있는 데다,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작업 과정에서 자꾸 차질이 빚어진 거예요. 결국 6개월만에 총책임자가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교체됐어요.”

바톤을 건네받은 한국인이 바로 현씨였다. 기술적인 어려움과는 또 다른 성격의 난관이었다. 총책임을 맡은 직후 매일 수시로 회의를 소집해 설명해 가며 외국인들이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고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갔다. 그 후 별 탈없이 프로젝트를 순조로이 마쳤다.

“그때 많이 느낀 것이, 국내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우리나라 사람에게 맡기는 게 가장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요건이란 것이었습니다.”

- 컨설팅 업무에 대한 매력 못버려



그가 처음 컨설팅업계에 들어선 것은 지난 90년이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거쳐 89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앤더슨 컨설팅’사에 입사했다. 그 때만해도 컨설팅에 관한 한 국내 사회 전체가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다. 그가 직업을 말하면 못 알아듣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긴, 입사 무렵 현씨 자신도 그리 예외가 아니다.

“참 막연한 생각으로 지원했어요. 면접 때 면접관이 ‘자네가 하게 될 일은 공장에 가서 현장을 한번 쫙 훑어본 뒤 이 공장의 문제는 뭔가 알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걸 처음 듣고 ‘그럼 정말 멋진 일이겠다’고 생각했던 정도였어요.”

입사 후 3주간 연수를 받은 뒤 실무에 투입되었다. 한 모피회사의 회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선배들의 지시로 첫 기획안을 작성하게 되었다. 며Ⅰ?고심하며 만들어 간 보고서를 내밀자 이를 훑어본 선배들이 칭찬을 했다.

그 후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차츰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4년째에 접어들던 93년 여름, 사표를 냈다. 더없이 적성에 맞는 일이었지만, 쫓기듯 살아가는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못다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1년만에 다시 책을 덮었다. 미국의 한 통신회사로부터 제의를 받아 취업한 것. 딱 1년만 근무하고 그만두리라던 처음의 결심도 유야무야 흘려버린 채 그대로 4년 반을 보냈다. 뒤이어 유엔본부 경제사회국에서 3년간 근무했다. 일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정적(靜的)인 업무가 서서히 갑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고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 뿌리쳤던 컨설턴트 시절이 자꾸만 그리워졌다.

2000년 여름, 결국 짐을 싸들고 돌아왔다. 모 전자회사의 반도체 생산공정 관리 시스템을 지원하는 일을 시작으로 다시 컨설턴트로 뛰었다. 약 7개월에 걸쳐 땀을 쏟은 이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을 때 그가 제시한 내용의 거의 100%가 바로 현장에 실행되는 것을 보았다. 컨설턴트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었다. 타 컨설팅사를 거쳐 현재의 회사로 옮겨 온 것이 작년의 일이다. 첫 직장의 후신인 것을 감안하면 13년만에 정확히 제자리로 원위치한 셈이다.

- “한국경제에 실질적 도움 주고 싶어”

요즘 그의 머리속엔 모 은행의 합병 문제로 꽉 차 있다. 오는 10월로 예고된 통합 시점을 앞두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평균 귀가 시간이 새벽 2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다. 휴가도 쓸래야 쓸 틈이 없다. 1주일에 사나흘씩 돌아오는 술자리는 가능한 한 가볍게 끝내고 있다. 체력을 아껴야 일에서 버틸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있다. 그렇게 조심하고도 1년에 약 1주일은 연례행사처럼 심하게 앓아 눕는다. 밤낮없는 피로가 누적된 결과다.

이미 습관이 돼 버려 식사도 5분이면 다 해치우는, 전장의 병사같은 이 사람. 위의 인터뷰중 상당 부분도 이동 중인 그의 차 안에서 조각조각 이어 붙인 것들이다. 이 말만하면 동료들이 웃는다지만, 그에게는 엄숙한 진심일 것이다. “계획이요?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하는, 조그만 역할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4-04-0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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